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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인터뷰' 진실 알려달랬더니, 말장난하냐?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7. 12. 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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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검찰은 BBK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명박이 2000년 당시 각종 언론과 인터뷰하며 '내가 BBK를 창업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BBK가 100% 김경준 소유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수사할 필요가 없었다'며 스리슬쩍 넘겼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들은 검찰 수사 결과를 비판하며 '그렇다면 당시 이명박을 인터뷰한 언론들이라도 진실을 밝히든 오보임을 인정하든 뭔가 내놓으라'는 요구를 했다. 특히 민언련은 11일 논평을 내고 당시 이명박을 인터뷰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판결을 내린 지금까지 당시 보도와 관련해 그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2000년 당시 이명박 씨 인터뷰 기사의 진실을 밝혀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가 13일 반응을 보였다.

사실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이들 신문이었던 관계로 이들 단체의 주문에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동아일보의 ‘반응’은 반가운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반응은 역시 ‘동아일보다운’ 것이었다. 민동용 기자가 ‘기자의 눈’이라는 타이틀로 쓴 <기사 내용 제대로 확인도 않고 과거 BBK보도 ‘엉뚱한 헐뜯기’>는 차마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동아다운 ‘반응’이었다.


민 기자는 먼저 ‘BBK는 내가 만들었다’는 이명박 후보 언론 인터뷰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대통합민주신당(이하 대통합신당)의 비판을 언급한 뒤, “그러나 본보에 관한 한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발 빼기’부터 시도했다.


2000년 10월 16일 <동아일보> 기사 <경제계로 복귀한 이명박씨/“사이버금융에 승부 걸겠다”>에 ‘연 수익률 120%대를 기록한 김경준 BBK 투자자문 사장을 영입했다’ 등의 내용만 있을 뿐, “이 기사에는 정 후보가 시사한 ‘이명박 씨가 BBK의 실소유자’라는 식으로 해석될 표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민 기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김씨가 BBK를 설립했음이 명확해 보인다”며 “이명박씨가 김씨의 뛰어난 실적에 호의를 갖고 동업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김홍일 서울지검 3차장이 “동아일보의 이 후보 인터뷰 기사 내용은 다른 신문, 잡지와 달리 BBK 투자자문은 김경준이 설립했다는 취지로 돼 있다”고 했다며, 김 차장의 발언으로 마치 <동아일보> 또한 ‘면죄부’라도 얻은 양 “본보 보도를 문제 삼는 것은 억지주장임을 밝혔다”고 우기기도 했다.

민 기자는 이어 “본보를 사실과 다르게 걸고넘어지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절박해진 대통합신당뿐만이 아니다”며 민언련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단체들을 본격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민 기자는 글에서 ‘지금이라도 2000년 당시 이명박씨 인터뷰 기사의 진실을 밝히라’는 민언련 등의 요구에 대해 “억지 주장”이라며 “본보 기사를 읽지도 않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주장들”이라고 비난했다. 또 “금세 확인할 수 있는 신문 기사를 멋대로 왜곡하는 이유가 정말 몰라서인지, 다른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안타까움’까지 토로했다.


그러나 민 기자와 <동아일보>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민 기자야 말로 언론단체의 논평과 성명을 ‘제대로 확인’ 했을까? 금세 확인할 수 있는 남의 단체 논평과 성명을 멋대로 왜곡하는 이유가 정말 몰라서일까,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어서일까?


민언련만 예로 들어보자.

민언련은 논평에서 민 기자가 기사에서 인용한 2000년 당시 기사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며 <동아일보>에 대해 “이명박 띄우기와 ‘이명박 BBK 연루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고 썼다. 여기에 무슨 ‘왜곡’이 있나.


2000년 당시 <동아>의 기사는 “인터뷰 약속 시간도 이명박 스타일 그대로”, “이 대표(이명박)의 첫 목표는 ‘사업 첫해부터 이익내기’. 늘 그랬듯이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꼽는 일”, “‘사업인건 정치건 일단 시작하면 목숨만 빼놓고 모든 것을 걸겠다’는 그의 다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등 온갖 낯 뜨거운 미사여구를 동원해 ‘선거사범’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이명박을 띄웠다.


또 “김경준 BBK 투자자문 사장을 영입했다”는 기사 내용은 적어도 ‘이명박 BBK 연루 사실’ 정도는 보여주고 있다. 기사대로 해석하자면 “영입했다”는 것은 그가 주도적으로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대표는 김 사장에 대한 기대가 몹시 큰 눈치다”며 “‘김 사장이 지난 해 BBK 설립 이후 한국증시의 주가가 60% 빠질 때 아비트리지 거래로 28.8%의 수익률을 냈다’고 소개하면서 연방 김 사장의 어깨를 토닥였다”고 한 부분은 은근히 독자들의 BBK 투자를 부추기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까지 있다.


‘엉뚱한 말장난’ 너무 실망스럽다


민언련은 지난 논평에서 “당시 이명박씨를 취재한 기자들이 취재수첩을 들춰보거나 이 후보에게 받은 명함만 살펴봐도 ‘특종’을 터트릴 수 있었지만 중앙과 동아는 그러지 않았다”며 “이들은 ‘특종’보다는 ‘특정후보에 대한 줄서기’를 택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여전히 유효한 의문이자, 언필칭 ‘언론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로 보인다.


2000년 기사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본다면 그날 이명박에 대한 동아일보의 인터뷰는 이렇게 이뤄졌다.

첫째, 인터뷰는 아침 7시 30분부터 ‘두 시간 이상’이나 이뤄졌다.
둘째, 이 후보는 일요일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김경준씨를 대동하고 인터뷰에 나섰다.
셋째,<동아일보> 측에서도 무려 두 명 아니 사진기자까지 포함된다면 세 명의 기자가 인터뷰 현장에 있었다.
넷째, 두 시간 이상 4∼5명이 모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200자 원고지 7∼8매의 기사가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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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양이 부족해 기사에 담지 못했거나, 기사에 담기 애매한 대화들이 충분히 오갔으리라 여겨진다. 분명 명함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 내용을 당당하게 밝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길래 말장난으로 되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일까.

당시 이명박씨를 인터뷰했던 <월간중앙>의 윤석진 기자와 <일요신문>의 김진령 기자(현 <시사저널> 차장)는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들은 대로 썼다”고 떳떳하게 밝혔다.


특히 김진령 기자는 2000년 당시 “1년 전 BBK란 투자자문사를 세웠는데 투자자문사에게 증권사는 꼭 필요하다”고 말한 이명박 후보의 말을 검찰발표보다 더 신뢰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기자 시절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한 박영선 대통합신당 의원도 당시 정황을 상세히 소개하며 ‘이 후보가 나에게도 아비트리지 투자를 권했다’는 사실까지 증언했다.


동아일보에는 이런 ‘언론인’이 정말 단 한 명도 없을까?
비겁하게 이따위 ‘엉뚱한 말장난’을 해서까지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의혹을 감싸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날이 갈수록 망가지는 <동아>의 모습이 이제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런 <동아일보> 안에서 이런 글이라도 써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자들도 참으로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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