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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시중 씨의 방통위원장 임명을 반대합니다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8. 3. 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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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9일로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는 방송위원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분명 국가기관인데도 직원들은 민간인 신분을 가지고 있던 뭐라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정도로 아주 요상한 곳인데, 요즘 그 방송위원회의 뒤를 이어 만들어진 방송통신위원회라는 곳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많습니다.

방송위원회...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 했는데, 그래도 굳이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소속 독립행정기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국가기관임에도 행정부에도 대통령 밑에도, 사법부에도, 입법부에도 속해있지 않은, 그야말로 정부조직 가운데 나홀로 조직으로 존재하던 곳입니다.

왜 이렇게 '요상한 곳'이 되었냐하면, 바로 '방송'이라는 것을 다루기 때문인데요.
방송이라는 것 자체가, 어디에 소속될 수 없는, 독립성과 중립성을 엄격히 요구받는 것이고, 이 방송과 관련된 온갖 정책을 총괄하는 곳이 바로 방송위원회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거기 직원들은 다 민간인이지만 위원들, 그 중에서도 상임위원들은 '공무원' 신분을 가지게 됩니다. 정무직 공무원인 것이죠. 위원장은 장관급, 부위원장 이하 상임위원들은 차관급 공무원인데, 이들이 5명이고 그밖에 비상임 위원이 4명입니다. 이들 9명이 위원회를 열어 어떤 사안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문에 '무소속 독립 합의제 행정기구'라고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법무부, 노동부, 환경부 같은 정부부처의 경우 장관이 결정을 내리면 그대로 굴러가게 되지만, 이 방송위원회라는 곳은 위원장이 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였죠. 정 합의가 안되면 표결에 붙여 과반 이상의 동의를 구해야만 어떤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도대체 거기가 뭐하는 곳이었어?' 라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사실 방송위원회는 TV를 즐겨 보는 시청자라면 나름 친숙하게 여길 수 있는 곳입니다. 왜냐? 우리나라 TV에서는 방송을 시작할 때나 마칠 때 '한국방송(혹은 문화방송, 서울방송..)은 방송위원회의 심의규정을 준수하고.. 어쩌고저쩌고..'라는 멘트를 꼭 하게 되어 있고, 특히 예능프로그램 같은 볼 때 연예인인들이 좀 과다한 언행을 할 때 자기들이 알아서 '방송위원회 심의 어쩌고저쩌고' 할 때가 있지요. 또 간접광고나 방송사고, 노출 등 부적절한 방송이 있으면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 주의, 방송금지 등의 조치도 받습니다. 그만큼 방송에 있어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방송위원회였습니다.

그런 방송위원회의 권한과 역할을 모두 이어받는 곳이 바로 방송통신위원회, 줄여서 방통위라고 하는데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함과 동시에 만들어지게 된 이곳이 그동안의 정치적 독립성, 중립성을 아예 내팽개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일단, 방송위원회와는 달리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무소속으로 지켜왔던 중립성과 독립성을 일단은 벗게 된 건데, 이것 자체가 많은 우려를 받았습니만, 사실 방송위가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겪은 소외와 무능함도 있던 터라 운영의 묘를 살리면 어떻게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방송위는 9명의 위원을 대통령이 3명, 국회의장이 3명, 국회 문광위가 3명을 추천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그 중 위원장을 위원들 스스로 논의해서 결정하게 했던 데 반해, 방통위는 위원장을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또한 방통위를 대표하는 수장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죠.

그런데, 이번에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측근 중의 측근', '고문 중의 고문'이라는 불리는 최시중이라는 사람을 위원장에다 인선해버렸습니다. 최시중 씨는 지난 대선 기간에 이명박 캠프의 이른바 '6인회'라는 곳의 핵심멤버이기도 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사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이었다고 하여 이번 인사가 '형님인사'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구요.

어쨌든 그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자, 정치적 중립성을 전혀 지키지 않았던 사람을 독립성과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구의 수장 자리에 앉히겠다는 것이 이번 인사인 것입니다.

예전에 한 번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언론특보를 하던 양휘부라는 사람이 한나라당 추천몫의 방송위원이 된 적이 있는데, 엄청난 반대에 부딪힌 적이 있었더랬죠. 끝내는 방송위원이 되긴 했지만, 그 안에서 혼자 뭔가를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관계로 그 사람의 정치적 편향성이 방송위원회의 독립성을 크게 해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역시 언론특보를 하던 서동구라는 사람이 'KBS 사장'으로 임명된 적이 있는데, 그때 역시 방송의 독립성을 해칠 인물이라고 하여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끝내 9일만에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습니다.

공영방송이든, 방통위이든 선거 캠프에 몸담았던 인물 정도가 들어올 자리가 아니라는 거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대선 때부터 '신문방송 겸영', 'MBC/KBS2TV 민영화' 등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방송의 공공성 보다는 산업논리를 내세워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겠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핵심 미디어 정책인데, 최시중이라는 사람은 분명 이것을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비록 '멘토 중의 멘토'로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지만,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것을 막아나설 수 있는 정도의 인물을 아닐뿐더러, 동아일보 출신인 그의 소신도 그렇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아마 이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신문방송 겸영을 앞장 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에다 방송사 하나 주고, 중앙일보에도 하나 주고...동아일보에도 주고 싶겠지만 동아는 돈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구요.. --;

어쨌든, 이런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는 것을 방송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의 경우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뜻도 보일 정도구요.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에서도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내정설을 흘리더니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2일 인선을 발표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최시중 씨 정도 되는 사람이면 논란이 되는 방통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에 앉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직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걸 보면 분명 훌륭히 비서실장 역을 해낼텐데 말이죠.

사실, 지금 당장 최시중 씨가 방통위원장이 된다고 하여 방송 환경이 아주 급격하게 어떻게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방통융합이 되면서 이미 방송환경에 산업논리 위주로 재편성되어온 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이었고, 이 흐름은 앞으로 계속 가속화될 것입니다.

현재 핵심은 이런 흐름 속에서도 어떻게든 방송이라는 것의 공공성(돈벌이는 되지 않지만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돈이 없어 케이블, IPTV, 위성방송 같은 거 신청하지 않아도 재밌고 유익한 방송을 볼 수 있는 무료보편적 서비스권 등)을 지켜야 한다는 건데, 최시중 씨의 등장은 그런 브레이크 내지는 제어장치를 아예 내던지겠다는 거고, 방송환경의 산업적 재편성에 가속페달을 달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최시중 씨의 방통위원장 임명을 절대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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