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08학번에게 전하는 두 통의 편지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8. 3. 7. 14:17

본문

새로운 학기,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희망차고, 가슴 부푼 시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새로 초등학교에, 중학교에, 고등학교에,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는 새내기들의 설레는 마음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겠지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도 예전 한 때, 부푼 가슴을 안고 새로운 교정에 들어서던 그때가 살포시 기억이 납니다. 코 찔찔이 초딩이 되었을 때도, 중딩, 고딩이 되었을 때도 물론 여전히 가슴 한 켠에 아련하면서도 즐겁고 기분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학에 입학할 때가 더욱 설레었던 것 같습니다. ^^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고,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뭐 술도 마시고... ^^ 어쨌든, 교실 안에만 갇혀 책과 씨름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뭔가 '자유'를 만나게 된 그 느낌. 물론 그 '자유'가 온전한 것이지도 않고,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지만, 어쨌든, 그 느낌들은 대학 새내기가 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근데, 또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공간에 처음 발을 딛는 새내기들이라서 그런지 사회의 선배들은 새내기들에게 이런저런 말도 많이 해주고 싶은가봅니다. 가까이서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학교 선배들에게 그런 말을 듣기도 할테고, 이런저런 책을 통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겠지요.

최근에 이번에 대학생이 되는 08학번 새내기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전해주는 두 가지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정확히는 '편지'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어쨌든 '선배가 08학번에게' 전하는 글이어서 나름 '편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바로 3월 7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78학번이 08학번에게>이란 글과, 지난 1월 30일 조선일보에 실린 <08학번에 들려주는 80학번의 추억>이란 글입니다.

앞의 글은 배병삼 영산대 교수가 친구의 딸에게 전하는 편지글의 형식을 띠고 있고, 뒤의 글은 김창균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이 08학번들에게 전하는 어떤 '당부'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김 차장의 글은 한 달도 전에 읽었는데, 오늘 배 교수의 글을 접하면서 '참 다르다', '사람의 생각도 다르고, 그 글을 담는 신문의 색깔과 지향도 참 다르다'는 생각을 아주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그 구성원에서부터 논조에 이르기까지, 하다못해 재정에 있어서까지 전혀 판이한 신문이긴 합니다만, 08학번 새내기라는 똑같은 대상을 바라보며 쓴 이 간단한 편지 내지는 칼럼을 통해서까지 그런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재밌기도 했습니다.

일단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세상읽기] 78학번이 08학번에게 / 배병삼
 
»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주미에게!
진작 네 아버지로부터 대학 진학 소식을 들었는데도, 밥 한 끼 먹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낯선 객지에서 강의 들으랴, 끼니 챙기랴 고생이 심하겠구나. 꼭 30년 전 이맘때 네 아버지와 나도 설레며 대학생활을 시작했지. 이 글은 대학에 남은 78학번 선배가 08학번 신입생에게 전하는 짤막한 당부쯤으로 들어주면 좋겠구나.

조선소에서 몸통을 드러낸 배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먼바다를 항해할 큰 배들은 나룻배와 달리 밑바닥 앞부분이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와 있지. 이걸 ‘용골’이라 한다. 용골은 한바다의 풍랑에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쇠뭉치란다. 그렇다면 배는 역설적인 몸뚱이다. 빨리 목적지까지 가려면 제 몸을 가볍게 해야 마땅한데, 또 ‘제대로’ 항해하려 무거운 쇠뭉치를 매달아야 하는 역설 말이다. 네가 대학에서 이런 역설의 이치를 깨달았으면 한다.

대학은 말과 글로 이뤄진 곳이다. 말과 글에는 겉과 속이 있단다. 현란한 주장, 두툼한 책에 쓰인 글의 속살을 꿰뚫는 눈을 길러야 한다. 내용 없는 헛말, 증명할 수 없는 주장에는 속지 않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해부학 시간에는 드러난 거죽 아래에 결이 다른 속살이 있음을, 문학 시간에는 말글의 등 뒤에 또다른 뜻이 숨어 있음을 배우기 바란다. 세상사 이치가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만 제대로 알아도 경망과 경박함으로 범하는 많은 잘못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늘 의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잘된 답변보다 어설픈 질문이 낫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교수님들은 잘 쓴 답안지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더 기꺼워하실 게다. 허나 질문이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 법. 책을 내 식대로 읽고, 낯익은 세상과 삶을 ‘낯설게’ 대하는 눈에서만 태어난다. 도서관은 시험공부 하는 장소가 아니라, 질문을 만들기 위한 자료 창고라는 점을 잊지 말아라.

눈(안목)을 기르는 데는 고전만 한 것이 없더구나. 고전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길러져 나오는 샘 구실을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허나 상상력이란 환상이나 백일몽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고전을 창의력의 샘으로 지목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과 세계의 근원성과 고유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곧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능이 아니라, 고전에 담긴 근원성과 고유성을 해석해 내는 힘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상력이란 멋대로 꾸는 망상이 아니라 그 속에 기본 문법이 깔려 있는 것이지. 고전에서 추출한 삶의 문법이 앞으로 60년 세월의 난바다를 헤쳐 나갈 배의 용골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태가 흉흉해서 대학도 쓰임새 있는 인간을 만드는 공장처럼 변한 지 꽤 되었다. 기업이 요구하는 네모꼴·세모꼴 인간을 만들지 않는다고 대학에 눈 흘긴 지도 꽤 된다.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무슨 큰 자랑인 세태가 됐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 네가 기업이 요구하는 네모나 세모가 되어 그들의 쓰임새에 맞추고 난 다음에 또 너보다 더 정교한 네모나 세모가 나타나면 자연히 폐기처분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이것이 ‘삼팔선’이니 ‘오륙도’니 하는 시쳇말의 근원이다. 쓰임새 있는 인간, 실용주의 뒤에 숨어 있는 비인간주의를 잊어선 안 된다.

나는 네가 세모꼴을 만들어 내는 사람일지언정, 너를 세모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앞으로 헤쳐갈 60년 세월 속에 너라는 배는 높고 낮은 파도의 모서리에 치여 휘청거리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파도를 이겨낼 용골을 대학 속에서 만들어 내기를, 또 고전 속에서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건투를 빈다.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김창균 칼럼] 08학번에 들려주는 80학번의 추억
김창균 정치부 차장

70년대 유신체제에서 지하활동을 하던 대학 운동권들은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일제히 양지 바른 곳으로 나왔다. 이들은 고등학교, 고향 후배 등 모든 인연을 동원해 신입생들을 이념 서클로 끌어들였다. 필자 같은 어중이떠중이들도 선배 손에 이끌려 '○○연구회'라는 모임에 가입했었다. 운동권의 규모가 일시적으로 폭증한 시절이었다.

지방 출신 선배들의 캠퍼스 주변 하숙집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세미나'가 열렸다.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민족경제론, 중국의 붉은 별 같은 '교양필수' 서적을 읽으며 고등학교 때 주입된 관제(官製) 세계관을 까부수는 것이 오리엔테이션 코스였다. 이른바 의식화 체험이었다.

모든 토론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역사는 식민지의 굴곡을 벗어날 수 없다'든지 '한국경제의 매판(買辦·외국자본의 앞잡이)구조는 미국 독점자본의 이해(利害)에 충실하게 움직인다'는 한두 가지 결론을 향해 달려갔다.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과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싶어 몇 차례 이견을 말했다가 선배로부터 '회색분자'라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 5월 신(新)군부의 쿠데타가 터졌다. 재미 삼아 이념서클에 가입했던 상당수 신입생들이 떨어져 나갔다. 정보 경찰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전전하며 비밀접선하듯 세미나가 이뤄졌다. 서클의 대표적인 이론가 선배들은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초겨울 바람이 매워지며 '○월 ○일 ○시 종로 ○가 파출소 앞에 집결해 짱돌을 던지고 달아난다'는 식의 지령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문제의식도 트릿하고 겁도 많았던 '회색분자'의 이념서클 경력은 1년도 못 채우고 그렇게 종료됐다. 그러나 말랑말랑한 뇌에 주입된 좌파 의식화 세포는 오랜 세월 살아 움직이며 필자의 사고(思考) 과정에 끼어들곤 했다.

문제의식이 투철하고 용기 있는 386세대들은 대학 4년 동안 이념서클 커리큘럼을 성실히 수료한 뒤 사회변혁 투쟁에 몸을 던졌다. 이들의 머릿속엔 정교하고 강고한 의식화 메커니즘이 자리잡았다. 노무현 정권의 주축세력으로 자라난 이들이 지난 5년 동안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80학번들이 배웠던 것처럼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실패한 역사가 아니었다. 한반도 전체가 스탈린의 폭압체제에 빨려 들어갈 뻔한 위기에서 그 반쪽이나마 건져낸 극적인 사건이었다. 5·16 군사혁명 세력이 그 시대의 유행이었던 사회주의 자립노선 대신 수출 주도노선에 올라탄 것은 80학번이 배운 '매판의 길'이 아니었다. 나라를 선진국 문턱까지 초고속으로 이끈 하이웨이 진입이었다. 이승만의 건국(建國)과 박정희의 부국(富國)으로 이어진 대한민국의 60년 여정은 2차대전 후 140여 신생국 중에서 달리 예를 찾을 수 없는 기적의 드라마였다. 이런 사실들을 알기 쉽게 깨칠 수 있는 '우파 의식화 교과서'가 80년 봄엔 없었다.

요즘도 책방엔 80학번 세대의 의식구조를 감염시켰던 좌파서적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학 신입생들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바이러스 퇴치 서적들 역시 그 주변에 꽂혀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전환시대의 논리를 들려주는 '10년 후' 시리즈(공병호), 해방전후사를 따뜻한 눈으로 재인식하도록 돕는 '대한민국 이야기'(이영훈), 자폐증적인 민족경제론 대신 번영의 경제관을 심어주는 자유기업원의 '자유주의 시리즈', 중국 지도부가 자신들의 붉은 별 마오쩌둥보다 더 배우고 싶어하는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오원철 전 수석)….

올 3월 대학 캠퍼스는 08학번들을 맞는다. 이들이 사회에 눈을 뜨며 어떤 책들을 읽느냐가 20~30년 후 국가 주도세력의 세계관을 결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자... 두 글을 읽고 난 느낌이 어떤가요?

사실 저는 김 차장의 글을 읽었을 때,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 80년대 대학가의 이른바 '의식화 교육'을 우려하며 08학번 새내기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겠다는 어떤 사명감이 느껴지십니까?

저는 좌파이념을 '바이러스'로 규정하고,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책에 대해서는 '바이러스 퇴치 서적'으로 규정하는 김 차장의 글이 08학번을 대상으로 또 다른 의식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글귀로 선동하면서 말이죠.

그에 반해 "내용 없는 헛말, 증명할 수 없는 주장에는 속지 않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며 "눈(안목)을 기르는 데는 고전만 한 것이 없더구나"라고 '고전읽기'를 강조하고, "네가 기업이 요구하는 네모나 세모가 되어 그들의 쓰임새에 맞추고 난 다음에 또 너보다 더 정교한 네모나 세모가 나타나면 자연히 폐기처분되고 말 것이라는 점"과 "쓰임새 있는 인간, 실용주의 뒤에 숨어 있는 비인간주의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배 교수의 글은 참 다른 것 같습니다.

역설이 판치고, 비인간적인 모습이 정형화되어가는 세상을 이제 막 헤치고 살아야 할 새내기에게 진정으로 '당부'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저의 '오버'고 또 다른 '편견'일까요?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