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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하지 않는 언론인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7. 6. 1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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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하지 않는 언론인

4월 16일 KBS <미디어포커스>는 ‘세지마 류조로 본 한일 극우 커넥션과 언론’에서 일본 관동군 참모 출신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서 정·재계의 막강한 배후 조종자로 손꼽이는 ‘세지마 류조’를 한국 언론이 어떻게 ‘미화’했는지 보도했다. <미디어포커스>는 세지마 류조가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주역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원자에 명단을 올릴 정도의 ‘극우 군국주의자’임에도 한국 언론들은 새역모의 교과서 왜곡에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서 정작 그를 ‘친한파’, ‘지한파’로 소개하며 ‘미화’해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3월15일 중앙일보는 안성규 정치부 차장의 기명칼럼 <두 일본인>에서 세지마 류조에 대해 “전쟁을 반성하는 양심적 군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소개하고 일본에서 ‘양심적’이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심지어 “새역모 같은 극우파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일본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는지 암담할 뿐”이라며 한탄하기까지 했지만 세지마 류조가 새역모의 배후인물이라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세지마 류조는 단순한 일본 우익의 배후인물이 아니라 인식마저도 일본 극우세력과 같은 ‘정신적 지주’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 ‘기산하(幾山河, 이쿠산카)’에서 ‘대동아전쟁’을 정당화해 “이 전쟁은 ‘침략전쟁’, ‘계획전쟁’이 아니라”며 “완전히 ‘자존자위의 수동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 우익의 행사에서 이른바 ‘가미가제 특공대’에 대해 “국가비상시의 젊은이들의 행동은 전례없는 장렬한 거사”라고 발언하는 등 ‘군국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세지마의 ‘망언’ 비슷한 시기에 세지마의 ‘자서전(기산하)’이 출간되자 이를 4번에 걸쳐 기획기사로 다루면서 “돈과 지위를 탐하지 않아”, “한국에 도움된 것이 많았다”는 등 세지마를 ‘미화’하기만 할 뿐 망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 이해하기 힘든 보도태도를 보였다.

<미디어포커스>는 이런 중앙일보의 태도에 대해 이해를 돕는 사실을 밝혔다. 세지마가 중앙일보와 삼성을 만든 이병철 회장과도 각별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80년 신군부에 세지마를 소개하기도 했고, 87년 이 회장의 영결식에서는 세지마가 해외우인 대표로 조사를 낭독했다고 한다.

이날 <미디어포커스>는 또 세지마 류조가 박정희에서부터 노태우에 이르는 군사정권 시절 한일관계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집중조명하며 한일 정·재계에 형성된 ‘극우 커넥션’을 파헤쳤고, 언론도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혔다.

세지마 류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패망 직전 관동군 참모로서 박정희의 직속상관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세지마는 박정희 등 육사 출사의 한국 군인들을 등에 업고 지난 3공화국에서 6공화국까지 한일 외교를 막후에서 조정했다. <미디어포커스>에 따르면 “박정희에게 비공식적인 통로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세지마 류조”였고 “박정희 시대 때부터 한국의 유수한 인사가 일본에 갈 때는 세지마 류조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세지마의 역할은 80년대 이후에도 한국 내 일본육사출신 인맥을 통해 한일외교의 막후 실력자로 영향력을 이어 갔으나 세지마 류조를 매개로 이뤄진 한일외교관계에서 한국은 한 차례도 일본으로부터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듣지 못했다.

<미디어포커스>는 이 때문에 “세지마 류조는 진정한 역사 청산을 가로막아 온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언론은 이런 세지마를 ‘한일간 현안타결이 막바지에 이를 때마다 해결사역할로 나섰던 일본 정재계의 막후실력자’, ‘전략전술이 워낙 특출해 관동군내에서는 거의 신격화’, ‘사생활이 깨끗해 일본에서는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되게 알려왔다. 세지마는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99년 전경련의 ‘국제자문단 위원’으로 위촉받았을 정도였지만 전경련의 결정에 대해 비판을 가한 신문은 당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뿐이었다. 그나마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가 세지마와 한국 군부의 관계를 끈질기게 발굴했고 인터넷 매체들이 알려왔기에 <미디어포커스>의 심층보도가 있을 수 있었다.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의 와타나베 다케사토 교수는 <미디어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언론 종사자들은 과거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언론인들이 새겨서 들어야 할 말이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파문에 온갖 지면을 할애해 비판을 하는 이면에서 정작 그 배후인물을 ‘미화’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두 번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05년 4월 20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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