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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게서 '주사파'의 향기를 맡다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8. 4. 1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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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홍보대사'를 맡았던 진중권이 18대 총선을 평가하는 글을 썼다.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에 쓴 진중권의 글 : "진보신당, 지금부터 제대로 놀아보자")


그 글에서 나는 진중권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는 'NL(혹은 주사파)'의 흔적을 발견했다.
적지 않은 운동권이 그렇지만, 특히 NL들은 어떤 어려움을 닥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가리켜 '승리적 낙관주의' 또는 '혁명적 낙관주의'라 하기도 한다. 가령 어떤 투쟁이 분명히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기어이 그 안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고, '승리했다'고 '자평'하는 것이다.

물론 '승리적 낙관주의' 그 자체가 나쁘다 볼 수는 없겠으나, 이게 습관이 되고 일상화되다보면 도대체 잘못한 것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고,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어떤 일을 추진하던 과정에 생각을 달리하는 집단과 사람이 있었고, 돌이켜보건대 그들의 의견이 개진되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임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반성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갈라지게 된 데는, 바로 지난 대선 패배를 평가하는 데 있어, 당의 주류인 NL이 이런 '승리적 낙관'에 가까운 평가를 하는 것에 이른바 '분당파' 혹은 '신당파'들이 참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집단', 그래서 여전히 '패권주의로 가득 찬 집단'이라는 것이 당시 신당파 혹은 분당파가 NL 주류들을 향해 내린 지적이었다.

그런데, 그 '승리적 낙관주의'를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촉진하고, 힘을 실었던 진중권의 글에서 발견하다니!!

진중권의 글 전문은 해당 글이 실린 곳에서 확인하길 바라고, 여기엔 몇 부분을 인용해보겠다.

적어도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의 현재 실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분패 했지만, 심상정, 노회찬 후보는 수도권에서 당선권에 근접했고, 그밖에도 울산의 노옥희, 거제의 백순환 후보는 친박연대나 통합민주당을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와 당당히 겨루었다.
 
0.1%가 모자라 의석을 못 얻은 것은 정말 아쉽다. 하지만 10년간 쌓아온 상징자본을 몽땅 민주노동당에 넘겨 준 채 빈 손으로 뛰쳐나온 정당이라는 점, 게다가 당을 알리는 데에 쓸 수 있었던 시간이 채 한 달이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3%에 근접한 득표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여기서 나는 외려 가능성을 본다. 4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출발할 테니까. 진보신당이 투표용지의 끄트머리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황당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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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총선에서 의회진출이 좌절되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하지만 그 고투는 4년 후에 10석의 결실로 나타났다. 그때에 비하면 상황은 훨씬 유리하지 않은가. 4년 후에는 그보다 더 큰 기대를 가져도 될 것이다.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보수의 광풍 속에서 자신과 열정을 잃은 이들이 많다. 하지만 '2MB(이명박)' 정권의 극단적 시장주의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그럴수록 대중은 진보정치를 선택적 옵션이 아닌 생존의 전략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주요한 지역에서 진보신당의 후보가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한나라당과 경쟁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과거에는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만 가능했던 일이 이제 수도권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진보정치가 그저 '좌파'라 불리는 소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정도로 보편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도는 범례적 성격을 갖고 있어, 서울에서 나타난 현상은 조만간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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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에서는 선거 결과를 놓고 환호를 했다고 한다. 물론 축하할 만한 일이나, 지금 그렇게 만세나 부르고 잇을 때가 아닌 것 같다. 권영길 후보는 무엇보다 지난 대선의 후보였고, 강기갑 후보는 한나라당 분열의 도움,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박연대의 지원을 받았다. 정당 투표의 득표율은 배타적 지지를 선언한 단체와 세력의 고정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뽑힌 비례대표 의원도 창조한국당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인물이란다.
 
진보세력의 '헤게모니'니 어쩌고 하는 헛소리가 들린다. 진보신당은 민노당과 한가하게 헤게모니 싸움이나 해서는 안 된다. 두 당은 애초에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가 다르다. 민노당이 낡은 이념에 갇혀서 변화를 거부하는 한, 외연의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 결국 한총련이나 전국연합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그 낡은 이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하나하나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진보신당의 '홍보대사'라는 사람이 이런 식의 평가로 '자족'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 몇 가지만 이야기 해보려 한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노회찬·심상정 두 후보가 아깝게 패배한 것에 대해 참 가슴 아프게 여기고 있다. 그 두 사람의 당선을 정말 바랬고, 기대했다.

그래서, 나름 블로그에다 '사천시민·노원구민·덕양구민·창원시민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출구 조사 결과가 나빴지만 어제 개표방송을 끝까지 지켜 보면서 노회찬 후보가 홍정욱에게 앞설 때면 정말 기뻤고, 뒤질 때는 손에 땀을 쥐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 다 패배했다.
문화예술계의 내노라하는 진보적 인사들이 노원구와 덕양구에 총출동하다시피해서 지원을 했고, 진보적 지식인들 또한 최선을 다해 도왔다. 그럼에도 낙선하고 말았다. 특히 노회찬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계속 우세를 보이고 있었음에도 지고 말았다. 그래서 충격이 더 크다.

진중권, '혁명적 낙관주의 전사'로 거듭나나?

그런데, "당선권에 근접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나? 그걸 '현재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며 '성과라면 성과'라고 하나?

그래서, "진보정치가 그저 '좌파'라 불리는 소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정도로 보편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는 범례적 성격을 갖고 있어, 서울에서 나타난 현상은 조만간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갈 것"이라고 기대어린 전망을 내놓은 건가?

"울산의 노옥희, 거제의 백순환 후보는 친박연대나 통합민주당을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와 당당히 겨루었다"고? 울산의 민주노동당 후보, 호남의 민주노동당 후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2위로 한나라당 혹은 통합민주당 등과 겨루었다. 진보정치 1번지 울산에서, 그것도 정몽준이 빠진 자리에서 2위 하고,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있는 거제에서 3위한 것을 가지고 '당당히 겨루었다'고 자평할 수가 있나?

노옥희 후보가 출마한 울산 동구는 정몽준이 빠진 데다 친박후보까지 출마해 나름 '당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백순환 후보가 출마한 거제는 만약 당이 분열이 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자웅'을 겨뤄볼만한 곳이었다.

물론 한계가 많았다. 준비기간이 짧고, 돈도 많이 없고, 사람도 부족하고, 낯선 정당을 알려야 되고... 그런 것 다 인정하지만 그래도 '당당히 겨루었다'고 하는 건 너무 한다.

정당투표를 평가한 대목은 더 황당하다.
"0.1%가 모자라 의석을 못 얻은 것은 정말 아쉽다",
동의한다. 정말 아쉽다.

근데, "10년간 쌓아온 상징자본을 몽땅 민주노동당에 넘겨 준 채 빈 손으로 뛰쳐나온 정당이라는 점, 게다가 당을 알리는 데에 쓸 수 있었던 시간이 채 한 달이 안 됐다는 점"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성과"라니.

진중권이 지적한 두 가지는 이미 신당을 만들고, 이번 총선을 준비할 때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한계'였다. 그거 알고 진보신당은 선거를 한 거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3%도 못얻어 비례대표 당선 못할 거 뻔히 알면서 이랜드 노동자와 피우진 중령을 비례대표 후보로 세웠단 말인가?

"여기서 나는 외려 가능성을 본다"는 대목에 이르면 진중권의 자뻑이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어느 치기어린 NL의 모습이 오버랩된다.진중권처럼 주체사상을 저주하도록 싫어하는 이가 '주체적문예이론'에서나 볼 것 같은 '혁명적 낙관'에 이토록 매료되어 있다니. 나름 새로운 발견이다.

진중권은 "4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조건에서 출발할 테니까"라며 "진보신당이 투표용지의 끄트머리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황당하던지"라고 했다. 4년 뒤에는 무슨 용 쓰는 재주가 있어 진보신당의 기호가 앞으로 당겨질까?
그리고 '투표용지 끄트머리에 있어 황당하다'라? 4년 전 민주노동당은 정당 기호 12번이었다. 지난 대선 때 이회창은 12번이었다.

권·강에 대해 이렇게 초를 치고 싶을까?

진보신당에 대해서는 온갖 낙관적인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에 주저함이 없는 진중권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지금 그렇게 만세나 부르고 잇을 때가 아닌 것 같다"며 "권영길 후보는 무엇보다 지난 대선의 후보였고, 강기갑 후보는 한나라당 분열의 도움,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박연대의 지원을 받았다"고 폄하한다.

"정당 투표의 득표율은 배타적 지지를 선언한 단체와 세력의 고정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라며 "뽑힌 비례대표 의원도 창조한국당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인물"이라고 초를 친다.

내가 이 글을 쓴 결정적 이유다.

내가 강기갑 의원의 당선과 권영길 의원의 당선을 진심으로 반갑게 여기고 있고, 이번 총선 최대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나, 나 역시 이것으로는 성이 전혀 차지 않는다. 정말 어려웠던 선거이기에, 한나라당이 개헌가능선인 200석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던 선거이기에 그나마 위안을 가졌던 게 강기갑 의원의 선전이었던 것 뿐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강·권 두 의원이 당선되었지만, 진중권의 지적대로 비례대표 지지율은 정말 기대에 못미친다. 하지만 진중권의 분석처럼 권 의원이 대선 후보였다는 이유로, 강 의원은 친박연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만세나 부르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한다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다.

어떻게 노·심 두 후보에 대해서는 '희망'을 발견하면서 권·강 두 사람에 대해서는 이토록 폄하하는가? 혹 '주마가편'이라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닌 것 같다.
긴말은 않겠다. 강기갑 의원의 당선에 대해서는 '진보신당 기관지'라 해도 무방한 '레디앙'이 아주 잘 분석해놓았다.

"사천 노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한 번 읽어보시라. 내가 비록 사천에 살지는 않지만, 아주 현장성 있게 분석해놓은 글이라고 본다. 이런 강기갑 의원의 경험을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은 배워야하지 않겠는가? '친박연대의 도움' 어쩌고저쩌고 그 성과에다 초를 쳐서 얻을 게 도대체 무언가? 실력이 있었으니 '적'의 도움조차 얻어낸 것이다. 애초에 실력조차 없었다면 친박연대가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무슨 사건이 생겼을까?

진중권이 이렇게 파토를 놓으려 하는 이유는 "민노당이 낡은 이념에 갇혀서 변화를 거부하는 한, 외연의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 결국 한총련이나 전국연합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라서,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들은 그 낡은 이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서, 민주노동당이 몰락한 자리에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의 대표주자'로 거듭나려고 해서인가보다.

진중권 교수님, 말 안듣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자제해주세요

제발 이러지 말자.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그야말로 냉정한 심판이다.
진보신당의 3%도 되지 않는 비례대표 득표율 또한 민중들의 냉엄한 심판이다.

어차피 갈라진 것, 다시 합쳐라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서로 남의 살 갉아먹기는 하지 말자. 만약 그런다면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도 함께 '한총련',' 전국연합'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앞으로 5년, 민주노동당은, 그리고 진보신당은 서로 힘만큼은 모아야 한다. 모든 순간 그럴수는 없겠지만,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함께, 같이 어깨를 걸 때는 주저함이 없어야 된다.

그런데, 진중권 같은 인간이 이런 식을 글을 휘갈겨댄다면, 정말 두렵다.
4년 뒤에는 또 어떤 심판을 받아야될지 정말 두렵다.
진중권은 자제해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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