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난리입니다. 평화롭던 집회가 도로로 진출했다고 ‘불법’으로 변질됐다고 합니다.
순진한 시민들이 그랬을 리 없다, 배후를 색출하라!
검경 합동대책회의에서 ‘불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국정원까지 참여했다지요.
조중동도 입을 맞춥니다. 중앙일보는 이번 일을 제대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새 정권의 법 집행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불법시위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며 “법에 허용된 대응수단은 아낌없이 활용해 공권력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아낌없이’.
그러면서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 ‘광우병 소 반대’만 외치던 지금까지의 집회가 ‘반정부 투쟁’으로 ‘정치적 집회’로 변질되었다고도 합니다.
“집회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주장뿐 아니라,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대운하 건설 반대’ 등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을 규탄하는 구호들이 나와, 반 정부 시위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조선일보)
“검찰과 경찰은 시위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구호가 전면에 나타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중앙일보)
“정치구호 제창과 돌발적인 집단 이탈 행위는 문화제의 성격에서 벗어난다”, “촛불문화제에서의 건전한 토론과 문화행사는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화제가 특정 목적을 위한 정치집회로 변질되는 것까지 용인될 수는 없다.”(중앙일보 사설)
“문제화 성격의 촛불집회는 주말을 기점으로 정치적 성격이 짙어졌다.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정치 구호가 자주 나왔다. 정치 구호는 24일 집회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청와대로 쳐들어가자’는 함성과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동아일보)
“집회에 반정부 좌파세력이 본격 가담하고 수백 명이 청와대로 쳐들어가겠다며 경찰에 맞서 새벽까지 수도 한복판에서 불법 시위를 벌인 것은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서는 일탈이다. 과연 이들이 국민 건강을 염려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려고 거리에 나선 순수한 시민뿐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동아일보 사설)
도대체 무엇이 ‘반정부’와 ‘친정부’를 나누는 기준이며, 또 무엇이 ‘정치적 구호’와 ‘비정치적 구호’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와 구호에다 ‘반정부’, ‘정치적’ 이란 딱지를 붙인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를 외쳐 온 촛불문화제는 처음부터 ‘반정부 투쟁’이었고, 정치적 구호가 만발한 정치행사였습니다.
만약 정부와 조중동이 ‘광우병 소를 먹기 싫다’는 국민여론이 처음 불거졌을 때, 이를 두고 ‘웰빙(참살이)’을 위한 시민들의 단순한 요구로 받아들였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입니다. ‘국민 건강권’을 이야기하는 데 그걸 두고 ‘우리 건강하게 만들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면 큰 오산입니다. 아니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였기에 그토록 쌩 깠던 것일까요?
무릇 정부를 향한 대중들의 요구는 언제나 정치적이었습니다. 그 정부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꼴통짓, 닭짓만 반복한다면 여지없이 ‘반정부 투쟁’으로 나아갔습니다. 지난 시기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 온 지난한 투쟁들은 언제나 ‘정치적’이었고, 때론 격한 ‘반정부 투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어느 때 ‘비정치적’인 구호가 나왔던 적이 있나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우리 백성들이 들고 나온 구호는 ‘대한독립만세’라는 자축의 구호와 ‘자주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당시 절체절명의 민족적 과제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이게 ‘비정치적’으로 보이나요?
(8.15 해방 당시 거리에 나온 조선 사람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해 있어났던 혁명의 시기, 민중들의 구호는 ‘독재 타도’, ‘부정선거 규탄’, ‘민주정부 수립’이었습니다. 이것이 ‘친정부 투쟁’으로 보이나요?
(4.19 당시 '민주주의'를 들고 나온 고등학생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한 사람들이 목말라 외쳤던 것은 ‘민주주의 만세’였습니다. ‘삼선개헌 반대’였고, ‘긴급조치 철폐’였습니다. 이 구호들에다 대고 ‘정치적’이라며 딴지를 걸어 댈 수 있습니까?
(유신독재에 항거하던 고은 시인.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0년 5.18 당시 광주시민들의 절절한 요구는 ‘전두환 신군부 타도’, ‘김대중 석방’, ‘계엄군 철수’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 였습니다. 시장 상인도, 구두닦이 총각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외쳐댔던 그 요구들이 정치적이라고, 반정부적이라고 매도할 수 있습니까?
(5.18 당시 '전두환 물러나라'는 구호가 등장.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987년 6월, 당시 거리로 몰려나온 수백만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그 덕에 우리는 조금씩 민주화를 이뤄갈 수 있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 당시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누구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지난 시기 우리 국민들이, 민중들이 ‘정치적 요구’를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마다 권력자들은, 그리고 수구보수언론들은 ‘반정부세력’이니, ‘불온세력이 침투했다’니,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는 식으로 헐뜯고 매도하고 탄압해왔습니다.
지금, 2008년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광장에 앉아 있다 도로로 한발자국 나가면 ‘비정치적인 구호’가 한 순간에 ‘정치적 구호’로 뒤바뀌고, 대번에 ‘반정부 투쟁’으로 낙인 찍혀 ‘불순분자’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60년대, 70년대, 80년대처럼 민주주의가 압살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저 백골단의 폭력과 지난 주말 동안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이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직후 이어진 검경 대책회의가 80년대 치안대책회의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군사독재 정권 시절 '백골단'의 모습.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4~26일 동안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진압. 출처 : 민중의소리)
(여성장애인들을 폭력적으로 끌고 가는 여성 경찰. 출처 : 민중의소리)이명박 정부가 계속 국민을 깔보고 정치를 개판으로 만든다면, 국민들은 더욱 정치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구호가 만발하고, 반정부 투쟁이 극에 달해야지만 이명박 정부는 과거 권력자들의 말로처럼 국민의 요구에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여러분 정치적인 시민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데 낯설어하지 마십시오.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자신감을 가집시다.
"배고파 못살겠다", 가장 정치적인 구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