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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습, 이한우 기자께서 갑부의 스캔들이나 주워담다니!!

조중동 잡다구리 후비기

by hangil 2008. 6. 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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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중동, 조중동' 여기저기서 성토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하다 하더니 갑자기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며 여론을 호도하려 했던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겠지요.
'조중동 구독중단', '조중동 구독금지', '조중동에 광고한 기업 제품 불매운동', '조중동 폐간' 까지 가히 조중동의 수난시대라 할 만 합니다.

평소 '찌라시 후비기' 코너 등을 통해 조중동의 편파왜곡허위과장 보도들을 지적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 조차 없이 네티즌들과 시민들이 알아서 조중동의 기사의 문제와 그 폐해를 낱낱이 후벼주고 있더군요.

해서 주 타겟은 조중동 그대로이나 방향을 약간 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은 주로 우리 사회의 핵심 사안이나 의제에 대한 조중동 보도나 사설, 칼럼 등을 비평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워낙에 많은 매체와 기자들, 그리고 네티즌들이 다 하고 계시니 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 '생활, 문화, 스포츠면의 기사', '기타 관심 밖의 기사나 주변 상황' 등 '잡다구리한 조중동 기사'를 하루에 하나, 둘 정도씩 골라 후벼볼까 합니다.

조중동이 우리 정치, 사회, 경제 등 사회 중심 의제에 대해 왜곡하고 허위과장해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부분, 특히 문화면 등에 대해서는 '신문도 두껍고, 볼 게 많다'며 호평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진짜 그런지 앞으로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지요~^^


오늘 조선일보를 보면서.. 민주노총 총파업 씹고, 촛불집회 딴지거는 데 하품이 나오다 뒷부분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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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24면에 게재된 <"세기의 플레이보이, 안식처 찾다">라는 기사인데요.
다른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가 유독 조선일보에, 그것도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지면에 실렸다는 것 자체가 의아스러웠고, 특히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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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이 기사는 이한우 기자(hwlee@chosun.com)가 쓴 기사입니다.
이한우 기자가 누굽니까?
그 이름도 빛나는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 아니겠습니까?
김대중, 류근일 등이 조선일보의 80~90년대를 사로잡았던 논객이라면, 이한우 기자는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진성호와 더불어 조선일보의 유력한 차기대표주자로 자리잡았던 사람이지요. 한때 '좌갑제, 우한우'라는 말까지 등장했었죠.

이한우 기자에 대해 좀 더 썰을 풀어볼까요.

1961년 부산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거쳐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번역서로 W. H. 월쉬의 {형이상학}, 리처드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조셉 블레이처의 {해석학적 상상력}, 길버트 라일의 {마음의 개념}, 조지아 윈키의 {철학적 해석학},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등이 있으며 직접 쓴 책으론 {우리의 학맥과 학풍},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 {철학은 99개의 눈을 가졌다} 등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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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은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 사상'에 쓴 글에 있는 내용(기자를 사병화한 {조선일보})으로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은 책을 번역하고 직접 저술하기도 하여 강 교수는 이한우 기자를 일컬어 "대단히 학구적인 기자"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읽으셨다시피 고려대 출신의 이한우 기자는 바로 고려대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최장집 교수에 대한 사상검증에 앞장서면서 '안티조선' 운동의 불을 지펴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한우 기자는 강준만 교수가 위 인용 글에서 "모교의 존경받는 교수의 등에 칼을 꽂는 비정한 '청부업자'로 변신한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을 문제삼아 명예훼손으로 강 교수를 고소하면서 진보개혁적 학계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나를 고소하라'는 운동까지 펼쳐져 '안티조선'이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한우 기자는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활약했고, 조선일보 80년 사사(社史) 편찬의 중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조선시대 임금 7명의 리더십을 분석한 '군주열전'을 펴내 '대단히 학구적인 기자'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드러내기도 했죠.

이한우 기자에 대한 설명이 길었는데요. 바로 이렇게 '훌륭'하고 '똑똑'한 기자가 갑부의 결혼 소식이나 쓰고 앉았다니요?? 정말 놀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한우 기자가 쓴 기사 자체가 형편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이 기사의 기사 가치에 대해서는 앞 서 언급했습니다. 주요 신문 어디에서도 다루지 않은 내용을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이처럼 대단하게 다룬 의미가 뭘까요?

브리아토레의 이번 초호화 결혼식은 현지시각으로 지난 토요일(14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3일이나 지나서 소개하다니.. 그것도 외신 보도를 보고 나서야 말이죠. 조선일보가 이렇게 뒷북이나 치는 매체인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어디서 열렸는지, 주요 하객은 누구인지 등등은 그저 외신을 '참고'('베꼈다'고 하면 소송당할라..)한 정도에 불과한 것 같고, 브리아토레의 그 동안의 스캔들 또한 스포츠지나 연예매체 등에서 지금까지 그때그때 울궈먹던 거여서 이한우 기자가 새롭게 밝혀내거나 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기사 제목대로 그동안 스캔들을 일으켜 왔던 '플레이보이'가 결혼해서 안식처를 찾았다는 거죠.

근데, 스캔들 관련한 내용도 불분명한 부분이 있더군요.

이한우 기자는,

2001년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과의 약혼설을 시작으로 그는 본격적인 '모델 사냥'에 나섰다. '모델 킬러'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겼다. 2004년 1월 그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 하이디 클룸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클룸도 브리아토레에 뒤지지 않았다. 임신 발표 3개월 만에, 즉 브리아토레의 아이를 낳은 직후에 흑인 가수 실과의 염문설이 언론에 공개됐던 것. 그 바람에 브리아토레는 딸 레니의 친자 확인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브리아토레는 당시 19세인 바네사 힐가라는 신인 모델과 애정 행각을 벌였다.


고 썼는데요. 이 가운데 하이디 클룸과의 스캔들의 경우, 다른 매체에서는 "클룸은 2003년 이탈리아 재벌 플라비오 브리아토레의 아이를 임신했다. 하지만 브리아토레는 유명 보석회사의 상속녀와 바람이 나 클룸을 버렸고 2004년 홀로 딸을 낳았다. 이때 가수 씰이 클룸의 곁을 지켰다"(일간스포츠)고 했고, "클룸이 임신 사실을 밝힌 날 브리아토레가 유명 보석업체 상속녀인 피오나 스와로브스키와 키스하고 있는 파파라치 사진이 찍혔다. 결국 클룸은 브리아토레에게 버림받았고, 2004년 홀로 딸을 낳았다. 가수 씰은 클룸이 출산할 때 곁을 지켰고 자신의 자식도 아닌 클룸의 딸을 소중하게 보살폈다"(세계일보)고 썼습니다.

즉, 이한우 기자는 하이디 클룸도 브리아토레 못지 않은 바람둥이처럼 보도했지만 브리아토레가 스와로브스키의 상속녀와 바람을 폈고, 클룸은 결국 버림받았다는 거죠. 브리아토레로부터 버림받은 클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실은 곧 클룸과 결혼했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인지 '피플'지가 선정한 아름다운 커플 1위에 선정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한우 기자가 이런 기사를 썼다는 게 다시 한 번 놀랍습니다. 학구적인 기자, 학술전문 기자, 문화부를 이끄는 기자, 논객인 이한우 기자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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