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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전문 블로그'로 바꿀까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8. 9. 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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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을 쓰고 행동에 옮기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물론 말을 내뱉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는 게 아무 생각없이 막무가내로 이뤄져서도 안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말이, 글이, 행동이 어떤 일들을 불러 일으키게 될지, 문제가 될 부분은 전혀 없는지, 하나하나 따지고 점검하고서야,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이곳 블로그,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의견들이 서로 오고가는 인터넷공간(아고라, 뉴스 댓글 등)에 글 하나 써 올리는 것도 참 쉽지 않습니다.

거리에 나가 평화롭게 촛불을 드는 것조차 참 쉽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되지 않을 것 같은 글만 쓰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권력 가진자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비판 기능은 제거한 채 누군가를 칭찬 하거나, 여행기를 올리면 되겠네요.
촛불 따위 들 생각은 하지 말고, 거리에 나가더라도 올림픽 때나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을 때, 그때 나가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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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노홍철과 관련된 글을 써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날 원색적으로 비판하기도 했고, 그 가운데 어떤 분은 아예 "처벌하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글까지 써서 저에 대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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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저 문구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난감했습니다. 나름 인터넷 공간에서 합리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비평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나의 '글'을 보고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까지 하니, 섬짓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또 어떤 분들은 '니가 한 짓을 보면 당연하다'며 '뿌린대로 거두는거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악감정을 가지고 사실을 왜곡한 것도 아니고, 그저 공적인 매체에서 이뤄진 활동에 대해 평가한 것뿐인데 쉽게 '명예훼손' 운운하며 법적 처벌을 주문하는 목소리들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뢰없는 인터넷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과 실제 검찰에 꾸려진 '인터넷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아, 이제 인터넷 문화는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지난 주 검찰은 조중동 광고기업불매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인터넷까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운영진 등 24명을 전원 사법처리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그저 조중동의 기사를 비판하는 언론시민단체의 논평을 긁어다 게시했다는 이유로 300만원이 넘는 벌금에 약식기소되었다고 하더군요.

조중동에 게재된 광고리스트를 게시한 것도 아니고, 광고한 기업에 전화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조중동에 비판적인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원의 벌금을 내라고 하는 겁니다.

이제 저는 전처럼 블로그에서 자유롭게 비평활동을 하기는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슨 글을 쓰더라도 그게 누군가의 흠을 지적하는 일이라면 '이글로 감옥에 가진 않을까', '이글로 수백만원의 벌금을 내게 되진 않을까' 분명히 몇번이고 고민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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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KBS 앞에서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KBS 지키기 촛불문화제'를 하던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연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더구나 그때 KBS 앞에 있던 사람들은 한국과 카메룬의 올림픽 축구 예선 경기를 보며 '거리응원'을 하던 중이었음에도 경찰은 막무가내로 촛불시민들을 둘러싸고 무려 23명이나 되는 사람을 강제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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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KBS 앞에서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는 사람들)


8월 15일 이후 거리에서 촛불을 들 때는 파란색 물감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하고, 그 물감이 묻었다면 경찰에게 잡혀가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노점에서 떡볶이를 먹다고 물감 몇 방울 옷에 묻어도, 노천까페에서, 편의점에서 친구랑 커피 마시나 물감 몇 방울 묻어도 얼마든지 경찰이 잡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찰이 쏜 색소 물대포를 맞은 사람)


('한겨레21' 보수의 복수)

90년대를 지나오며, '돌멩이 들지 않고, 쇠파이프, 화염병 들지 않으면 되겠지' 했는데, 이제는 '인도에 있다가 도로로 내려가면 잡아가겠지', '마스크를 쓰면 잡아 가겠지', '구호를 외치면 잡아가겠지'라는 생각을 하도록 하며 스스로 위축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짜 고민이 많습니다.
앞으로 블로그를 '미디어 칭찬 블로그'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 조중동에 대한 비판은 싹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하는 건 아닌지,
촛불은 가까이 해서도 안되고, 집회시위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닌지,


(잡다한 고민에 내용조차 제대로 이어지지도 않는 잡다구리한 글만 쓰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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