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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IP세대'? 웃기셔~

조중동 잡다구리 후비기

by hangil 2008. 9. 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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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 파동과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온 세상이 뒤숭숭한 가운데, 동아일보가 생뚱맞게도 'IP세대'론이라는 것을 주창하고 나왔다.

9월 30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가장 중요한 지면인 1면에서부터 <“난 창조자” 한국을 바꾸는 IP세대>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IP세대'와 관련한 기사가 사이드탑으로 실렸고, 3면에는 <“놀이가 일이요, 일이 놀이죠” 펀생펀사>라는 제목으로 'IP세대' 관련 기획기사의 첫번째, '재미와 열정(Interest & Passion)'이 실렸다.

목차를 보아하니, 동아일보는 앞으로 7회나 더 'IP세대'에 대한 기획기사를 연재할 모양이다.

당최 'IP세대'가 뭘까? 동아일보 측의 '정의'를 들어보자.

동아일보 취재팀은 한국 2030세대의 다양한 삶을 추적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그 기저에 흐르는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분석한 결과 이들을 ‘IP(Independent Producer·독립적 생산자)세대’로 정의했다.


1990년 이후에 대학을 다닌 20~30대를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독립적 생산자'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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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스스로도 그것만 내세우긴 부족했는지, "IP세대는 영문 머리글자 I와 P의 다양한 조합으로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며 'I'로 시작하는 영어단어와 'P'로 시작하는 영어단어 조합의 8가지 경우를 더 제시하긴 했다. 동아는 20~30대에 대해,

1. 정보화사회의 단순한 정보 수용자에서 벗어나 손수제작물(UCC) 등을 통해 ‘정보 제공자(Information Provider)’로 떠올랐다.

2. 인터넷상의 ‘IP(Internet Protocol) 주소’는 이들에게 오프라인의 주민등록증을 능가하는 ‘사이버 신분증’이다.

3. ‘재미’가 있으면 ‘열정’을 불태우고(Interest & Passion)

4. 외국어 능력과 다른 문화에 대한 유연성 등 ‘국제적 잠재역량(International Potential)’도 눈에 띈다.

5. 기성세대가 가지 않았던 길을 열어가는 ‘혁신적 개척자(Innovative Pathfinder)’이면서

6. 대학 시절부터 스스로 미래 인생을 설계하며 부(富)를 추구하는 ‘똑똑한 재테크(Intelligent Portfolio)족’이다.

7. ‘만질 수 없는 소프트웨어 능력(Intangible Power)’을 지녔고,

8. 일방통행식 정치 참여에는 거부감을 보이지만 ‘상호 작용하는 참여(Interactive Participation)’에는 월드컵 거리응원만큼 뜨거운 호응을 보인다.

9.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지만 그만큼 빨리 식는 ‘즉흥적 인간관계(Instant Partnership)’도 한 특징


이라고 했다.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I'와 'P'의 조합들을 보는 순간, 이 기획기사를 준비한 동아일보 기자들 머리는 꽤나 아팠겠다 싶다. 아니, 동아일보 들어갈 정도면 영어 정도야 기본 스펙이 받쳐줘야 하니, 영어 잘하는 기자님들께서 지들 멋대로 단어를 갖다붙이기만 하면 됐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동아일보의 이 '기획기사'가 비위가 상하고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지네가 뭐라고 날 규정하러 드냐는 거다. 나도 나름 90년 이후에 대학을 다닌 20~30대에 속하거든.

동아일보가 규정해 놓은 'I'와 'P'의 조합 가운데 몇가지는 나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재미'가 왜 'fun'은 안되고 'interest'가 되어야 하나? '국제적 잠재역량'?? 내가?? ㅋㅋㅋ, 당최 '만질 수 없는 소프트웨어능력'은 뭐냐?

무엇보다, 맘에 안드는 것은 동아일보 따위가 거창하게 특정 세대를 어떤 단어로 규정해 그걸 사회의제화시켜보려 한다는 점이다.

386세대, X세대, N세대, 88만원 세대...

지금까지 회자되어 온 특정세대에 대한 특정한 규정들은 각 시대 상황 속에서 사회적 공감을 얻은 다음에야 나름대로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데, 이념적으로는 수구꼴통극우집단, 세대적으로는 50~70대 노년층, 경제적으로는 강부자와 재벌의 사랑을 받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아일보가, 푸릇푸릇한 젊은 세대 일반을 감히 그들의 잣대로 규정하려 들다니, 이미 그 대상이 된 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쁘기 그지없다.

동아일보로서는 뭔가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고 싶겠지만, 그런다고 어떤 유행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녀사냥, 색깔공세, 이념공세 같은 정치적 광풍은 어느 정도 유행시킬 수 있겠지만, 문화적 현상까지 동아일보 따위가 감히 만들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20대와 30대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자주 그려졌다"며 "비정규직의 그늘을 떠오르게 하는 ‘88만 원 세대’" 등의 예를 들었다. 비정규직의 고통을 알려 하지 않고, 청년실업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대기업들에 대한 규제철폐 등)를 만들기 위한 구실로만 접근하는 동아일보류에게는 '88만원 세대'가 그저 '부정적 이미지'로만 비칠 지 모르지만, 'IP세대' 따위의 뜬 구름 잡는 말보다는 '88만원 세대'가 나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 IP세대'는 그냥 동아일보에서 일하는 '동아일보 직원들 가운데 20~30대'끼리나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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