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민 파동과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온 세상이 뒤숭숭한 가운데, 동아일보가 생뚱맞게도 'IP세대'론이라는 것을 주창하고 나왔다.
9월 30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가장 중요한 지면인 1면에서부터 <“난 창조자” 한국을 바꾸는 IP세대>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IP세대'와 관련한 기사가 사이드탑으로 실렸고, 3면에는 <“놀이가 일이요, 일이 놀이죠” 펀생펀사>라는 제목으로 'IP세대' 관련 기획기사의 첫번째, '재미와 열정(Interest & Passion)'이 실렸다.
목차를 보아하니, 동아일보는 앞으로 7회나 더 'IP세대'에 대한 기획기사를 연재할 모양이다.
당최 'IP세대'가 뭘까? 동아일보 측의 '정의'를 들어보자.
1990년 이후에 대학을 다닌 20~30대를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독립적 생산자'라... 어렵다.
동아 스스로도 그것만 내세우긴 부족했는지, "IP세대는 영문 머리글자 I와 P의 다양한 조합으로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며 'I'로 시작하는 영어단어와 'P'로 시작하는 영어단어 조합의 8가지 경우를 더 제시하긴 했다. 동아는 20~30대에 대해,
이라고 했다.
제법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I'와 'P'의 조합들을 보는 순간, 이 기획기사를 준비한 동아일보 기자들 머리는 꽤나 아팠겠다 싶다. 아니, 동아일보 들어갈 정도면 영어 정도야 기본 스펙이 받쳐줘야 하니, 영어 잘하는 기자님들께서 지들 멋대로 단어를 갖다붙이기만 하면 됐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동아일보의 이 '기획기사'가 비위가 상하고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지네가 뭐라고 날 규정하러 드냐는 거다. 나도 나름 90년 이후에 대학을 다닌 20~30대에 속하거든.
동아일보가 규정해 놓은 'I'와 'P'의 조합 가운데 몇가지는 나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재미'가 왜 'fun'은 안되고 'interest'가 되어야 하나? '국제적 잠재역량'?? 내가?? ㅋㅋㅋ, 당최 '만질 수 없는 소프트웨어능력'은 뭐냐?
무엇보다, 맘에 안드는 것은 동아일보 따위가 거창하게 특정 세대를 어떤 단어로 규정해 그걸 사회의제화시켜보려 한다는 점이다.
386세대, X세대, N세대, 88만원 세대...
지금까지 회자되어 온 특정세대에 대한 특정한 규정들은 각 시대 상황 속에서 사회적 공감을 얻은 다음에야 나름대로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데, 이념적으로는 수구꼴통극우집단, 세대적으로는 50~70대 노년층, 경제적으로는 강부자와 재벌의 사랑을 받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아일보가, 푸릇푸릇한 젊은 세대 일반을 감히 그들의 잣대로 규정하려 들다니, 이미 그 대상이 된 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쁘기 그지없다.
동아일보로서는 뭔가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고 싶겠지만, 그런다고 어떤 유행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녀사냥, 색깔공세, 이념공세 같은 정치적 광풍은 어느 정도 유행시킬 수 있겠지만, 문화적 현상까지 동아일보 따위가 감히 만들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20대와 30대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자주 그려졌다"며 "비정규직의 그늘을 떠오르게 하는 ‘88만 원 세대’" 등의 예를 들었다. 비정규직의 고통을 알려 하지 않고, 청년실업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대기업들에 대한 규제철폐 등)를 만들기 위한 구실로만 접근하는 동아일보류에게는 '88만원 세대'가 그저 '부정적 이미지'로만 비칠 지 모르지만, 'IP세대' 따위의 뜬 구름 잡는 말보다는 '88만원 세대'가 나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 IP세대'는 그냥 동아일보에서 일하는 '동아일보 직원들 가운데 20~30대'끼리나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