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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2의 죽음의 굿판' 기대하나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8. 10. 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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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월 10일) 조선일보 1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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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가 1면을 장식했다.
난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글을 썼나? 아니면 인터뷰라도 했나 싶었다.
아니었다.
김지하 시인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인용해가며 1면에다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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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21면에서 다시 김지하 시인의 글을 주절주절 인용했다. "김지하 시인, 왜 좌파 정면 비판 나섰나"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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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악몽' 하나.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 당시,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저 유명한 글.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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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는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했지만, 조선은 거기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부제를 뽑아냈다.

당시 김지하의 글은 이후 서강대 박홍 총장이 "죽음의 배후에 죽음을 선동하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으로 이어졌고, 91년 4월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타살당한 뒤 봇물처럼 터져나왔던 '91년 5월 대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타가 되었다.

나는 김지하 시인이 이번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가지고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좌익에 묻는다-[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당파(鐺把) <3>'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른바 '좌파'에 대한 김지하 시인 나름대로의 '분노'와 냉소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글이지만, 읽기가 너무 난해하다.
한때 '오적'을 썼던 사람의 글인만큼 그 자체가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왜 글을 이런 식으로 쓰는지 좀 모르겠다.
머리에 든 게 많으면 온갖 생각과 지식을 동원해서 왔다갔다, 제 멋대로 글을 써도 상관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지하의 글에 대한 판단을 각자에게 맡기고, 조선일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적했듯 조선일보는 자기들이 받은 기고도 아니고, 자신들이 했던 인터뷰도 아니건만 그 글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것도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프레시안' 같은 '좌파매체'에 실린 글을 말이다.

난 오늘 조선일보의 1면에서 '과거의 악몽'을 떠올렸지만, 그것이 더욱 두려운 것은 조선일보가 그 악몽을 '재현'하기 위해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이런 편집을 했다는 것 때문이다. 마치 '제2의 죽음의 굿판 소동'을 부추기려는 듯이.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주저함도 없는 이토록 철저한 '조선일보스러움'이란.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 기고 이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것을 그 당시 말썽 많은 <조선일보>에 발표하게 되어 매체 선택을 잘한 것 같지 않다는 것"과 "그 당시 학생들이 상당히 흥분해 있었는데 흥분한 사람들에게 권유문이나 그런 것으로 쓰지 않고 '왜 그렇게 날카롭게 했느냐' 하는 것"을 "잘한 것 같지는 않다"며 "그때 지면 편집을 보고 '아차!' 싶었지. 내 칼럼이 빌미로 활용된 것이지"라고 회상(2001년 '실천문학 여름호)한 바 있다.

"지난 10년은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었고, 돌아간 분들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리다"며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지하 시인에게 '아픔'으로 남아 있는 과거건만 조선일보는 그따위 것 아무런 고려 없이 그저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하면 그뿐인 것이다.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인용한 김지하 시인의 글이 프레시안에 실린 건 10월 9일 아침이었다.
그리고 오늘 김지하 시인은 프레시안에 새로운 글을 기고했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당파(鐺把) <4>'로, 제목은

"우익 잘해보라, 잘하면 망할 것이다"

어제 실린 '좌파'에 대한 매서운 비난 못지 않게 '우파'에 대한 독설이 가득찬, 그러면서도 역시 지독히 난해한 글이다.

과연 내일 아침 조선일보 1면, 아니 구석탱이 어딘가에서라도 이글을 인용한 것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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