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10월 20일) 조선일보, 저 유명한 '김대중 고문'('고문'이란 말보다는 '주필'이 더 익숙한)께서 칼럼을 쓰셨다. 제목은 <'악의 축' 소리나 하지 말든지…>.
"북핵의 궁극적 제거를 기대해오던 한국사람들에게 힐의 협상결과는 배신감마저 안겨주고 있다. 힐 차관보에게 북핵의 위험에 따른 한국의 안보와 한국인의 우려는 안중에 없었던 것으로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힐에 대해 "오로지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협상 그 자체의 성공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난 김 고문이 이토록 인간적인줄 몰랐다. 미국의 입장에서야 '협상 그 자체의 성공에만 집착'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게 시급한 상황에서 그럼 뭘 또 고려하랴.
김 고문을 위시한 수구보수인사들은 '한미동맹'이 '혈맹'관계라며 외교의 최우선에 항상 미국을 놓고 '사대주의'나 다름없는 주문들을 늘어놓았지만, '21세기 전략적 동맹관계'로 격상된 한미관계의 실상은 이렇다.
심지어 김 고문은 "현실적으로 북핵은 미국에 위협거리가 아니다"며 반면 "정권 안정용이고 다른 하나는 대남 공갈 내지 위협용"이라고 했는데, 미국이 대체 자신들에게 위협거리도 되지 않는 것을 두고 94년 1차 핵위기, 아니 그 이전부터 왜 그렇게 북핵에 매달려 온 것일까? 오로지 남한을 위해서?
테러지원국 해제는 2005년 9.19 공동성명 때 부터, 그리고 2007년 2.13 합의에서도 거듭 확인된 것으로, 핵협상 진전에 따라 북미 간에 당연히 이뤄져야 할 수순이었을 뿐이다. 북한 꼴 보기 싫다고 미국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떼를 써봤자 한국의 수구보수집단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화는 나고 분풀이는 해야겠는데 어쩌겠는가. 한 놈을 제물로 삼을 수밖에.
수구보수신문들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 적이 있었다. 지난 4월 북의 김계관과 미국의 힐은 싱가포르에서 이른바 '싱가포르 합의'라는 것은 하는데, 당시 이른바 '간접시인'(북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와 시리아와의 핵협력을 두루뭉수리, 애매모호하게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합의 내용이 내키지 않은 수구보수신문들은 합의를 이끌어 낸 힐을 두고 분노를 토해낸 바 있다. 중앙일보는 힐이 '합의 조급증'을 가졌다고 했고, '공명심을 버리라'고 했으며, 동아는 힐이 '화근을 만들었다'고 했고, 조선은 '합의가 좌초되면 힐에게 엄청난 위기가 될 것'이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김대중 고문을 비롯한 수구보수집단들이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놓고 미국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것은 한편으로 참 재밌다. 맹목적 친미사대주의자로만 알았던 그들이 아닌가.
이제 앞으로가 더 궁금하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힐 차관보 한 명 정도가 아니라 정권 자체가 힐 보다 더 북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지 모르는데, 그때 한국의 수구보수집단, 뉴라이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김 고문은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로 "어쩌면 당분간 한국 내에서 좌파들의 반미데모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반면 '우파의 반미데모'가 벌어질 것인가.
조짐은 이미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조갑제는 "만약 이 대통령이 부시의 경우 없는 조치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이번엔 애국세력이 대통령 규탄집회를 열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니.
시청광장에서 집회만 했다 하면 성조기를 들고 나와 흔들어대던 수구보수단체들, 앞으로 이들이 인공기와 함께 성조기를 태우는 날도 올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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