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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의 경우와 김옥희의 경우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8. 11. 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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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둘러싼 '비리의혹'이 연일 신문과 방송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화딱질 나는 일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정치개혁'을 일궈냈다고 자부하는 참여정부, 비교적 깨끗한 정치를 했다는 참여정부가 정권을 넘겨주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런 구설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

친인척이라고는 정말 별 보잘 것 없는 '상고 출신'의 '비주류' 대통령에게서 이런 구설수가 나오는 것 자체가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어제 한겨레가 사설에서 "지금껏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전임 노무현 정부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한몫 챙기는' 분위기가 권력 주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 것도 그야말로 체면을 차리고 정중하게 비판한 것이다. 시중의 술자리에서는 도대체 참여정부에 대해 어떤 노골적인 언사가 오갈 것인가.

있는 그대로 시시비비가 가려져야 마땅한 일이다.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건평 씨를 위시한 이른바 '세종증권 커넥션'의 비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그 잘못을 당연히 지적한다 하더라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언론의 보도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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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중앙일보의 1면이다.
<"박연차·정화삼씨와 원래 잘 알아/노건평씨는 낚시 가서 연락 안 돼">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이드 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검찰, 노건평씨 출국금지>가 붙었다.
앞의 기사는 중앙일보의 기자가 직접 봉하마을까지 내려가 노건평 씨 집 앞에서 노건평 씨의 부인을 몇 차례의 노크 끝에 불러내 나눈 이야기 몇 대목이 실려 있다.

대화의 내용은? 시덥잖다.

-건평씨가 집에 있나.
“남해 쪽으로 2~3일 정도 낚시 갔다. 집에 휴대폰도 놓고 가서 연락도 안 된다.”
-세종증권 매각과 관련돼 의혹을 받고 있다.
“(비리 의혹에 연루된 사람들이) 원래 다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다. 박연차(태광실업) 회장과는 8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냈다. 우리 과수원도 그 사람이 샀다. 거제 땅을 사기 훨씬 이전이다. 정화삼(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기)씨와도 원래 잘 알던 사이다. 최근에 따로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박 회장은 2002년 4월 건평씨 소유의 거제도 구조라해수욕장 주변 땅 10필지를 사줬음)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건평씨와 관련 있나.
“모르는 일이다. 남편은 바깥일을 이야기하지 않아 모른다.”
-김해 S증권에 계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애 아빠는 신용카드도 한 장 없는 사람이다.”(※S증권 관계자는 “개인의 거래 상황을 알려줄 수 없다. 하루 거래액이 평균 10억원선인데 2006년에는 100억원씩 거래된 걸로 안다”고 전함. 2006년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전후 시점임)

기사 제목대로 '노건평 씨는 낚시 갔다', '박연차 회장 등과 원래 알던 사이다' 외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붙여놓았다는 설명(※)은 이해를 돕기는커녕 '뭔가 구린 구석이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엮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중앙일보는 이 따위 기사를 1면 사이드탑으로 올린 것이다. 이유는? 노건평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이기 때문에. 전 정부의 친인척 비리의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중앙일보는 오늘(11월 26일)은 노건평 씨 의혹을 비롯한 '세종증권 의혹'을 1면 탑 기사로 올렸다. 1면 전체 지면의 절반이 넘는 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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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또한 어제 '노건평' 이름 석자를 1면 상단에 큼지막하게 박았다. 검찰이 내놓은 일방적인 혐의, 그것도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혐의'를 그냥 따옴표만 붙여 '노건평씨, 거액 받아'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날 가장 큰 이슈라고 할만한 북한의 개성공단 축소 등의 조치와 관련된 내용은 그 아래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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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도 조선일보는 '노건평' 이름 석자를 1면에 실었다. 물론 관련기사는 3면과 4면에도 크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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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죽은 권력'이라 하더라도 한때 나라를 통솔했던 권력집단의 '비리의혹'에 대해 조선과 중앙처럼 보도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 의혹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생각에는 '죽은 권력'에 대해 이렇까지 관심을 쏟고 그 비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애쓰는 언론이라면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해서는 더욱 철두철미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디 감히 죽은 권력의 비리문제를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문제에다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조선과 중앙은 과연 그렇게 했을까.

'노건평'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떠오르는 이름 석자가 있었다.

김·옥·희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씨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 말이다. 지금의 권력을 잡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친인척' 그 김옥희 씨 말이다.

알다시피 김옥희 씨는 지난 총선 당시 공천을 댓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현재 구속되어 있다.

그 김옥희 씨의 이름 석자가 신문 지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8월 1일.
당시 검찰은 '김옥희 씨의 혐의가 포착됐다'는 수준이 아니라, '김옥희 씨가 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구속한다'고 발표했다. 범죄가 이미 입증되었던 것. 지금 노건평 씨와 관련해 '의혹'이 난무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김옥희 씨는 선거법으로 구속한 게 아니라 '사기'혐의로 구속해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는 등 언론으로서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날 중앙일보는 아래에 보다시피, 1면 하단에 자그마하게 김옥희 씨 사건을 싣는데 그쳤다. '김옥희'라는 이름은 제목에서 찾을 수 없다. '이명박'도 제목에 없다. 관련기사? 없었다.
심지어 중앙은 이 기사를 보다시피, 노무현 정부 시절의 '비리'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의혹' 관련 기사 아래에다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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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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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가 6면에 실리긴 했지만, 보다시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공정택이 당선되는 등 활력에 넘치는 한나라당의 모습 아래에다 기사를 배치했고, 내용조차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명'에다 무게 중심을 실어 '대변'해주는 기사다.

검찰이 친절하게 사건의 전모를 대부분 밝혀줬고 혐의까지 입증해주었지만 조선과 중앙은 이 사안이 가지는 중요성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물론 이후 굳이 '사기혐의'를 적용하려 하고 김옥희 씨에게 돈을 건넨 김종원 씨를 처벌하지 않으려 하는 등 검찰이 이상한 수사를 벌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후속보도가 이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김옥희'라는 이름은 1면에는 등장하지 않았다(최소한 그 뒤 약 2주일 동안 이상).

자, 보자.
'김옥희'의 사실로 밝혀진 '비리'가 언론이 더 중요하게 접근하고 비판해야 할 사안일까.
아니면 전 대통령 친형 '노건평'의 사실로 밝혀진 것 없는 '의혹' 수준의 사건이 더 중요한 걸까.

나는 명확하게, 물어볼 것도 없이 답은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런데, 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딴식으로 보도하는 걸까.
그렇게 노무현이 미워서?

정말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도대체 '이성'이라는 것이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이중적이고, 편파적일 수 있는지.

※ 지면상 생략했지만, SBS나 MBC 등의 보도태도도 이런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SBS는 조선, 중앙과 매우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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