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북극의 눈물>, 웰메이드 명품 다큐의 진수를 보다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8. 12. 8. 17:17

본문



MBC가 '창사특집'으로 준비한 <북극의 눈물>(연출 : 허태정, 조준묵) 3부작 중 첫번째 방송인 '얼음왕국의 마지막 사냥꾼' 편을 봤다.

이런 프로그램을 두고 하는 말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명품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은 '명품 다큐멘터리'라는 수식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였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 '이게 정말 MBC가 만든 다큐멘터리 맞아?'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올 정도니 이런 칭찬이 너스레는 아닐 것이다.

흔히 잘 만든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영상이 훌륭해야 할 것이다. HD 화질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아름다운 영상미는 최근 다큐멘터리가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다.

그리고 '소재'. 버라이어티나 드라마에서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방송에 이미 시청자들이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 다큐멘터리가 '소재'에서부터 뭔가 차별성을 내놓지 못한다면 외면받기 일쑤일 것이다.

그리고 '제작기법'. 영상과도 연결되는 항목이긴한데, 다양한 촬영기법과 연출기법, 그리고 제작 완성 단계에서의 여러가지 측면에서 '포장'에서도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뭔가 달라도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주제의식'이 돋보이게 되면 이는 그 자체로 '명품 다큐멘터리'의 반열에 오를 충분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북극의 눈물>은 '명품 다큐멘터리'가 갖춰야 할 조건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영상...
이건 말이나 문자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그냥 보면 안다.
해가 지지 않는 북극. 지구온난화로 무너져가는 북극의 빙하, 전통적 사냥방식(음.. 총을 쏘며 고래를 잡는 게 어느 정도까지의 전통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이누이트들의 생존방식..
북극의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한 각도에서 생생한 화질로 실감나게 전해졌다.

바다코끼리나 일각고래를 잡자마자 얼음 위에서 바로 칼로 부위별로 해체해 핏빛이 낭자해지는 경우, 어찌 보면 잔인하거나 바다코끼리 등에 대한 안쓰러움을 들게 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오히려 그런 장면을 통해 이누이트들의 삶의 방식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져, 그런 모습 또한 북극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했다.

소재...
'북극', 물론 '북극'이 그 동안 우리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 '극지 탐험'이 주된 소재가 되었지, 북극 그 자체, 그곳에서 사는 사람 그 자체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의 주된 소재가 된 적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제작기법...
MBC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약 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360도 회전이 가능한 항공 전문 촬영 장비 '시네플렉스' 등 첨단 장비를 사용해 북극의 모습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그 추운 바다에서 '수중촬영'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굶주린 북극곰을 취재하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위험 거리를 넘어서면서까지 대담하게 진행한 촬영...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먹이를 찾아 헤매던 북극곰의 자취를 쫓더니, 갑자기 하늘 위해서 카메라가 북극의 빙하를 훑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하얀 눈과 얼음 위에 피가 마치 호수를 이루듯 붉게 번진 지역을 찾아냈다. 북극곰이 바다표범 사냥에 성공한 것. 땅 위로 내려 온 카메라는 먹이를 먹는 북극곰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곧 이어 나타난 또 다른 북극곰의 모습도 쫓았다. 이내 그 둘은 먹이를 사이에 두고 만났고, 이빨을 드러내며 먹이다툼을 벌였다.
이런 생생한 모습이 너무나 실감나게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바다코끼리 사냥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이누이트들의 행로를 쫓는 길은 또 어떤가.
이누이트의 썰매에다 카메라를 싣고 이누이트의 시선으로 썰매개의 모습을 바라봤다. 빙판을 내딛는 썰매개들이 날카로운 얼음 조각에 발바닥을 베여 피를 흘릴 정도가 되는 모습은 정말 처음 봤다. 중간에 지쳐 대열에서 낙오하는 썰매개가 그대로 돌진하는 썰매에 부딪히는 장면 역시.

여기에 안성기 씨의 내레이션은 또 어떤가.
진중하면서도 신뢰감 넘치는 그의 음성은 이미 위기가 시작된 북극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이 화면에만 눈길을 주지 않고, 뭔가 생각해볼만한 여지를 충분히 제공했다.

무엇보다, 이번 <북극의 눈물>이 '명품 다큐멘터리'가 되는 것은 '주제의식'이다.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사라지고 있는 북극. 그 속에서 전통적인 사냥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누이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이며, 빙하 위를 다니며 사냥감을 찾는 북극곰의 생존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장 격심한 변화를 겪는 곳이 바로 '북극'이라는 설명은 머리가 아니라 눈과 피부로 이미 전해졌다.

북극의 온도가 지난 몇십년 동안 얼마나 높아졌고, 앞으로 또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설명도 있었지만, 이미 무너져내리고 있는 빙하와 삶의 방식을 조금씩, 아니 급격하게 바꾸고 있는 이누이트들의 모습이 '지구온난화'를 절감하게 했던 것이다.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빙하가 녹아 길마저 없어지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 이누이트들의 곤란함이란...

비슷한 시간 방송된 SBS의 <SBS스페셜> '집념, 저 산 너머 죽음을 넘어'가 정말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불굴의 도전정신을 가진 산악인들의 모습을 장엄하게 그려냈음에도 미안하지만 <북극의 눈물>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은, 소재와 주제의식 등에서 밀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미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국내 산악인의 도전은 SBS에서만도 몇 차례 다뤄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올 한 해 방송된 다큐멘터리 가운데 명실상부한 '명품다큐멘터리'의 반열에 오른 KBS <차마고도> 보다도 <북극의 눈물>은 더욱 뛰어났다고 감히 평가해본다. 제작에 들인 노력과 영상 등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어찌됐든 '주제의식'에서만큼은 <북극의 눈물>이 더욱 뛰어나지 않았을까.

'세계최초의 다큐멘터리영화'라는 로버트 플래어티의 <북극의 나누크>가 처음 상영된 게 1922년. 그리고 그 뒤 90여년.
<북극의 나누크>와 달리 <북극의 눈물>은 이누이트의 삶에 천착한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북극을 바라보는 시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점에 있어 약 1세기에 걸쳐 <북극의 나누크>를 잇는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북극의 눈물>은 앞으로 2회와 3회를 남겨두고 있다.
2부는 <얼음 없는 북극>, 3부는 <해빙, 사라지는 툰드라>. 비록 월요일을 준비해야 하는 일요일 밤이지만, 눈 뜨고 있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기다려질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DVD로도 소장하고 싶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