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KBS PD 300명 들어내도' 1박2일 볼 수 있나요?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1. 6. 19:17

본문

'김인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KBS 사장으로 가장 유력했던 인물이었죠.
하지만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캠프에서 언론특보로 일한 경력 때문에 KBS 내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거의 8부능선까지 차지했던 KBS 사장 직을 제 입으로 사양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지요.

(김인규 씨. 사진 출처 : 서울대 동창회보)

이 사람이 KBS 사장 후보 공모에 나서지 않기로 스스로 발표함에 따라 지금 이병순 KBS 사장은 어부지리로 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부터 시작된 정연주 KBS 사장 축출 작전이 뉴라이트 관변단체를 동원하고, 감사원을 동원하고, 검찰을 동원하고, 사립대학과 교육부를 동원하고, 국세청을 동원하고, 경찰을 동원하고, 급기야 국정원까지 동원하고 여기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배후와 측면에서 적극적인 지원사격을 퍼부어 성공시킨 것은 모두 정연주 사장을 쫓아낸 자리에 김인규 씨를 앉히기 위함이었는데, 여름 내 KBS 앞을 지킨 촛불과 KBS 내부의 의식있는 사람들의 물불 가리지 않은 저항으로 이를 막아냈습니다. 이병순 씨는 그 덕에 지금 KBS 사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거구요.

어쨌든 KBS 사장 자리를 '일단' 포기한 김인규 씨는 이후 지난해 10월 창립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라는 방송유관기관의 회장직을 차지하고 다시금 방송계의 유력한 인물로 부각됩니다. 이 협회는 IPTV와 관련된 방송사와 통신사 등 업계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데,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방통위, 문화부, 지경부 등이 마치 IPTV가 엄청난 황금알이라도 낳는 것처럼 일자리 몇만개 어쩌고저쩌고, 신성장동력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는 데서 알 수 있듯 꽤나 파워를 가진 곳으로 보입니다.(그런 단체의 '회장'직을 차지하고도 '김인규'라는 이름은 이후 KT 사장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지요. --;;)

그렇게 유력한 방송유관기관의 책임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분께서 최근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 그 내용이 참 기가 찹니다. 뭐 일간신문이나 방송, 잡지와 인터뷰한 건 아니고, 서울대 정치학과 69학번으로 서울대 동창회보랑 인터뷰(인터뷰 기사 전문 보기)를 했는데, 여기서 방송사 PD들을 향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돼 있다"며 "방송개혁 1번이 PD 개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인규 씨는 'KBS 공채1기'로 기자 출신인데, 자신은 기자라고 뻐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PD들을 향해 '개혁 대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겁니다. 심지어 "KBS는 PD 300명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김인규 씨가 이 인터뷰에서 PD와 함께 가장 문제삼은 대상은 '젊은 방송인'인데, 김인규 씨 말을 종합해 KBS의 젊은 PD 300명을 들어내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1박2일> 방송할 수 있을까요?
<해피투게더> 방송할 수 있을까요?
<문화지대>, <TV , 책을 말하다>, <다큐3일>, <환경스페셜>, <KBS스페셜>, <소비자고발>, <추적60분> 방송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나이 든 PD들 300명을 들어낸다는 말일까요? KBS의 PD들 가운데 그나마 김인규 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내가 알기로 나이 많은 사람들로 알고 있는데... 자신의 지지세력을 내쫓아도 좋다는 말이라면 그야말로 살신성인이 아닐 수 없네요. 일단 이른바 '강동순 녹취록'의 주인공으로 징계를 받고 최근에 이병순 사장 체제에서 '외주제작국장'으로 영전한 윤명식 PD에게 '너 나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김인규 씨의 진정성을 한 번 믿어볼 수는 있겠습니다.

김인규 씨의 서울대 동창회보와의 인터뷰에는 문제가 이뿐만이 아닙니다. 김인규 씨는,

- 방송이 특정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 당연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에 관한 문제를 정권의 이익으로 연결시키거나 혼동하면 곤란하다.
- 특히 젊은 언론인들은 방송이 국가이익도 대변하면 안된다는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 공영방송의 경우 주인이 국민인데 국가간 이해관계가 대립돼서 당장 우리 국민들이 손해를 보게 생겼는데, 그러면 주인인 국민을 위해서 공영방송은 국가이익을 대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일부 젊은 언론인들이 상당히 있다.


고 말했습니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 발언, 매우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일본에 공영방송이 있습니다. 바로 NHK입니다.
일본 정부가 자기네들 국익을 위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NHK는 그 발언의 진위를 따지기는커녕 대변하기에 급급합니다.
일본 정부가 자기네들 국익을 위해 '일본군 위안부는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NHK는 역사적 사실을 따지기는커녕 역시 일본 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합니다.
일본 정부가 자기네들 국익을 위해 '평화헌법'을 폐기하려고 합니다. NHK는 역시 그 위험성을 지적하기는커녕 정부의 주장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기에 바쁩니다.

김인규 씨 말대로라면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바로 위와 같이 행동해야 하고, 그렇게 하더라도 그건 당연한 '공영방송의 역할'이므로 우리는 딴지를 걸어서 안되겠지요. 이게 말이 됩니까?

실제 지난 2001년 NHK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과 관련한 특집 방송에서 법정의 전 과정을 취재하고도 법정에서 다뤄진 주요 내용 가운데 일본군과 일왕의 책임을 묻는 내요을 대거 삭제하는 등 왜곡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 전 일본 자민당 관계자들의 압력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김인규 씨 말대로라면 NHK는 정치권의 압력을 받기 전에 알아서 일본군과 일왕에게 불리한 내용은 삭제해야 했고, 아예 그런 특집은 기획조차 하면 안되는 거지요.

김인규 씨가 원하는 공영방송 KBS가 이런 거라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네요. 김인규 씨는 특히 젊은 언론인들이 국익을 정권의 이익으로 혼동한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 김인규 씨는 정권의 이익을 국익으로 혼동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즉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며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지요. 정말 끔찍합니다. 나아가 '극우 파시즘'의 전형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런 김인규 씨가 KBS를 그만둔 뒤에는 잠깐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쳤다고 하니, 그에게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김인규 씨는 방송사 PD들을 문제삼으며 이른바 'PD저널리즘'에 대해 '그 단어는 지구상에 대한민국 밖에 없다'며 PD저널리즘 때문에 PD들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되어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다시 김인규 씨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국익과 정권의 이익을 혼동하는 젊은 언론인, 그것도 PD, 그 가운데서 'PD저널리즘'을 추구하는 PD가 곧 비정상적으로 권력화되어 있는 '개혁대상'이라는 거겠지요.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의 진실을 파헤쳤던 한학수 PD.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김보슬, 이춘근 PD.
광우병의 실태를 고발했던 이강택 PD.

<PD수첩>을 만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만들고,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KBS스페셜>, <한국사회를 말한다>를 말한다를 만들었던 수많은 PD들.

김인규 씨가 만약 KBS 사장이라면 이런 프로그램 만드는 PD들은 모두 내쫓겠다는 거겠지요. 이병순 KBS 사장은 올해 11월이면 임기가 끝입니다. 김인규 씨는 그때 다시 KBS 사장 자리를 노릴 수 있지요. 아니면 3년 뒤에라도. 이런 사람이 사장에 앉아 있는 KBS,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김인규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된 까닭에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되고 말았군요.
방송개혁 1번은 당신 같은 사람을 영원히 방송계에 한 발이라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 없어도 우리나라 방송 만드는데 정말 아무런, 0.000000001%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시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