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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대 세습 보도', 특종 강박 못버린 연합뉴스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1.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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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가 오늘(1월 15일) 오후 4시 '어떤'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셋째 아들인 김정운을 '지명'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내용은 미디어다음의 '오늘의 주요뉴스'에 등록돼 많은 네티즌들이 관심을 보이며 적지않은 댓글을 쓰고 있다.

연합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 내용을 상단에 배치해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기사 제목은 <소식통 "북김정일, 3남 정운 후계자 지명">(<-- 기사본문 클릭)이고, 부제는 <"이달초 당에 교시 하달"...현대사 초유 '3대 세습'>이다.

기사의 주 제목(표제)은 큰 따옴표로 소식통을 '인용'했음을 알려주는데, 부제는 북이 현대사(본문에서 '세계현대사'라고 표현했다) 초유의 '3대 세습'을 했음을 사실상 단정해 보도했다.

연합 기사 본문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연합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셋째 아들인 김정운(1984년생)을 낙점하고, 이러한 결정을 담은 `교시'를 이달 초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기사를 시작한다. 김 위원장이 '교시'를 '하달했다'가 아니라 그런 것으로 '알려졌다'는 거다.

연합이 보도한 내용이 현재 '사실'(팩트)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야기한 '소문'임을 자인한 것이다.

누가 이야기한 것일까?

연합은 "한 정보 소식통은 15일 '김정일 위원장이 1월8일께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세번째 부인 고 고영희씨에서 난 아들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기사를 이어갔다.

'알려졌다'고 한 근거가 되는 소식통도 자신이 직접 확인한 내용을 연합에 제공한 것이 아니라  "교시를 하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이다. 정확히 짚자, "한 정보 소식통이 '김 위원장이 이런 내용의 교시를 하달했다'고 말했다"가 아니다. 그 소식통 또한 이 내용을 사실로 확인하지는 못하고 누군가에게서 들었거나, 어쨌든 사실로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매하다. 이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그럴수도 있다고 그냥 이해해야 하는건지...

그런데 연합은 어떤 부분은 소식통이 '사실'을 전한 것으로, 어떤 부분은 소식통이 어떤 소문 같은 걸 들은 것을 전한 것으로 애매하고 문장을 처리하며 사실상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한다.

이어지는 연합 기사.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조직지도부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긴급 소집, 김 위원장의 결정 사항을 전달한 데 이어 각 도당으로까지 후계관련 지시를 하달하고 있으며, 고위층을 중심으로 후계자 결정에 관한 소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연합에서 인용한 소식통은 북한 노동당에서 이 교시가 이미 하달되고 있다고 전했다. 누군지 모를 소식통을 그 내용을 확인했다는 거다. '교시를 하달한 것으로 안다'와 '후계교시를 하달하고 있다'는 천양지차다. 그런데 연합은 한 기사에 이러한 내용을 뒤죽박죽 쓰고 있다.

계속 보자.



"정운이 후계체제를 확실히 구축해 권력을 이어 받으면 북한은 세계 현대사 초유의 실권자 3대 세습국이 된다."

'~~하면'이라고 가정했지만, "북한은 세계 현대사 초유의 실권자 3대 세습국이 된다"며 '초유'가 될 수 있는 일은 가정을 전제로 그냥 썼다. 그리고 이 내용은 기사의 부제에서는 가정도 없이 사실로 다뤄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32살이던 19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정치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공인됐으나 정운은 이보다 7살 어린 나이에 북한 정치권력의 후계자로 지명된 셈이다."

이제 막 나간다. 그냥 '3대 세습'을 인정하고 김 위원장의 사례와 비교하기까지 한다. '~~하면 지명한 셈이 된다"가 아니다.

그러면서 '해설'까지 덧붙인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 결정에는 상당히 회복되기는 했으나 지난해 중반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진 김정일 위원장의 `조바심'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근거는? 또 소식통이 이야기해줬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부터 군부대와 공장.기업소 등을 잇달아 시찰하며 건강을 과시하고 있으나, 와병 충격 등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피로하고 노쇠한 상황"이라는 거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을 옆에서 지켜본 것 같다.

급기야 연합은 '특종'에 대한 조바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됨에 따라 김 위원장의 와병 이후 권력 2인자로 급부상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김정일 위원장의 매제, 정운의 고모부)이 `후계자 후견인' 역할도 맡을 전망이다."

"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됨에 따라"라는 것은 분명, 그것을 사실로 전제한 문장이다. 김정운이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김정일의 후계로 결정됐음을 단정한 것이다.

그리고, 정운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덧붙이고, 마지막에 "한편 정부의 한 당국자는 '김정운 후계자' 결정에 대해 '우리는 그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사실 파악이 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며 이 내용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우리는 정부 당국자가 파악하지 못한 사실을 '보도'했다는 뉘앙스가 공존하는 문장을 덧붙이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딸림 기사로,


'김정운이 누구인지'에 대해 '해설'한다. '베일에 싸인 인물'에다 '사진도 공개된 게 없다'는 데 '누구인가'를 보도한다.

연합뉴스, 과거에서 아무런 교훈을 못 얻었나

북한과 관련한 보도, 그 중에서도 특히 권력구도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지금껏 숱한 오보로 점철되어 왔다. 그리고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고,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름에 따라 '오보인지 아닌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보도는 그보다 더 숱하게 많다.


오늘만 하더라도 YTN은 <김정남, 후계자 부상하나?>라며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라는 단체가 "김정남이 후계자로 낙점됐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2005년 11월 5일에는 아래의 기사를,


2008년 9월 24일에는 아래의 기사를 실었다.



이는 극히 일부의 사례다.

2006년, 연합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한 적이 있다.


당시 동아일보 등 유수의 신문들은 연합의 '오보'를 받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가상의 에세이'를 사실로 단정해 강석주 부상이 '우리는 핵무기는 5~6개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이날은 2006년 9월 25일, 한국 언론의 치욕스런 날로 꼽힌다.


이런 전력이 있으면서도 연합뉴스는 '세계 현대사 초유의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사실로 드러날 것인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채 해프닝처럼 끝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또 치욕스런 사과문을 게재해야 할 것인가. 내일 어떤 신문이 연합의 기사를 받아 대서특필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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