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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프리랜서 PD'와 외교부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7. 6. 1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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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프리랜서 PD'와 외교부

MBC < PD수첩>은 지난 7월 25일 ‘피랍 100일, 소말리아에 갇힌 동원호 선원들의 절규’(이하 < PD수첩>)를 방송했다. 그리고 닷새가 지났을 무렵인 7월 29일 동원호 선원들의 석방이 ‘합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4월 4일 동원 628호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조업을 하다 해적들에게 피랍당한 지 117일 만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 지난 7월 25일 방영된 MBC < PD수첩 >의 장면  
 
과연 < PD수첩>의 방송과 동원호 선원들의 석방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어쩌면 < PD수첩> 방송에서 거의 손놓고 있는 듯 보였던 외교부가 < PD수첩> 방송 이후 해적과의 협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동원수산 관계자가 피랍 선원 가족에게 “협상이 거의 다 끝났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한 말처럼 협상이 그대로 ‘잘’ 진척돼 <PD수첩>과는 무관하게 석방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또다시 불신감만 키운 외교부

그러나 지금 < PD수첩>이 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두고 언성을 높여 따지는 것은 그리 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동원호가 무사히 돌아오고 난 뒤 정부와 동원수산이 그 동안의 경과를 숨길 없이 밝히고 평가해 차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PD수첩>과 ‘일개 프리랜서 PD’가 보여준 저널리즘을 그 가치에 걸맞게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며, 나아가 저널리스트와 국가기관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 PD수첩> 방송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피랍 직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내 모두의 뇌리에서 잊혀진 존재나 다름없었던 ‘동원 628호’ 선원들이 여전히 머나먼 이국 땅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그것도 거대 방송사의 지원도, 정부당국의 협조도 받지 못한 ‘일개 프리랜서 PD’가 거의 혼자 힘으로 내전 상태의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 정체불명의 ‘해적’들에게 취재협조를 받아냄으로써 이뤄졌다. 100일 넘는 동안 잊혀져 가고 있던, 마음 고생으로 석 달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동원호 선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김영미 PD는 취재 과정에서 ‘왜 100일 동안이나 저렇게 잡혀 있어야 됐을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취재한 결과 외교부의 대응은 실망스러웠고 그 내용을 그대로 담아 방송한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외교부는 인터뷰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물론 외교부는 담당자가 “지난 석 달 3주 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협상에 임해왔다”고 말한 것처럼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 PD수첩>의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일개 프리랜서 PD’ 운운하며 ‘방송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 또 방송 이후 협상보다 < PD수첩>과 김영미 PD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린 것 또한 볼썽 사납다.

사실 외교부는 스스로 불신을 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최근만 하더라도 한미FTA 협상과 관련한 < PD수첩> 방송을 두고 대대적인 반박 신문광고까지 내며 ‘4대 선결조건 같은 것은 없다’는 주장 등을 되뇌어 왔고, 특히 김영미 PD와의 악연도 적지 않다. 지난 해 민언련이 주최한 토론회(‘이라크 전쟁과 파병, 국민의 알권리’)에서 김PD는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느린 이라크 뉴스를 듣고 있다”며 정부의 보도통제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또, 자이툰 부대 파병 당시 이라크에 존재하던 유일한 한국 언론인이었던 자신이 이라크에서 나온 이후 다시 이라크에 가려고 이라크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을 때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자신만 비자를 발급 받지 못했고, 끝내 한국 외교관에 의해 이끌려 나와 ‘출국정지처분’까지 받았던 사실을 전하며 이라크와 관련한 정부의 보도통제 실상을 고발했다.

국방뉴스나 다름없는 자이툰 부대 홍보에 나선 기자와 PD들에게는 어떤 편의 제공까지 마다하지 않던 국방부와 외교부 등 정부 쪽은 정작 이라크와 자이툰 부대의 실상을 전하려는 ‘저널리스트’의 취재는 온갖 방법으로 가로막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김PD 같은 ‘일개 프리랜서 PD’는 아마 외교부 입장에서는 골칫덩어리로 여겨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라크 이어 씁쓸함 남긴 한국 저널리즘

분명한 것은 정부는 정부대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면 되는 것이고 역시 ‘국민의 알권리’와 진실을 위해 저널리즘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언론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동원호 선원들의 무사 석방이 정부가 역할을 다한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넉 달 동안 잊혀졌던 동원호 선원들의 안위에 대해 ‘일개 프리랜서 PD’ 이외에 다른 언론의 어떤 누가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곰곰이 짚어볼 만 하다.  그것이 과연 외교부가 추구하는 ‘국익’과 일치하는 언론의 자세인지도 따져보길 권하고 싶다.      

(이 글은 2006년 8월 2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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