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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용역', PD수첩은 SBS와 달랐다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9. 2. 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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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이 경찰과 용역업체의 합동작전'임을 MBC <PD수첩>이 밝혀낸 뒤 새삼 용산 참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달아오르고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지적처럼 검찰의 부실수사, 편파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 또한 더욱 뜨겁다.

<PD수첩>이 방송을 통해 제기한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유족의 동의 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급작스런 부검, 경비업체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은 용역업체, 참사가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용역과 구청의 편만 들어온 경찰, 이 와중에 견디다 못해 대책위를 꾸리고 망루를 지은 철거민들...이런 사안들은 사실 <PD수첩>이 새롭게 지적한 부분은 결코 아니다. 이미 철거민들과 용산참사대책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 한겨레/경향 등 언론까지 이미 지적했던 문제들이다.

그런데, 왜 새삼 <PD수첩>의 방송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내가 판단하기에 이는 <PD수첩>이 지니고 있는 PD저널리즘의 성과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PD수첩>은 관점을 분명하게 가졌다. 재개발업체와 용역, 구청, 공권력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급기야 목숨까지 빼앗기게 된 철거민들의 입장에서 이번 사안을 세밀하고 종합적으로 되짚어 본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참사가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용역과 구청, 경찰이 얼마나 세입자들의 생존권 문제에 소홀했는지,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를 분명한 영상과 증언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PD수첩>은 단순한 사실관계 전달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해당 사실관계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바로 여기서 '경찰과 용역업체의 합동작전' 부분에 대한 <PD수첩>의 지적이 새삼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뒤 좀 더 자세히 짚어보자.

셋째, <PD수첩>은 주류미디어로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면 타매체 특히 힘없는 대안미디어가 확보한 자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한편으로 <PD수첩>이 아니라면 하기 힘든 작업이기도 했다. 그 어떤 매체가 별 신뢰도 없는 프로그램에 자기들이 생고생을 하며 확보한 영상을 통째로 넘겨줄 수 있겠는가. 칼라TV의 동영상을 원본까지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PD수첩>이 그 동안 쌓아온 신뢰가 토대가 되었고, 그 영상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 <PD수첩> 제작진의 의지가 결합된 것이다. 만약 <PD수첩>이 경찰이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면 칼라TV가 영상을 줄 생각이나 했을까.

<PD수첩>의 이 같은 전통은 우리 사회에 대안미디어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쌓여지기 시작했다. 바로 미선이, 효순이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사건 당시 <PD수첩>은 인터넷매체 '민중의소리'의 영상을 적극적으로 방송에서 활용한 바 있다.

자, 이제 <PD수첩>이 이번에 보여준 PD저널리즘의 성과를 좀 더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자.




위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PD수첩>을 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바로 참사가 벌어지기 하루 전인 1월 19일, 철거용역업체의 '모 과장'이라는 자가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철거민들이 쌓아올린 망루를 향해 물대포를 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이 장면은, 현장을 생중계한 칼라TV의 영상을 받아 <PD수첩>이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즉 경찰과 용역업체의 합동작전의 증거이자, 물대포를 쏘는 등의 공격적인 경비를 할 수 없는 경비업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 이 업체가 경비업체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어디서 방송된 이미지로 보이는가? <PD수첩>?, 칼라TV?
아니다. 바로 SBS 8시뉴스다.

위의 이미지는 1월 19일 방송된 SBS 8시뉴스에서 나온 영상의 한 부분(<--해당 보도 클릭)이다. SBS의 이날 보도에 대해서는 나도 이미 한 번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 화면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했다. 경비업법이 뭔지 모르고, 사실 철거현장에서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 쯤은 너무나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SBS도 나 정도의 수준에서 넘어서지 못하나보다.

자기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에, 경찰 방패의 보호를 받으며 흰 헬맷에 사제 점퍼를 입은 사내가 철거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는 모습이 잡혀 있고, 보도도 했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SBS는 시청자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이다.

'화염병'의 등장, 돌을 던지는 행위 등 철거민들의 과격한 행위에만 초점을 맞출 뿐, 그들의 생계문제, 철거 과정의 비도덕적, 불법적, 반인권적 작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SBS의 관점이 이런 영상을 확보하고도 아무런 의미 부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이런 관점에만 매몰돼, 현장 중계에만 급급한 기자들의 취재태도(이를 기자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에서도 기인한다.


위 이미지는 또 뭘까? 바로 1월 19일 KBS 뉴스9에 나온 영상의 한 부분(<-- 해당보도 클릭)이다.

흰색 헬맷을 쓴 용역업체 모 과장의 모습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단언컨대 위 이미지에서 물대포를 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다. KBS는 이 화면을 철거민들의 맞은편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 촬영했다. 즉, KBS 기자와 카메라맨은 이 물대포를 쏜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역시 SBS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반면, <PD수첩>의 PD들은 달랐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표방하고 있는 <PD수첩>의 관점이자, '진실'을 캐내기 위한 <PD수첩> PD들의 노력이었고, 진정한 진실보도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경찰의 진압에 의해 사람이 6명이나 불타 죽는 상황이 벌어지는 이 처참함 속에서도 이런 <PD수첩>같은 프로그램이 있기에 우리는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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