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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로그램 다양성 위해 '독립영화관' 꼭 있어야"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7. 6. 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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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프로그램 다양성 위해 '독립영화관' 꼭 있어야" 


 ‘ZZZ’, ‘자살소녀 시간차 공격’, ‘난년이’, ‘신성일의 행방불명’, ‘너무나 바쁜 그녀의 손’….
  그냥 읽어서는 의미를 해석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낯선 이 단어들의 조합에는 딱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은 모두 독립영화의 제목들이다. 둘째, 금요일 밤 자정을 넘기고 새벽 1시 10분이란 시간에 방송되는 < KBS 독립영화관>이란 프로그램에서 ‘상영’된 적이 있는 독립영화들이다.
  
  하지만 곧 이 기괴하고 낯선 단어들의 조합을 만날 기회가 사라질지 모르겠다. 매년 가을마다 각 방송사들은 정기 프로그램 개편을 하는데, KBS가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이번 가을개편에서 < KBS 독립영화관>의 폐지를 적극 검토하고 있기 때문. KBS는 내외적으로 “여러 편의 교체 검토 대상 프로그램 중 하나일 뿐 아직 결정된 바 없다”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독립영화계를 비롯한 문화, 방송 관련 단체들은 < KBS 독립영화관>의 폐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KBS 내부적으로 이미 < KBS 독립영화관>을 대체할 프로그램을 잠정 결정한 상태이고 프로그램 제작진에게도 이미 ‘폐지될 것’이라는 언질이 있었기 때문.
  
  

△KBS 독립영화관 ⓒ KBS

  
  그러던 중 이미 6월에 임기가 끝났어야 하는 정연주 사장을 이을 후임 사장 임명이 여태 진통을 겪고 있는 KBS의 사정상 이번 가을 개편은 부분적으로 진행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 KBS 독립영화관> 폐지는 이번 가을 부분개편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 KBS 독립영화관>이 폐지될 가능성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특히 < KBS 독립영화관> 폐지가 이번 가을개편에서 빠지더라도 내년 봄에 있을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 때 다시 논의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참에 < KBS 독립영화관>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독립영화인들의 버팀목 역할한 'KBS 독립영화관'
  
  독립영화 전용상영관 하나 없는 국내 상황에서 그나마 < KBS 독립영화관 >은 1주일에 한 번 독립영화가 대중들과 안정적으로 만나는 거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01년 5월 4일 < KBS 단편영화전 >이란 제목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래 5년이 넘는 동안 저예산 영화, 단편영화, 독립영화 등 평소 관객들이 접할래야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을 꾸준히 방송해왔던 것이다. 그동안 무려 450여편의 독립영화를 시청자들에게 소개해왔는데 장르에 있어서도 극영화,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작품들을 다뤄왔고, 외국의 독립영화들을 국내에 알리는 역할도 해왔다. 독립영화 제작여건이 열악한 것은 물론, 제작자들이 온갖 열정을 바쳐 기껏 만들어도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 KBS 독립영화관 >이 독립영화인들의 버팀목이 되었던 것.
  
  이 때문에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등 독립영화계는 물론 한국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충무로와 문화연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를 비롯한 문화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모두 나서 < KBS 독립영화관 >의 폐지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독협을 비롯한 20개 영화, 문화단체들은 지난 9월 14일 ‘KBS 독립영화관은 계속 방영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독립영화관'의 폐지에 대한 검토를 즉각 증단하고, 안정적 편성을 보장”할 것과,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영화, 영상물의 편성, 방영을 위한 정책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립”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영화제가 하나도 없는 지역에도, 극장이 없는 지역에도 다양한 영상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던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며 KBS의 폐지 결정으로 “독립영화를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민언련도 21일 단체내 회원모임인 ‘영화비평분과’ 이름으로 ‘우리는 KBS 독립영화관을 계속 보고 싶다’는 성명을 내고, “‘독립영화관’을 폐지한다면 독립영화의 관심이 있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프로그램이 사라져버리는 셈”이라며 “KBS가 ‘독립영화관’을 폐지한다면 공영방송이 심야시간의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마저 시청률 경쟁에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립영화관' 폐지는 문화다양성 역행하는 일
  
  이들이 < KBS 독립영화관 >의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단지 독립영화를 볼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의 영화프로그램이나 영화정보프로그램을 주류상업영화가 거의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은 곧 “관객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영화 선택의 편향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흥행의 편향성으로, 그리고 지상파 영화 프로그램의 방영영화의 편향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고 있다”는 것이 한독협 등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 KBS 독립영화관 >의 폐지는 곧 “영상 문화의 다양성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영상문화의 다양성을 영화산업만 담당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재산이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들이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영상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KBS 독립영화관 >을 계속 방송할 것은 물론 시간을 더욱 확대하고 보다 많은 프로그램이 편성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민언련 역시 “방송프로그램의 다양성 보장 차원에서도 ‘독립영화관’은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며 “공영방송들이 이런 독립영화를 그대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독립영화관’은 우리 영화 전반의 질적 성장을 이끄는 토대를 다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한국 영화 전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이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켜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의 요구는 그 동안 < KBS 독립영화관 >이 해온 역할을 돌이켜보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앞서 예를 든 독립영화들을 소개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이들 영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가능성있는 유망한 독립영화 제작자들을 발굴하는 기회도 마련해왔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으로 흥행감독, 유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전에 이미 < KBS 독립영화관 >은 봉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였던 <지리멸렬>을 소개하는 등 이런 예는 < KBS 독립영화관 >에서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또한 < KBS 독립영화관 > 제작진들도 독립영화 발전에 적극 나서 그 동안 한국에서 제작된 독립영화의 현황과 관련 단체, 영화제의 현황을 정리한 책자를 발간하고, 독립영화 DVD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영화를 알리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지금도 < KBS 독립영화관 > 홈페이지에서는 방송에서 소개된 독립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공모해 ‘독립영화관 베스트 컬렉션 DVD'를 보내주는 이벤트가 매주 진행되고 있다.
  
  소수의 시청자 위해서라도 공영방송 역할 다해야
  
  비록 이른바 시청사각지대로 꼽히는 새벽 시간에 방송되는 이유로 많은 시청자들이 < KBS 독립영화관 >을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가진 힘과 제작진의 노력으로 새벽시간까지 기다려 프로그램을 보는 적지 않은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 KBS 독립영화관 >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실망과 우려를 나타내며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폐지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시청자 김연환씨는 “다른 문화 프로가 없어지는 거랑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며 “채널을 두 개나 가진 KBS가 이런 상징적인 프로를 없앤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원소연씨는 “독립영화관을 통해 영화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프로그램이 계속 방송되길 바랬다. 지방의 고등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하고 있는 강사라는 김희철씨는 “KBS독립영화관의 시청률은 낮지만 그 속에서는 신선한 가치관과 무한한 상상력이 꿈틀대면서 조용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며 “독립영화관은 제작진분들께서 짐작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폐지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KBS는 스스로 “< KBS 독립영화관 >은 궁극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의 것”이라고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서 밝히고 있다. 시청자의 것이라는 프로그램이 ‘적은 시청률’을 이유로 방송사의 판단으로만 폐지된다면 이는 곧 ‘소수의 시청자는 시청자가 아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연 ‘국민의 방송’이라는 공영방송 KBS가 문화 다양성과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 대승적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독립영화계와 시청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글은 2006년 9월 25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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