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창녕군의 잘못과 경찰의 잘못, 그리고 조동의 잘못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2. 11. 12:53

본문

경남 창녕 화왕산에 있을 수 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월대보름날, 한해의 복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화왕산 정상 억새 태우기 현장을 찾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어찌 이런 일을 당할 거라 일말의 의심이라도 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고,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부지불식간에 너무나 엄청난 일을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참담함에 휩싸여 있을 가족들과 부상자들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다.

창녕은 나의 고향과도 지근거리다. 화왕산은 나 또한 두어차례 올라본 적이 있다.
창녕 화왕산 정상의 억새밭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해발 700여m에 이르는 산을 땀 흘리며 오르고 나면, 오래전 화산이 폭발하고 난 뒤 생겼다는 분화구가 평지처럼 펼쳐져 있고, 그곳을 뒤덮고 있는 억새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사진출처- http://cafe.daum.net/pcs(수석사랑방))

국내에 억새 명소가 몇 군데 있지만, 아마도 화왕산의 억새는 으뜸 갈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억새꽃이 필 가을이면 억새축제가 펼쳐지고, 3년 마다 한 번씩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한해의 액을 털어내고 복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일반적인 달집 태우기의 수만배 규모는 될만한 억새 태우기가 펼쳐져왔다.

아마도 지방의 작은 지자체에 불과한 창녕군으로서는 창녕을 알리고 손님들을 불러올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우포늪과 더불어 화왕산은 창녕군과 창녕의 지역민들에게 분명 소중한 관광자원임이 틀림없다. 이토록 소중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3년 마다 한 번씩 치른다는 큰 행사를 하면서 이런 참사를 막지 못했다니, 그야말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행사 치르기에만 연연했지, 수만명의 사람이 모여드는 거대한 행사를 주최하고, 거기다 큰 불까지 내는 행사를 하면서 안전대책에 소홀했다니, 창녕군의 책임을 천만번 물어도 부족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 참사를 다루는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태도를 보면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2월 11일자 동아일보)

4명의 목숨까지 앗아간 참사이니만큼, 조중동을 위시한 언론들은 저마다 창녕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묻고 싶다. 기상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화선 구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안전대책을 면밀하게 세우지 못한 창녕군의 잘못과 용산참사를 불러온 경찰의 강경진압의 잘못을 경중으로 따지자면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

내 판단으로는 경찰의 잘못이 창녕군의 잘못 못지 않다. 아니 '인재(人災)'로 따지자면, 오히려 농성 시작 하루만에 인화물질 가득한 망루에 경찰특공대를 몰아넣고 물대포와 컨테이너, 그리고 용역까지 동원해 진압에 나섬으로써 6명이나 되는 인명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러나 어제 지적했듯('오늘 조중동은 죽었다') 조중동은 경찰에 면죄부를 준 검찰 발표에 대해'앵무새'를 자처했고, 기껏해야 "적절치 못하고 비효율적 방법으로 수행된 진압작전"(조선일보) 정도로 지적할 뿐이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창녕군에 대한 조동의 지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의당 언론이라면 이런 참사를 맞았으면 해야 하고 당연히 할 수 있는 비판인데, 왜 그게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적용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창녕군은 보잘 것 없는 지역의 작은 지자체에 불과하고 경찰은 MB의 국정수행을 최전선에서 보호하는 존재라서? 화왕산에서 참변을 당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무고한 일반시민일뿐이고, 용산 재개발빌딩 망루에서 참변을 당한 사람들은 '준도심테러분자'라서?

창녕군에 대한 조동의 지적이 당연하듯, 용산참사에 대한 언론의 지적은 그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 하나, 화왕산의 참사를 놓고 조동은 하나같이 창녕군을 향해 '예견된 인재'라니, '대비가 없었다'니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 또한 어찌보면 가소롭다.

(2006년 정월대보름 다음날인 2월 13일 동아일보 1면. <"불꽃처럼 힘차게" 화왕산 억새태우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같은 날 조선일보 8면. <화왕산 억새 "활활 타올라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보다시피, 3년 전 행사나 참사가 벌어진 이번 행사나 외견상 크게 다를 바 없다. 불의 규모, 몰려든 관광객의 수준이 그렇다. 3년 마다 한 번씩 펼쳐지는 화왕산의 억새태우기에 대해 조중동은 적어도 3년 전 행사와 관련해 '안전대책'에 대해 이야기한 바 없다. 아니 오히려 화왕산의 억새를 태우는 장관이 담긴 사진을 지면에 적극적으로 실음으로써 창녕군의 행사를 앞장 서 홍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놓고 참사가 벌어지자 "가장 기본적 방재 장치인 방화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조선일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허술한 안전의식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동아일보)는 식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창녕 화왕산의 참사가 '예고된 인재'라면 용산 참사는 경찰의 작전에 의해 '계획된 인재'가 아닐까?
창녕군청이 '안전불감증'에 걸렸다면, 경찰은 '인명 경시'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언론이라면 무릇 이 모든 것을 다 지적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