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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200쇄와 2009년 대한민국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3. 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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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200쇄를 넘어섰다. 모두 10권으로 이뤄진 '태백산맥'은 각권 모두를 합치면 7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한권짜리 책이 아니라 여러권으로 이뤄진 대하소설이 200쇄를 넘긴 것은 최초라고도 한다.

나 또한 '태백산맥' 열권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태백산맥' 200쇄 돌파와 700만부 판매에 아주 조금의 기여를 한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아울러 1989년 10권이 모두 완간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좋은 책으로 즐거움과 감동,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데 큰 도움을 준 조정래 선생께 감사의 말도 전하고 싶다.

'태백산맥'을 두고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건대 '태백산맥'의 문학적 성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태백산맥'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역사적 진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기여를 했다고 여겨진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를 온통 휘감고 옥죄고 있던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데 '태백산맥'은 큰 기여를 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을 거치고 한국전쟁을 지나는 동안 북으로 쫓겨가거나 겨울산에서 굶주려 죽고, 얼어 죽고, 총맞아 죽었던,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역사의 패자'가 되어 숨죽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 혹은 집단 혹은 세력에 대해 '태백산맥'은 한쪽 눈이 아니라 두 눈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역사의 승자'가 된 사람 혹은 집단 혹은 세력 혹은 어느 국가에 대해서도 '태백산맥'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태백산맥'은 한국 사회의 굴곡진 역사를 바로 잡는데 '문학의 힘'을 통해 그 어떤 학자나 정치집단보다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 '태백산맥'이 완간된지 20년이 지난 2009년 이때 200쇄를 돌파했다고 하니, 감탄과 함께 복잡하고도 미묘한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난 지금, 2009년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가. 조정래 선생이 스스로 "글 감옥에 갇혔다"고 표현할 정도로 수만장에 이르는 원고를 써가며 되살려낸 역사가 다시 한 번 뒤집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세력들이 권력을 잡아 남한만의 반쪽 정부를 세운 그날을 '건국절'이라고 부르자는 세력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아닌가.

심지어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등 국회의원들은 '건국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해 해방정국의 국우단체 회원들을 '건국 유공자'라는 이름으로 '독립 유공자'와 동등하게 대우하려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대상에는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대한민주청년동맹,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의 조직원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태백산맥'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거다 줄여서 '독촉'이라고 불리는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이 뭔지, 줄여서 '서청'이라고 불리는 '서북청년단'이 과연 뭔지를.

쉽게 말해 해방되어 일제놈들의 수탈과 지주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소작농에서 벗어나 신명나게 농사 지으며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을 끝내 산으로 내몰고, 끝내 하대치, 소화, 외서댁, 강동식 같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이제 '건국유공자'로 '예우'하자는 거다.

얼마전에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부산, 경남 지역에서 3000명이 넘는 교도소 재소자들이 총살되고 바다에 수장되는 등 학살당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밝혀야 할 역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처박혀 있는 데 일제하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승자'로 살아왔던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예우'하겠다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역사를 흔드는 게 바로 2009년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태백산맥' 200쇄를 전하는 언론들의 모습에서도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나의 두 눈을 가장 휘둥그레하게 만든 것은 바로 동아일보.

동아일보 3월 3일 기사

동아일보는 3월 3일 <"태백산맥은 통일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태백산맥' 200쇄를 맞아  조정래 선생이 기자간담회를 가진 소식을 기사화했다. 제목만 보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 있으나, '태백산맥'이 어떤 책인지 안다면 "통일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라는 조정래 선생의 말이 지금의 동아일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임을 누구나 깨달을 거다.

조정래 선생은 "'태백산맥'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가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동아일보는 이 말을 기사 맨 앞에다 붙였다. "이적성 시비에 휘둘렸던 이 작품이 독자들의 힘으로 200쇄를 돌파했듯, 현재 남북의 대응 국면도 민족의 힘으로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는 말도 기사에서 인용했다. 조정래 선생의 이 말이 과연 지금의 동아일보와 0.000001%라도 궁합이 맞는가.

조선일보 3월 3일 기사

'이명박 시대의 동아일보'답게 '태백산맥' 200쇄 소식을 전하려면 조선일보처럼은 써야 그나마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린다고 여겨진다.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을 "북한은 이성 회복하고 극언도 말아야"라고 달았고, 기사 첫문장도 "북한은 이성을 회복해야 하고, 극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한 국민들에게 '북한은 믿지 못하겠다'는 인상을 주어선 안 됩니다"라는 조정래 선생의 발언을 인용했다. '태백산맥' 200쇄의 의미 따위는 내팽개치고 입맛에 맞는 발언만 갖다 쓴 것이다.

사실상 '땡이뉴스'로 전락한 KBS가 조정래 선생을 스튜디오에까지 불러다 '대담'을 진행한 것도 생뚱맞다.

어쩌면 시대 상황과 매체 성격과 무관할 수 있을 정도의 역사적 영향력을 '태백산맥'과 조정래 선생이 우리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동아일보가 '태백산맥'과 조정래 선생을 거론하며 '통일'을 이야기하는 건 아무래도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블랙코미디다.

'태백산맥' 200쇄를 맞아 그 문학적 의미와 시대적 의미를 가장 '정상적'으로 다룬 기사는 아무래도 한겨레다. 그리고 2009년 대한민국에서 '태백산맥' 200쇄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을 가장 제대로 대변해주는 것은 경향신문의 사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그나저나 뉴라이트들은 '태백산맥' 200쇄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까?

한겨레 3월 3일 기사



경향신문 3월 4일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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