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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뜨라~ 한겨레 문화면이 약하다고?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9. 3. 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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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을 보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넌 왜 조중동 따위를 보냐?'고 물을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뭐, 나도 조중동의 시사 관련 기사나 논조는 마음에 안드는데, 문화면이 알차잖아.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그런 면에서 너무 부족한 거 같아."

조중동이 읽을 게 많고, 재밌다는 말이다.
이 말 자체도 전혀 공감할 수 없지만,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문화면 등 시사적인 사안과 거리를 둔 지면이 '읽을 게 없다'는 지적도 공감하기 힘들다.

"그건 너의 선입견이고, 잘 봐. 한겨레와 경향이 얼마나 재밌는데."

그러면서 언급하는게 주로 한겨레의 'ESC'와 경향신문의 '매거진X'였다. 요즘은 경향신문 '매거진X'가 나오지 않아 한겨레 ESC가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별지(섹션)개념인 ESC 외에도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문화면은 재밌다.

진짜냐고? 예를 들어보겠다.

오늘 한겨레 문화면은 최근 대중문화와 관련한 나의 관심사를 확실히 충족시켜줬다.


오늘(3월 9일) 한겨레 16면과 17면을 가득 채운 기사들이다.

16면에는 KBS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히로인 안영미가, 17면엔 '장기하와 얼굴들'이 등장했다.

물론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히로인'은 안영미만 있는 건 아니다. '나쁜 남자'의 김경아와 '국민 요정' 정경미, 그리고 그 어떤 수식이 필요없는 강유미 모두가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대박코너'로 만든 히로인들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주목받는 건 '이거뜨라'라는 '빅히트'시키고 있는 안영미일 것이다.

얼마 전 '순정만화'의 장도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안영미의 활약도 기분좋게 보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안영미가 '황현희PD의 소비자고발'과 함께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 더 큰 역할을 하면서 '큰 웃음, 빅 웃음'을 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요즘 개콘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어제도 정말 배꼽 잡았다. 골룸에 이어 '황비호' 분장을 하고 나온 안영미, '헬보이'를 분장한 정경미와 '원더우먼'으로 나온 김경아, 그리고 마지막에 '판타스틱4'의 돌사나이 '씽'처럼 몸에 돌덩이를 붙이고 나온 강유미까지 그들의 분장을 보고 배꼽을 잡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감성이 메마른 인간일게다.

3월 8일 개콘의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몇장면들



특히 턱밑까지 내려오는 코털을 기른 채 변발을 한 안영미의 분장은 단연 백미였다. 콧바람으로 코털을 날리다 나중엔 코털을 귀에 꽂아 뒤로 돌리는 장면은 말 그대로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안영미에게 "영미야 울지마 코털 젖어"라고 대박 코멘트를 날려주는 강선생님의 대사 또한 백미였다.

그런 초대박 코미디를 보고 난 다음날 한겨레에서 골룸도 황비호도 아닌 예쁜 얼굴의 안영미가 그 동안의 연기생활과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만드는 동안의 에피소드, 그리고 인기비결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털어놓는 기사를 접한 것은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 3회 밖에 하지 않은 코너인데, 한겨레는 과감하게 지면 하나를 털었고, 안영미를 전면에 내세운 발빠른 센스를 보여준 것이다. 사이드에 배치된 <'분장실의..' 출생의 비밀>도 재밌었다. 담당PD조차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두 달 동안 묵혔다'니!!

한겨레에서 이런 발빠른 대중문화 관련 기사가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이 기사를 쓴 하어영 기자의 공력도 상당 부분 작용했을 거다. 최근 한겨레를 보면 대중들의 정서와 관심사를 콕콕 찝어낸 방송 프로그램 관련 기사가 제법 눈에 띄는데, 그 기사들 밑에서 '하어영'이란 이름을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17면의 '장기하와 얼굴들' 관련 기사는 전혀 새로운 한겨레만의 트렌드인 것은 아니다. 제목처럼 '인디'에서 출발했으나 이미 주류 대중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장기하 혹은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미 많은 매체가 앞다퉈 다룬지 오래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식 앨범 1집의 초판 8천장이 동나고, 콘서트가 45분만에 매진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들의 앨범은 그저 보도자료 베낀 것처럼 의례적으로 다루지 않고 "거칠게 얘기하자면 송골매와 송창식, 산울림의 음악을 포크 록 스타일에 맞춰 그만의 해학적인 가사로 표현해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해 준 대목은 '장기하와 얼굴들'과 그 1집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줬다.


작년 2월, 난 이 블로그에 '병만씨! 왜 하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나요??'란 글을 쓴 적이 있다. '달인'으로 한참 인기가 물오르기 시작하던 김병만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것을 두고 느낀 바를 쓴 글인데, 대중적인 웃음 코드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나 또한 굉장히 좋아하는 김병만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것을 보고 '나는 마치 짝사랑하던 사람을 조선일보에게 빼앗겨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근데, 이번에는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안영미를 내가 좋아하는 신문이 한겨레가 잘 썼다. 기사가 나온 시기도 굉장히 적절했고, 기사 내용도 매우 재밌고 알찼다.
누가 한겨레의 문화면이 약하다고 하는가. 별 쓰잘데기 없는 문화 관련 기사 여러개 모아놓거나 색깔없이 보도자료 짜집기 한 것보다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관심사에 집중해서 좋은 시각으로 재밌게 쓰면 그게 좋은 문화 기사가 되는 거다.

비록 하루하루 나오는 일간신문이지만 한 번 읽고 버려지는 기사보다는 읽고 나서 기억에 남고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기사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참고로 아래는 오늘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문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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