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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데스킹마저 무너졌나?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3. 1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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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하게 따지지 않겠다.
오늘(3월 11일) 조선일보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실수'를 저질렀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랬는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어떤 경우든 조선일보의 데스킹 기능은 마비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1면 머리기사에서 그랬으니, '1등신문' 조선일보가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오늘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폭력 촛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8면에도 지면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련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작년 5~8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때 경찰관에게 염산 병을 던지고 경찰버스를 부수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다 구속된 과격 시위대 열 명 중 여덟 명은 법원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아 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리드로 시작한다.

"염산 병을 던지고 경찰버스를 부수는 등 난폭한 행동"으로 구속된 '과격 시위대' 가운데 80%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났다는 거다. 즉 염산병을 던지고 경찰버스를 부순 사람들조차 거의 대부분이 조선일보의 표현에 따르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렸다는 것다.

다시 한 번 지적하자면, 조선일보는 이 기사의 문장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과격시위대'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염산병을 던지고 경찰버스를 부수는 등"이라고.

자, 조선일보의 기사를 계속 보자.
촛불시위로 구속된 사람은 44명. 이 가운데 15명은 아직 1심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나머지 29명 가운데 형이 최종확정된 사람은 19명, 그리고 항소심 등이 진행중인 사람이 10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이들 중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사람은 경찰을 향해 염산 병을 던져 구속된 5명과 '진압경찰이 여학생을 살해했다'는 거짓정보를 인터넷에 유포한 1명 등 단 6명에 불과했다"고 했다.

즉 형이 확정되거나 1심이 완료된 29명 가운데 '실형'이 선고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모두 6명인데, 그 6명 가운데 '염산병을 던진 사람'이 5명이라는 거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마치 염산병을 던진 사람들도 대부분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난 것처럼 보이는데,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것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 것일까?
조선일보가 독자들이 자신들의 기사를 얼마나 꼼꼼하게 보는지 테스트라도 하는걸까?
그냥 이 정도로 눙치고 넘어가면 아무 문제 없는 거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정말 데스킹 과정에서 이 기사의 모순을 발견하지 못하고 윤전기를 돌린걸까?
도대체 뭘까?

조선일보 기사를 제목과 기사 앞구절만 보고 지면을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폭력촛불=염산병 투척 및 경찰버스 파괴자'로 인식하고 이들을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즉 염산병을 던지는 과격 시위자조차 풀어주는 법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셈인데, '염산병을 던진 행위'만으로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법원의 판결조차 "관대한 처벌로 일관했다"는 주장을 조선일보는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런 프레임을 짠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분명하다.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개입을 문제삼은 법원 내 소장판사을 흠집내기 위한 것이다.
'니네가 이딴식으로 판결하니깐 신영철 대법관께서 원칙대로 재판하라고 행정지도한 게 아니냐', 뭐 그런 뜻이 되겠다.

조선일보니깐,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이해한다. 조선일보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사를 쓸 때 최소한의 기본을 갖춰야 되지 않을까. 데스크를 보는지 마는지, 이딴 식으로 기사를 쓰고 '1등 신문' 주제에 허접하다는 말을 듣게 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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