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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는 왜 '명품다큐'가 되지 못했나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9. 3.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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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일 '늪의 지배자'를 시작으로 4일 '야생의 포효', 그리고 11일 '생명의 천국을 가다'까지 KBS가 '공사창립특집 자연다큐멘터리'로 방송한 <야생의 오카방고>가 방송됐다. 전체를 챙겨서 찾아보지는 못하고 2편과 3편을 우연히 봤다. 3편은 '프로그램 제작기'라서 2편과 중복되는 부분이 대단히 많았다.



오카방고라는 지명이 생소한데,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위치한 오카방고는 앙골라에서 발원한 쿠방고(오카방고)강이 칼라하리 사막의 더운 바람에 의해 증발되기 전에 만들어 놓은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다큐멘터리였다. 제작에 들인 공, 장엄하고 생생한 화면, 경이로운 오카방고 생태계의 모습 등 자연다큐멘터리로서 크게 나무랄 데는 없었였다. HD로 제작된 화면과 생생하게 담긴 아프리카 자연 생태계의 모습 등으로만 따지면 지난해 MBC가 '창사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만든 <북극의 눈물>에 충분히 비교할만한 다큐멘터리였다.

<북극의 눈물>이 이누이트들의 바다코끼리 사냥 장면이나 북극곰과 일각고래 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면 <오카방고>는 사자와 리카온의 사냥 모습, 사자 끼리의 혈투 등 아프리카 생태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북극의 눈물>이 풀을 따라 이동하는 사향소와 순록떼의 장엄한 모습을 담았다면, <오카방고>는 물을 찾아 거대하게 떼를 지어 이동하는 아프리카물소(프로그램에서는 '버펄로'라고 했다)의 장엄한 모습을 담았다.

<북극의 눈물>이 북극의 생태를 최대한 생생하게 담기 위해 '시네플렉스'라는 첨단촬영장비를 '국내 최초'로 사용했다면, <오카방고>는 역시 '헬리김블'이라는 특수촬영장비를 역시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북극의 눈물> 제작진들은 추운 극지방에서 녹아내리는 빙하 사이에 빠질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힘들게 촬영했고, <오카방고> 제작진들 역시 '덥다'는 말로는 부족한 아프리카의 극한 기후 속에서 힘들고 어렵게 제작했다.

야생의 오카방고



북극의 눈물


그런데 왜 <오카방고>는 <북극의 눈물>과 같은 호평을 받지 못한 걸까? 프로그램이 3회에 이르도록 왜 미디어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제대로 된 비평글 하나 나오지 않는걸까?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스토리가 없었다. '사자의 사냥 이야기', '리카온의 사냥 이야기', '영역 다툼을 하는 사자의 싸움' 등 에피소드는 차고 넘쳤지만 이를 한데 묶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스토리가 없었고 메시지도 없었다.

비록 생생한 HD 화면에 특수촬영장비로 포착한 아프리카 오카방고 생태계의 리얼한 모습은 담겼지만 그걸 엮어내는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북극의 눈물>에서 이누이트들이 바다코끼리를 사냥한 뒤 즉석에서 해체하고 간을 잘라 나눠 먹는 모습이 비록 '잔인한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극의 눈물> 전체 스토리에 녹아든 이누이트들의 생존방식을 담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면, <오카방고>에서 사자들이 사슴을 사냥해 물어뜯어 피가 낭자하고 금방 뼈만 남는 모습은 내레이션처럼 '아프리카 생태계의 냉엄한 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잔인하거나, 신기하거나, 혹은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에 그쳤다.

4개월에 걸쳐 아프리카 오지에 고생한 제작진에게는 미안한 말이나, 이 정도는 이미 <동물의 왕국>에서 지겨우리만큼 봐왔던 모습이다. 즉 <오카방고>는 '화질 좋은 <동물의 왕국>' 정도였던 거다.

시청자들의 평가는 냉철했다.

<오카방고> 시청자 게시판은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데, 그럼에도 대부분의 글은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시청자 조모씨는 "다큐는 실제상황의 기록으로 뭔가를 말해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실제상황도 편집필름 이어놓은 것처럼 중요한 장면은 다 빼먹고, 짜깁기한 것 같은 데다가, 도대체 주제가 뭔지도 모르겠는, 오카방고만 연신 반복하는 나레이션은 정말 지루하다""이 선명한 화질을 찍을 수 있는 비싼 장비로, 이런 습작같은 다큐를.  부끄러운 줄 알아야....공사창립특집으로, 그 먼 데까지 장비 싣고 날아가서, 고작 요정도의 필름만 담아왔다는 얘기인지. 한심하고, 허비한 달러가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시청자는 "수준이 아마추어 현장스케치네"라고 냉소를 보냈다.

KBS는 '차마고도', '누들로드' 등 명품다큐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는 방송사다. 그런데 <오카방고>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다만 '낙하산'이라는 논란 속에 이병순 사장이 들어온 뒤 '탐사보도'로 각광받던 뉴스는 '땡이뉴스'로 전락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고, 우리 사회 주요 의제들을 가감없이 다뤘던 시사보도물 또한 비판정신이 거세됐다는 지적을 받고, <TV 책을 말하다> 등이 폐지되는 등 교양의 품격을 높였던 프로그램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되더니, 이제는 '다큐멘터리'에서조차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는 건 아닌지, '공영방송 KBS'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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