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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드래곤볼) 흠집낸 엉성한 영화 리뷰

조중동 잡다구리 후비기

by hangil 2009. 3. 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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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아일보 문화면에 만화 '드래곤볼'을 영화화한 '드래곤볼 에볼루션'에 대한 리뷰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원작만화 흠집낸 엉성한 액션>이다.

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고, 볼 생각도 없다.

미국 고등학생이 손오공이라니... '디워'에서 한국인 주인공이 미국인으로 환생한 것만큼이나 뚱딴지 같은 설정이라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예고편만으로도 볼 생각이 싹 사라졌으며, 이미 많은 블로거들과 영화비평가들이 이 영화에 대한 혹독한 비평을 쏟아낸 것을 보고는 '그래 안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으니,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어차피 관심밖의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리뷰'한 동아일보 기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갔다.
일단 제목부터 의아했다.
"원작만화 흠집낸 엉성한 액션"이라니? '드래곤볼 에볼루션'에 대한 비판 지점을 잘못 잡은 듯 했다. 에너지파가 난무하고 기공술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한번의 싸움으로 별 하나를 작살낼만큼의 액션이 쏟아지는 만화 '드래곤볼'의 상상력을 영화가 담기에는 어차피 부족하고 엉성한 것 아니었을까?

문제는 만화 '드래곤볼'을 영화화했다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던, 수업시간에 들키면 한바탕 매질과 압수를 감수하면서까지 교과서 밑에 책을 깔고 'ㅋㅋ' 하며 기어이 보게 만들었던 만화의 재미를 얼마나 영화로 옮겼느냐는 것일테다.

그 방법은 재미가 살아있는 스토리와 등장인물을 원작에 충실하게 살리거나 영화에 걸맞게 재해석하는 게 있을텐데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이 모두를 실패한 채 그저 등장인물, 그것도 몇몇만 옮겨왔고 '7개의 드래곤볼을 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정만 따왔을 뿐이라는 게 아마도 영화를 본 만화 '드래곤볼' 팬들의 중론인 것 같다.

그런데도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제목의 '에볼루션(진화)'과 반대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퇴보'를 경고하는 듯한 영화"라는 기사의 첫문장에서 보듯 동아일보 기자는 '헐리우드 영화의 액션'에 주목해서 이 영화를 리뷰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제목에서 "원작만화 흠집낸"이라고 했지만 정작 원작만화의 무엇을 흠집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이 리뷰를 쓴 동아일보 손택균 기자는 "용의 지혜를 배우도록 해" "네 몸 속의 기를 이용해 봐" 등의 등장인물 대사에 대해 "상투적 대사는 긴장감을 떨어뜨린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원작 '드래곤볼'을 따르기로했다면 이 에너지파 등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 대사는 나와줘야 할 것 같다.

손택균 기자는 또 영화에 대해 "폭력이 난무해 가족영화로 무난하지 않다""영화 중반 손오공은 괴물들을 칼로 쪼갠 다음 사체를 용암에 던져 징검다리로 쓴다"고 그 예를 들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는 과연 손 기자가 만화 '드래곤볼'을 본 사람인지조차 의문이다.

원작에서는 괴물들을 칼로 완전히 분해시키는 장면도 걸핏하면 등장하고 심지어 손오공은 그 괴물들을 잘라 불에 구워먹기조차 한다. 목이 잘리는 장면, 장풍 등으로 몸에 구멍이 나는 장면 등의 원작의 '폭력'은 손 기자의 해석대로라면 과연 어린이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싶다. 실제 에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드래곤볼Z'나 '드래곤볼GT'에는 '잔인하다'할만한 장면들이 제법 등장한다.

이밖에도 손 기자가 원작을 봤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은 더 있다.

손 기자는 기사에서 "그룹 'god' 멤머였던 박준형은 부르마와 느닷없는 로맨스를 펼쳐 이야기 흐름을 끊는다"고 했는데, 영화에서 이 로맨스가 이야기 흐름을 끊는지는 모르겠으나, 박준형이 맡은 '야무치'가 '부르마'와 로맨스를 펼치는 것은 '느닷없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또 손 기자는 "저우룬파는 여성의 엉덩이에 집착하는 천방지축 무천도사로 출연했다"며 이 또한 마치 엉뚱한 설정인 것처럼 썼지만, 원작에서 무천도사는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에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는 '변태늙은이'다.

최근에 본 '드래곤볼 에볼루션' 관련 비평글들이 제법 있는데, 블로그 '양현석-김귀현의 히트앤드런'에서 '양군'이 쓴 '드래곤볼, 부활하지 말았어야 할 전설'이나 영화사이트 '무비조이'의 '<드래곤볼 에볼루션>, 만화 '드래곤볼'에 누를 끼치다'를 읽고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기사의 부실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양군'은 영화가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원작 만화의 매력을 충실하게 재현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무비조이'는 "가장 큰 문제는 원작 스토리를 완전히 폐기시키고 인물만 빌려와 아무런 연관성 없게 만든 영화 기획에 있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스토리도 엉망에 등장인물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영화의 잔재미를 살려줄 수 있는 CG까지 완전히 조악한 수준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작은 연민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한다"고 했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만화 '드래곤볼'을 '흠집냈다'면 이 정도 개념은 가져줘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런 식으로 원작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쓴 리뷰라면 이 또한 '원작을 흠집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튼 한때 '드래곤볼빠'였고 지금도 여전히 '드래곤볼'을 사랑하는 이로서 '드래곤볼'을 흠집낸 영화의 등장으로 상처를 받은데 이어 이런 영화조차 제대로 흠집내지 못하는 주류신문의 기사로 인해 상처가 더 크다. 쩝..

만화 '드래곤볼'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마음을 추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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