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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 중산층의 삶을 포착하다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3. 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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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블로거들은 빠르다.
어제 MBC의 새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 2회를 보고 "와우, 기대 이상인데"라며 글을 쓸까 싶었는데, 이미 다음 블로그뉴스에서는 메인에서 '내조의 여왕'을 다루고 있고 좋은 글들이 이미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

요즘은 블로그에 글 쓸 때도 '속보경쟁'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 쓸 마음이 살짝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숟가락을 살짝 올려볼란다.

일단 '내조의 여왕'을 본 느낌은 '음, 오랜만에 볼 만한 드라마를 만났군'이다.

과거의 인연들이 '우연'을 통해 다시금 이어지는 과장된 설정이긴 하지만 인물들의 관계가 여타 드라마에서처럼 억지스러워 봐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딩 시절 '퀸카'와 '찌질이'가 사회에 나와 위치가 역전된 상황에서 다시 만남으로 인해 생긴 에피소드로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드라마니 이 정도는 드라마의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오지호가 맡은 온달수와 재벌2세쯤 되는 허태준(윤상현 분)의 처 은소현(선우선 분)이 과거 '선후배' 사이였고, 허태준과 김남주가 맡은 천지애 또한 이런 저런 일로 엮이게 되면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쌍이 모두 어떤 인연은 가지고 있는 걸로 설정된 것은 좀 오버스럽긴 하다.

천지애와 양봉순(이혜영 분)의 관계가 이 드라마의 주축이긴 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보다 극 초반 이 드라마에 주목되는 부분은 역시 캐릭터다. 그중에서도 김남주와 이혜영, 오지호가 눈길을 끌고 윤상현 또한 관심이 제법 간다.

블로거 '웅크린 감자'는 '내조의 여왕' 1회 리뷰(김남주는 늙었고, 오지호는 식상하다)에서 "김남주는 늙었다"며 "김남주만 보고 있으면 흡사 15초짜리 CF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듯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라고 혹평했다.

이에 반해 블로거 '한밤의 연예가 섹션'(웃다 쓰러지는 '내조의 여왕', 아줌마 김남주의 부활)은 "아줌마 김남주의 부활"이라며 "김남주가 더 이상 CF모델로도 각광 받기 힘든 상황에서 김남주의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이 틀림이 없다"고 했다.

나는 '한밤의 연예가 섹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나중에 실패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남주는 '내조의 여왕'으로 '줌마테이너'의 일원이 되었다. 극 초반 김남주의 아줌마 연기는 '내 생에 마지막 스캔들'의 최진실보다 더 현실감 있고, 좀 '배운 여자'로서 중산층 삶을 살아가는 아줌마를 잘 표현하고 있다. 꽤 성공적이고 기대를 갖게 한다.

백수 남편 온달수 역의 오지호는 아직 김남주처럼 성격을 분명을 드러낸 캐릭터로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연기가 일품이었다. 시댁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형님네는 간장게장을 주고 자기네한테는 김치를 줘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며 섭섭해 하는 김남주를 달래는 모습이나, 김남주가 차 사고로 한몫 챙길 요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옆에서 과일을 깎아주며 맞장구를 치는 모습,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뻘쭘하게 혼자 앉아 오징어를 찢는 모습 등은 아직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은근하게 상황을 완성도 있게 연출하는 백수남편의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혜영 또한 고딩 시절 찌질이와 잘나가는 부잣집 사모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며 김남주와 짝을 제대로 맞춘 스파링 파트너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애처로운 모습이랄지, 장례식장에서조차 회사 이사 부인의 화장을 고쳐주는 처세에 능한 모습조차 아주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등 다양한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윤상현은 시트콤 'ㅋㅋ섬의 비밀'에서 눈여겨 본 연기자인데, 당시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얄미운 역할을 너무 잘 소화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이번에 맡은 허태준 역이 당시와는 판이한 역할이고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내조의 여왕' 자체가 코미디도 담고 있는터라 시트콤 시절의 능청맞은 연기가 불현듯 드러나기도 해 잘 드라마 자체에 잘 녹아든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캐릭터는 이혜영의 남편 한준혁을 맞은 최철호인데, '대조영' 시절 걸사비우라든지 '천추태후'의 경종 등 사극 이미지가 너무 강해 아직은 아쉬움이 있다. 사극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는 김남주처럼 제대로 연기변신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윤상현의 처 은소현을 맡은 선우선은 아직 뭐라 이야기할 게 없으니 판단보류다.



이처럼 인물이 살아있는 드라마니 기본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또한 과거와 현재,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를 적절하게 넘나들며 뭔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것처럼 인물들의 관계를 중층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 구성도 재미를 높인다. 하지만 나는 캐릭터보다는 인물 그 자체와 '내조의 여왕'이 담고 있는 내러티브에 주목한다.

'내조의 여왕'은 우리 사회 중산층의 삶과 욕구를 잘 포착하고 있다. 특히 '제대로 된 직장'에서 '번듯한 위치'에 올라 좋은 집에서 살며 피부도 가꾸고 상류층끼리 교류도 하
며 자식을 키우고 싶어하는 30~40대 중산층의 욕구가 드라마 전반에 잘 녹여져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거다.

그렇다면 '내조의 여왕'은 리얼한가? 내가 보기엔 리얼하다.
'중산층의 욕구'라니, 심각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내조의 여왕'은 이를 유쾌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적당한 코미디로 풀어내니 거부감이 없고 재밌다. 좋은 대학 나와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그런 이를 남편이나 아내로 둔, 하지만 여전히 '꿈'이 있는 시청자들을 오지호와 김남주는 적절하게 대변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이 이뤄질 수 있는 드라마인 것이다.

이제 2회를 했을 뿐인 드라마를 두고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바람이라면, '신데렐라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는 '내조의 여왕'이 신분상승의 결말로만 나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 중산층에게 좌절과 실패 또한 현실이다. '신분상승'은 대다수에게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즉 여기에 매달리면 '내조의 여왕'도 그렇고 그런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신분상승'이 당사자에게는 성공일 수 있지만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청자들은 오지호가 김남주가 자신들을 대신해 신분상승을 해주기보다 그들의 현실을 유쾌하면서도 인생의 쓴맛을 담아 보여주길 바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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