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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제학교 박철은 김정철인가? 김정운인가?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3. 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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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연합뉴스는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스위스의 프랑스어 시사주간지 '레브도'가 <수습 독재자가 베른지방 독일어를 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지난 3월 5일 게재했는데, 연합은 그 기사("김정운 베른학교 가명은 박철"<스위스 주간지>)를 인용했다.

내용인즉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인 김정운이 1998년까지 스위스의 베른국제학교를 다녔고, 당시 '박철'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했다.

최근 북한의 이른바 '3대세습'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특히 3남 김정운의 후계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지만 김정운은 그동안 사진 한 장 공개되지 않았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는데, 최근 어린 시절 사진이 공개되고 이번에 외신을 통해 그의 과거 행적이 밝혀졌다는 거다.

이 정도면 스위스의 시사주간지 '레브도'는 '특종'을 한 거다. 비록 2주나 늦긴 했지만 외신을 가장 먼저 전한 연합뉴스도 어쩌면 '특종'을 한 것일 수 있다.

물먹지 않으려고 했을까?(기자들은 특종을 놓친 것(낙종)을 두고 '물먹었다'고 한다)

종합일간지들도 프랑스 파리 주재 특파원발로 '레브도'의 '특종'을 전하는 기사를 오늘 아침 신문에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8면에서 <"김정운 가명은 박철/마이클 조든 좋아해">를 '스위스지, 유학시절 보도'라는 부제를 달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2면에서 <"스위스 베른학교의 '박철'이 김정운">이라는 기사를 '스위스 시사지, 주변인 인터뷰' 등의 부제를 달아 보도했다.

셋 다 '레브도'의 기사를 인용했으니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앞 서 언급한 내용 외에 "수업을 마치면 북한 대사관 번호판을 단 차량이 김정운을 태우러 왔었다", "이 학교 경영진들은 '김정운의 학교 친구들은 그의 아버지가 '(북한)대사관 운전기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이상 중앙일보), "'(김정운이) 마이클 조던과 장클로드 반담을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한 친구는 김정운과 같은 반에 있었던 '광철'이라는 북한 학생이 그의 보디가드처럼 보여 이상했다고 증언했다"(이상 동아일보) 등의 내용을 전한다.

정리하자면,

-'김정운은 박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그의 곁에는 광철이라는 이름을 쓰는 경호원 역할의 학생이 있었다'
-'김정운은 마이클 조든과 장클로드반담을 좋아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김정운이 북한 대사관 운전기사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


등으로 '레브도'와 국내언론의 기사를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에 대해 나는 의아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 이 같은 내용은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이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때 똑같이 언급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레이디경향'은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오노 가즈모토'의 기고를 "오오노 가즈모토씨가 일본 '세이론'지에 기고한 글을 본지가 긴급 입수한 내용"이라고 밝히며 <北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의 스위스 유학 시절’ 국내언론 최초공개>라는 제목을 게재한 바 있다.

이 글에 의하면 오오노 가즈모토는 김정철의 스위스 국제학교 유학에 대해 "1993년부터 98년까지 5년간 재학했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대사관 차량 운전수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김정철과 함께 다니며 신변을 보호해주는 같은 또래의 북한 소년과 함께 통학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가즈모토는 "교장은 김정철의 이름을 박철로 알고 있었다", "그의 호위 소년 광철문" 등의 내용을 전했고, 아울러 김정철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는 미국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철이) 액션 영화를 좋아했고 장 클로드 반담을 매우 좋아했다", "김정철은 데니스 로드맨(미 NBA 선수)을 좋아했다고 한다. 언제나 로드맨의 등번호가 새겨진 시카고 불스 티셔츠를 입고 농구를 했단다" 등의 신변잡기도 전했다.

이어 남북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2008년 6월, 김정철의 유학시절 사진을 공개하며 김정철의 스위스 국제학교 생활을 소개한 바 있다. 내용은 오오노 가즈모토가 전하는 것과 역시 대동소이하다.

정성장 연구위원이 공개한 김정철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 유학시절 모습




* 관련기사 : 북한 후계자 1순위 김정철 흔적 찾았다 (시사저널)

특히 이 같은 내용은 국내언론을 통해 대단히 많이 다뤄졌고, 'KBS스페셜'(포스트 김정일 시대, 북한의 권력구도는?)에서도 중요하게 보도된 바 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박철'이라는 이름으로 다녔던 북한인은 과연 '김정철'일까, '김정운'일까? 아니면 둘 다 박철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레브도'가 오보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 같다. 그리고 '레브도'의 기사를 전한 연합 등 국내언론 역시 잇달아 오보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김정철의 스위스 유학 시절 생활은 이미 사진으로도 공개된만큼 신빙성이 매우 높은 반면, 김정운의 경우는 사진도 없고 내용이 이미 김정철의 것을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고는 김정철의 경우를 전한 사람들은 김정철이 NBA 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좋아했다고 한 반면, 김정운은 '마이클 조든'을 좋아했다고 한 것 정도다.

다만 중앙일보는 "이 같은 내용은 일본 언론들이 그동안 정운의 친형인 정철을 소개할 때 언급했던 내용"이라고 단서를 달긴 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이 같은 내용'이 기사에서 언급된 전부인지 아니면 몇 개의 에피소드에 국한되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았고, '레브도'의 기사가 오보일 가능성을 놓고 '팩트'를 추적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김정운 관련 기사들은 북한의 후계 문제에 유난히 난리법석을 피우는 국내 언론, 특히 보수언론들이 낙종을 피하려다 오히려 오보한 케이스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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