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내조의 여왕', 구질구질해지려나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3. 31. 11:54

본문

'내조의 여왕'이 5회를 마쳤다.
아직 재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초반의 기대가 5회에 이르러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재밌긴 재밌는데, 구질구질하고 오버가 심하다.

구질구질하게 궁상을 떨고 오버를 하더라도 그게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래도 웃고 넘어가겠는데, 적어도 '내조의 여왕' 5회에서 구질구질함과 오버는 청승맞게도 뭔가 슬픈 감정 또는 천지애와 온달수의 곤궁한 처지를 시청자들이 느끼게 하기 위한 것들로 짜여져 오히려 짜증을 유발한다.

지난 주 4회를 마치며 천지애는 김홍식 이사의 부인인 오영숙에게 짝퉁 명품가방을 선물한 사실이 양봉순에 의해 발각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마무리되며 긴장감을 높이고, 다음회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5회를 마칠 때는 퀸즈푸드의 인턴경력사원으로 온달수가 천지애와 합작해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성공리에 진행하려는 찰라에 갑자기 어떤 여인네가 나타나 '당신네(천지애-온달수 부부)들이 한 시식회에서 음식을 먹고 아이가 식중독에 걸렸다'며 막무가내로 회사중역들이 다 모인 프리젠테이션 장에 난입해 난리를 치자, 온달수가 어쩔줄 몰라 하는 상황으로 끝났다.

매회마다 다음회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기 위해 뭔가 극적인 상황으로 마무리하는거야 단막극이 아닌 이상 드라마의 기본일테지만, 좀 심하다.

명품 가방을 선물하고 그게 짝퉁으로 발각되는 과정 정도는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 전에 이미 천지애가 짝퉁 가방 제조 알바를 하는 등 상황 설명도 어느 정도 이뤄졌고, 김이사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없는 처지의 천지애가 할 수 있는 일이 짝퉁 가방이라도 선물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프리젠테이션 장에 '어떤 소비자'가 난입하는 것은 오버도 한참 오버다. 국내연봉 상위 10위에 드는 회사라면서 어떻게 일반 소비자가 그것도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는 사람이 회사 내부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들어와 하필 프리젠테이션이 벌어지는 공간을 딱 찾아와 난리를 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사실 경력직이라지만 '인턴사원'의 프리젠테이션을 회사중역들은 물론 사장까지 모여서 본다는 상황 자체도 오버라고 봤는데, 이런 억지 상황까지 만들어가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려 하다니 유치하다.

물론 드라마가 그럴 수 있다. '내조의 여왕'이 그런 드라마로 가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건 '내조의 여왕'이 좋은 드라마로, 앞으로 더 많은 인기를 얻는 드라마로 가는 것과는 먼 길이다.

나는 '내조의 여왕'을 두고 "내가 보기엔 리얼하다"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그런 이를 남편이나 아내로 둔, 하지만 여전히 '꿈'이 있는 시청자들을 오지호와 김남주는 적절하게 대변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이 이뤄질 수 있는 드라마", "중산층의 삶을 포착한 드라마"로 나름 평가했던 것이다.

(관련글 : '내조의 여왕', 중산층의 삶을 포착하다) 

하지만 전개 과정을 보건대 무리하게 평가했던 것 같다.

5회는 웃기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구질구질했다.

양봉순에게 까인 천지애가 온달수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구덩이를 파고 함께 드러눕고 나서는 '다시 태어나는거야'라고 하는 것도, 그 절박함을 이해못할 것은 아니나, 너무 구질구질했다.

'다시 태어난 천지애'가 양봉순의 시다바리가 되어 치지도 못한다는 골프를 친다고 웃음거리가 되질 않나, 물웅덩이에 빠진 골프공을 줍질 않나, 고기를 구워주느라 먹질 못하질 않나, 견인되어 간 차를 찾으러 가서는 돈이 모자라 궁상을 떨지 않나, 온갖 잡심부름에 궁상을 떠는 모습을 보노라면 '내조'의 절박함은커녕 그 구질구질함에 짜증이 몰려왔다.

온달수가 외박을 하고 한강 다리 위에 올라가 자살을 협박하며 용서를 비는 장면은 그래도 드라마 초반이라서 이해했다. 그런데, 구질구질함이 남발되고 있다.


천지애와 온달수의 상상을 보여주는 구성도 이제 뻔히 예측되고 지겹다. 5회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매너리즘?

물론 아직 '내조의 여왕'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은 아니다.

아직 '내조의 여왕'은 재밌고 유쾌하긴 하다. 천지애와 온달수가 힘을 합쳐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장면이 그랬다.

짝퉁 가방을 발각되게 만든 양봉순에게 천지애가 따지자, 양봉순이 택배를 보내 '난 짝퉁이 명품인 척 하는 걸 보면 참을 수 없다'는 편지를 보낸 것은 과거 천지애가 양봉순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과 대조되며 구질구질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천지애-온달수, 혹은 양봉순-천지애의 축으로 흘러오던 드라마가 퀸즈푸드의 권력다툼까지 암시하면서 또 다른 전개를 기대하게 한다.

오늘로 '꽃보다 남자'가 끝나면, '내조의 여왕'의 본 실력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 '내조의 여왕'의 시청률은 10~11% 정도. 35%에 육박하는 '꽃보다 남자'와 대결하면서 이 정도는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꽃남'이 끝나고도 이대로라면, '내조의 여왕'은 그렇고 그런 드라마가 될 것인데, 그건 '내조의 여왕'이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느냐에 달렸다.

긴장감만 고조시키기 위해 억지 설정에다 구질구질하게만 보인다면 '내조의 여왕'은 별 가망이 없다.

'내조의 여왕'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드라마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백수남편을 둔 중산층 가정의 곤궁한 현실을 적절하게 버무려야 한다.

양봉순 앞에서 바보처럼 '헤헤' 웃다 뒤돌아서서 궁시렁대는 정도는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다.


면접을 보러 가는 온달수에게 양복을 사다 입히고 구두를 사다 신기면서 "택 절대 떼지마"라며 구두 밑창에 테이프를 붙이며 '반품'할 준비를 하는 그런 장면이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이고 페이소스가 살아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