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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고발'과 'PD수첩', 본질적으로 같다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9. 4. 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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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석면 베이비파우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아기들을 둔 부모들이 더욱 그렇다. 이미 아이를 다 키웠지만, 땀띠날라 베이비파우더를 애용해왔던 부모들도 불안감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알려졌던대로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지정 1급 발암물질로 호흡을 통해 그 가루를 마시게 되면 폐암이나 석면폐증, 늑막이나 흉막에 암이 생기는 악성종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대로 석면이 함유된 탈크(활석) 또한 국제암연구소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고 한다.

석면이 함유된 탈크는 바르는 과정에서 피부 속으로 유입됨으로써 피부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가루가 호흡기를 통해 몸안으로 들어갈 경우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식약청 조사 결과 시중에서 판매하는 베이비파우더의 절반 이상에서 석면이 함유된 탈크가 사용됐다고 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식약청은 이제서야 베이비파우더의 석면검사를 의무화하고 기준을 마련키로 했다고 한다.

이번 '석면 베이비파우더'의 위험성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방송 프로그램덕분이다. 바로 KBS의 PD들이 제작하는 <소비자 고발>이다.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이영돈 PD가 KBS 기획제작국장이 되며 제작진에서 빠지게 되어 지금은 그냥 <소비자 고발>이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개그콘서트>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을 만들어 역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소비자 고발>의 '석면 베이비파우더 고발'은 뭐니뭐니해도 국민 건강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한 데서 큰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에서는 석면의 위험성을 알고, 2009년 1월 1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건축자재 등의 제품은 제조, 수입, 사용이 금지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음에도 정작 신체에 직접적으로, 그것도 연약한 아기들에게 사용하는 베이비파우더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보건당국의 안이함을 질타하는 '정부 정책 비판 프로그램'의 역할을 다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 여기쯤 이야기했으면 몇몇 분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이번에 <소비자 고발>이 '석면 베이비파우더'를 고발한 것은, 지난해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졸속성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침해받고 검역주권이 훼손될 가능성을 '고발'한 것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MBC <PD수첩>은 이른바 PD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이다.
KBS <소비자 고발>도 PD들이 제작하는 PD 저널리즘이 구현된 프로그램이다.

<PD수첩>이 정치·사회·경제·외교 등 비교적 딱딱하고(경성 소재) 거시적인 사회 현안을 다루는 데 비해, <소비자 고발>은 보다 시청자들의 생활에 밀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소비자 고발>보다 먼저 시작한 MBC의 <불만제로> 또한 마찬가지다. 이처럼 다루는 사안이 차이가 있을뿐 <PD수첩>도, <소비자 고발>도, <불만제로>도 모두 시사고발프로그램이다.

먼저 시작한 <불만제로>의 경우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의 생활감시 프로그램'을 자처하며 '21세기 소비자들을 위한 권리대장전'과 '생활개선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처음 <불만제로>의 제작진으로 참여한 MBC 이동희 PD는 "< PD수첩>이 진화되어 대중적인 친화력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불만제로> 제작진으로 참여한 PD들은 대부분 <PD수첩>이나 <MBC스페셜> 등에서 시사고발에 관한 한 잔뼈가 굵은 PD들이었다.
<소비자 고발> 또한 마찬가지로, <추적60분>이나 <시사투나잇>, <KBS스페셜> 등에서 굵직한 사회 현안을 다룬 경험 많은 PD들이 상당수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PD저널리즘을 토대로 사회고발을 하는 이들 프로그램이 지니는 가치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PD수첩>이나 <소비자고발>이나 <불만제로> 모두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에서 방송되는 이들 프로그램은 이들 방송사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높이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공공성에 있어 공영방송 못지 않은 책무를 부여받는 SBS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PD저널리즘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자들에게 이들 프로그램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자,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기업)이든 힘센 자가 득세하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런데, <PD수첩> 방송을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PD저널리즘을 폄하하고, 흠집내고, 심지어 마치 없어야 될 것처럼 주장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뉴라이트 집단, 조중동, 일부 학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PD수첩>을 두고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릴 줄을 알았지, <소비자 고발>의 개가를 두고 PD 저널리즘을 평가할 줄은 모를 것이다.

동아일보는 "기자들의 경우 여러 단계에서 검증(게이트 키핑) 과정을 거치지만 PD저널리즘은 PD 1, 2명과 작가 1~3명으로 이루어진 팀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PD수첩>을 들어 PD저널리즘이 "결론을 정해 놓고 '팩트'를 짜집기한 보도"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2008년 5월 21일 사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같은 이는 방송사 PD들을 두고 "거대한 방송백화점에 품목별로 진열대를 점거한 독립된 소사장들"이라며 '그런 PD들이 언제부턴가 심층보도와 스토리를 결합한 신상품인 시사다큐를 출시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며 PD저널리즘 프로그램들에 "검증되지 않은 논리, 선정적 영상, 편향적 해설이 자주 동원된다. 국민세금으로 게이트 키퍼 없는 팀 작업을 방치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관련글 : 송호근 교수는 '이명박 애완견'인가요?)

2008년 8월 19일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소비자 고발>에서 확인됐듯 이들의 주장은 마타도어다.
PD저널리즘을 구현하는 프로그램들이 모두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PD수첩>을 들어 PD저널리즘을 비난하고 흠집내는 것은 설령 <PD수첩>에 일정 부분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지난해 방송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PD수첩> 방송을 두고 마녀사냥을 펼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

- 이번에 <소비자 고발>이 제품에 1~5% 가량 함유된 석면의 위험성을 고발한 것과 다우너 소를 도축하는 미국 도축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한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 <소비자 고발>이 고발함으로써 식약청이 석면검사를 의무화한 것등과 <PD수첩>을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유예되고, SRM(광우병 위험물질) 부위가 엄격해진 것 등은 본질적으로 같다.
- <소비자 고발>이 석면이 들어가지 않은 일부 회사들을 위해서나 이번에 중점타겟이 된 보령제약을 망하게 하려는 악의적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비자 즉 국민을 위해 만들어졌듯, <PD수첩> 또한 미국 쇠고기 수출업자나 국내 수입업자, 그리고 정부를 망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시청자 즉 국민을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 조중동과 검찰 등이 <PD수첩>에 들이대는 논리라면, <소비자 고발>에도 얼마든지 해당될 수 있다.

가령 보령제약이, '베이비파우더의 탈크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아무런 기준도 없었는데, 그거 가지고 문제라고 하면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거냐, 니네 때문에 우리 엄청나게 손해봤다. 명예훼손과 영업방해로 고발하겠다'고 하면 검찰에서 '보령제약이 고발했으니, 언제까지 출두해서 조사받아, 그리고 취재원본도 제출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억지라고? 그렇다. 그게 억지라면 <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과 영업방해죄'를 수사하는 것도 억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자 한겨레 만평은 참으로 탁월하다.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 <PD수첩>의 왜곡, 오역 논란에 대해 수차례 글을 쓴 바 있지만, 이 글을 읽고 또 '야, 그래도 PD수첩은 왜곡하지 않았냐?'라고 딴지를 거는 사람을 위해 조만간 다시 글을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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