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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한국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조선일보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4. 2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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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월 20일) 조선일보 경제섹션에 <구글, 한국에서 왜 비실비실거릴까?>라는 글이 게재됐다.

2009년 4월 20일 조선일보


'뉴스 블로그'라고 하여 블로그에 쓰는 글처럼 존댓말로 경제나 IT 관련 이슈를 설명하는 코너에 실린 글로, 이 글을 쓴 정진영 기자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한국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며 자신만만하게 '구글이 한국에서 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너지고 있다"거나 "비실비실거린다"는 등의 표현은 신문이 기업체에 대해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진짜 망하기 일보 직전이거나, 사업을 접었을 때 등 말 그대로 망한 게 확실할 때나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대다수 소비자들은 언론을 통해 해당 기업체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상품을 구매한다든지, 주식을 산다든지, 해당 업체를 이용하든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체들은 언론보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것이 조선일보처럼 큰 신문에 등장하는 내용이라면 웬만한 기업체로서는 회사의 존폐와 직결될만큼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 글에 '구글코리아'가 '실패'해 무너지고 있는 이미지까지 삽입했다.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구글의 한국 지사인 구글코리아가 최근 광고 영업 및 마케팅 부문의 직원 30여명을 감원한 것인데, 이에 대해 정 기자는 "한국에서만 유독 규모가 크다"며 "인터넷업계는 이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마치 기다리고 있던 소식인 것처럼 글을 썼다.

구글코리아의 정김경숙 상무는 "본사 차원에서 세계적으로 진행하는 조직 효율화작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는데, 조선일보 정진영 기자는 "구글코리아가 '글로벌 스탠더드'만 내세우면서 검색 광고 서비스의 현지화에 힘쓰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며 인터넷업계가 구글코리아의 구조조정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선일보 정 기자는 '인터넷 광고 대행사 직원'을 통해 구글코리아를 무너지게 한 사례도 제시했는데, "구글코리아는 후발주자임에도 현지 광고시스템을 한글화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과 "경쟁사에 문의하면 30분만에 답변이 오지만 구글코리아는 빨라야 하루, 길면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한국적인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글코리아가 개선해야 될 사안일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 정진영 기자는 그 동안 구글(또는 구글코리아)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를 적지 않게 써왔다. 하지만 구글코리아의 구체적인 광고매출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업무처리방식 정도를 사례로 제시하면서 "무너지고 있다"고 하니, 구글코리아에 대한 악의적 감정까지 엿보인다.

정진영 기자는, 그리고 조선일보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아마도 정진영 기자가 "구글코리아가 '글로벌 스탠더드'만 내세우면서..." 운운한 대목에서 그 단서를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 기자가 "검색사업도 마찬가지"라며 구글이 최고로 내세우는 '검색분야'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쓴 부분에서 '혹시'하는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정 기자는 "세계 최고의 검색기술을 갖고도 '글로벌 스탠더드'만 고집하면서 한국 네티즌들이 원하는 검색결과를 보여주는 데 실패해 시장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고 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구글코리아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등장한다.

정 기자가 이야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비록 광고영업과 검색사업 분야를 사례로 든 것이지만, '구글코리아가  내세우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거나 심지어 "구글코리아가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자신만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집한 결과"라고 재차 표현한 부분을 보니, 그 의미가 심상찮다.

최근 구글코리아가 한국의 인터넷실명제(정부와 조선일보 등에서는 '제한적본인확인제'라고 부르는)에 반발해 유튜브에서 국적을 한국으로 설정할 경우 아예 동영상 업로드와 글쓰기 기능을 없앴다. 이를 두고 인터넷실명제를 실시하는 한국 정부는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후진국가로, 구글코리아 측의 조치는 '글로벌 스탠더드' 그 자체로 평가하는 경향이 많았다.

(참고 글 : 구글에 ‘우롱당한’ 방통위?)

즉, 한국 정부의 인터넷실명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구글 측을 싸잡아 비난하고 흔드는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다 붙인 게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실명제를 거부한 구글의 발표 이후 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은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과 칼럼을 썼지만, 조선일보에서는 구글을 비난하는 글이 게재됐다. 그 글을 쓴 사람 역시 정진영 기자였다.

2009년 4월 10일 조선일보



지난 4월 10일 정 기자는 조선일보에 게재된 <구글, 법망은 피하고 이득만 챙기겠다?>에서 "국내법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구글코리아의 행태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구글의 이번 조치는 실정법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유리한 것만 챙기겠다는 '얕은 속임사'라는 지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비판의 도마에 올랐던 건, 구글보다 한국 정부였던 것 같은데, 정 기자는 구글이 챙긴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그 동안 구글의 검색 방법이나 사이트 운영 방침을 국내 인터넷 포털이 배워야 선진적인 것으로 제시해왔다.

2008년 10월 13일 조선일보



지난해 10월 13일 조선일보는 ''인터넷 악플'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시리즈 기획기사에서 '외국에선'이라며 <구글·야후 등 포털에 제공된 뉴스에 댓글 맘대로 못달아>라는 기사를 지면 가득 실은 바 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선진국에서는 악성 댓글이나 게시글이 '여론'으로 둔갑하는 사례는 드물다"며 "구글이나 야후 같은 해외 포털 사이트에서는 언론사가 제공하는 기사에 대해 함부로 댓글을 달 수 없는 구조"라고 구글의 방침을 보고 배워야 할 외국사례로 제시했다.

이에 앞서 6월 19일 사설 <인터넷 포털, 언제까지 사이버 폭력 놀이터 노릇 하나>에서 조선일보는 이른바 '광우병 촛불시위'와 관련해 다음과 네이버를 비판하면서 "검색기능 위주로 운영되는 구글, 야후 같은 세계적 포털과 달리 우리 포털은 온·오프라인 언론사들의 기사와 블로거들의 글을 선별 배치하고 토론방 등을 통해 여론을 몰아가는 데 주력한다"며 "포털이 이대로 가면 언젠가 제 손으로 법의 제재를 부르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또 2008년 4월 30일 조선일보 이광회 인터넷뉴스부장은 칼럼 <'나쁜 기업 되기 경쟁'과 구글>에서 "구글 검색은 진·출입 경로가 다른 사이트와 많이 다르다"며 "구글은 찾아온 검색자를 구글 사이트 안에 마냥 붙들어 매지 않는다. 구글 창에서 검색대상을 클릭하면 검색자는 곧바로 검색된 사이트로 빠져나간다. 구글과 해당 검색대상 사이트와 상생 모델이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구글을 평가했다.

즉, 언제는 오픈된 검색 방법이라든지 따로 커뮤니티 등을 만들지 않는 구글의 운영 방침을 칭찬하다가 이제는 "한국 네티즌들이 원하는 검색결과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며 "무너지고 있다"고 악담을 퍼붓는 꼴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이 한국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진단일까? 아니면 조선일보와 정진영 기자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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