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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코믹멜로 '내조'의 아쉬움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5. 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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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승승장구하며 후반부를 달리고 있다.
여전히 재밌다.
수도권에 국한되긴 했지만 이번주 방송된 16회에서는 마침내 시청률 30%를 넘어섰다. 전국 시청률도 29%를 넘었다.
이로써 '내조의 여왕'은 명실상부한 '대박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방송 초기부터 '오랜만에 볼만한 드라마를 만났다'는 반가움으로 '닥본사'를 실천하며 '애청자'로서 '내조의 여왕'을 관심있게 봐온 입장에서 아쉬움 또한 감출 수 없다.

드라마 초반,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내조의 여왕'의 내러티브에 주목했다.

'내조의 여왕'은 우리 사회 중산층의 삶과 욕구를 잘 포착하고 있다. 특히 '제대로 된 직장'에서 '번듯한 위치'에 올라 좋은 집에서 살며 피부도 가꾸고 상류층끼리 교류도 하며 자식을 키우고 싶어하는 30~40대 중산층의 욕구가 드라마 전반에 잘 녹여져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거다.

(관련글 : '내조의 여왕', 중산층의 삶을 포착하다)


비록 드라마 인물들의 관계가 허황되고 과장된 측면이 많았지만,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담고 있는 상황들과 그것들이 풀려나가는 과정들이 어느 정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 '내조의 여왕'이 리
얼리티를 담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열심히 '닥본사'를 실천하며 지금까지의 드라마 전개를 보건대, '내조의 여왕'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리얼리티는 거세되었고 그 자리를 그저 캐릭터와 멜로, 그리고 코미디가 차지하고 말았다.

백수 남편을 성공시키고자 온갖 수모를 감내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천지애에게 지금 남은 것은 남편 온달수에 대한 배신감뿐이다. 하나 더 하자면 악연으로 얼킨 친구 양봉순 부부의 화해 전도사 정도랄까.

천지애의 노력 덕분에 대기업에 취업하게 된 온달수에게 지금 남은 것은 대학 시절부터 자신에게 마음을 줬던 대학 후배에 대한 연민 또는 알 수 없는 감정과 그로 인한 아내 천지애에 대한 미안함, 그 둘 사이를 갈팡지팡하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의 모습이다.

16회에서 양봉순이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며 남편 한준혁이 받게 될 감사를 챙기고 보험증서들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눈물겨운 내조'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오히려 '내조의 여왕'이 멜로드라마임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입증시켜준 설정이었다.

비록 과장되긴 했지만 드라마 초반 대기업 임직원들의 출세를 뒷바라지하는 '퀸즈푸드 부인회' 즉 '평강회'의 모습은 우리 사회 중산층이 지향하는 신분상승의 목적지(피트니스와 쇼핑, 테라피를 즐기고 상류층의 관계를 유지해가는)와 수직서열화된 '그들만의 리그'를 코믹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 '평강회'는 그저 '천지애-양봉순', '한준혁-온달수' 관계에서 비롯된 소문 전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멜로를 벗어나 이른바 '성공'이라는 관점에서 긴장감을 높이는 인물들이 김홍식 이사 부부라 할 것인데, 이런 정도의 대기업 상층부에서 일어나는 권력쟁투는 다른 드라마에서 흔하고 흔하게 봐온 터라 전혀 새롭지 않다. 다만 음모를 꾸며나가는 김창완과 나영희의 능글맞은 연기가 감탄을 자아내며 눈길을 사로잡을 뿐이다.

그리고 사실 '내조의 여왕'은 멜로드라마로서도 크게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다. 태봉이 천지애에게 '함께 있으면 좋은 친한 감정'을 느끼며 천지애 집 주변으로 이사까지 오는 상황은 '쟤, 도대체 왜 저러는거야?'라는 생뚱함을 가지게 만들뿐 아직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남편과의 이혼을 생각하면서 '별거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나가 살 집을 구할 수 없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천지애에게서, 비록 이혼을 대하는 여성의 현실적 고민을 엿볼 수 있음에도 그다지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천지애-온달수-은소현'의 관계가 그 정도의 파국을 기대할 정도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것으로 나의 편견일수도 있고, 어쩌면 독
하디 독한 막장드라마가 판치는 속에서 '얘걔~ 이 정도로 이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조의 여왕'에서는 순수한 감정이 살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내조의 여왕'은 여전히 재밌다.

캐릭터 덕분이고 연기자들의 공로다. 특히 '내조의 여왕'의 캐릭터들은 단조롭지 않고 다양한 내면이 살아 있어 더욱 신선한다.



천지애는 재밌고 어리숙하면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마음 씀씀이가 따뜻한 정이 가는 인물이다.

온달수는 우유부단하면서도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한 인물로 마음이 가고 신뢰가 간다.

양봉순은 얄미우면서도 애처로움을 가지게 만들고, 한준혁은 회를 거듭하며 코믹함을 완성시키고 있다.

은소현은 보호본능과 판타지를 동시에 자극하고, 허태준은 지금까지 드라마가 그려낸 '재벌2세'의 전형에서 탈피한 새로운 인물을 선보였다.

김창완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김 이사 부인 오영숙(나영희)의 경우는 특히 눈길이 간다. 쇼핑에 환장한 철없는 상류층 부인네인가하면, 음모술수와 협잡에 능한 냉철한 인물이었다가도 남편에게 애교 떨 줄 아는 귀여움을 간직한 캐릭터다.

여기에 평강회의 아낙들도 캐릭터 그 자체로서는 감초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청률 30%에 다다른 '내조의 여왕'의 성공 비결인 것 같은데,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캐릭터가 살아 있는 성공한 코믹멜로드라마'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다. '내조의 여왕'은 이 이상의 다른 평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드라마였는데, 그저 '재밌는 드라마'로만 남을 것 같다. 그래도 결코 나쁘지 않다. 이 정도의 '가능성'이라도 엿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나는 일조차 우리 방송엔서 하늘의 별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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