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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 등장'이라는 조선일보를 보고 5.18을 되새긴다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5. 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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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29주년이 되는 아침.
조중동 신문을 보는 심정은 너무나도 처참하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켜보기조차 괴롭다.
조선일보는 29년이 흐른 지금도 29년 전과 조금도,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눈 앞의 지면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은 참담할 따름이다.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회장이,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이른바 '특수고용직'이라 불리는 화물노동자들의 처지가 다시 한 번 사회적 논란으로 떠올랐다.

한 두번이 아니다. 노동삼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화주나 대형운송회사들의 횡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노동환경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파업도 하고, 투쟁도 하고, 협상도 하고, 타협도 이뤄졌다. 하지만 그동안 달라진 것은 없고, 사람이 죽어나간 뒤에야 세상은 좀 있음 다시 사그라질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나마 조중동은 사람이 죽어도 못본 체 했다.

그러다, 화물연대가 조중동 신문 1면을 장식했다. 5.18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선일보는 <죽창, 3년8개월만에 또 등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걸었다.
'죽창'이라...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동학농민군이라도 된단 말일까. 농민들의 피와 땀을 수탈한 지주놈들의 배때기에 꽂아 넣었던 죽창을 정녕 손에 들었단 말일까.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시위대는 만장용으로 사용하던 4~5m 길이의 죽봉을 바닥을 내리쳐 '죽창'으로 만들었고",
"16일 오후 6시30분쯤 대전동부경찰서 인근 도로는 '죽창'이 등장하면서 전쟁터로 변했다."
"시위대는 죽봉에서 '생존권 쟁취' 'MB정권 심판' 등의 글이 적힌 검은색 천을 떼어낸 뒤 바닥에 내려치기 시작했다. 죽봉은 끝이 날카롭게 갈라지면서 '죽창'으로 변했다."


개념을 분명히 하자.

노동자들이 든 '도구'는 '만장용 대나무 막대기'였다. 만장을 떼어내면 그냥 '대나무 막대기'다. '대나무 막대기'라고 표현하는 게 불편하면 줄여서 '죽봉'이라고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죽창'이라니?

조선일보 기사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죽창'이 3년8개월만에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때 등장한 '죽봉'을 두고 조중동과 경찰은 '죽창'이라고 불러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조중동과 경찰은 그렇게 다시 재미를 보려고 하고 있다.

2009년 5월 18일 중앙일보 1면 기사. '죽창' 1000개가 제목

조선일보가 1면에 내건 사진만 봐도 노동자들이 든게 과연 '죽창'인지 '대나무 막대기'인지는 한눈에 들어온다. 그 어디에도 끝이 날카롭게 잘려나간 '죽창'을 볼 수 없다. 심지어 '바닥에 내리쳐 끝이 날카롭게 갈라진 죽창'도 확인이 안된다.

조선일보는 큼지막한 볼드체의 '죽창'이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워 사진속 노동자들이 든 물건을 '죽창'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세뇌작업까지 서슴치 않고 있는 셈이다.

고인이 된 미술가 구본주의 작품 '갑오농민전쟁'. 죽창을 든 갑오농민군의 모습이다. 저 정도가 되어야 죽창이라 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조선일보는 29년 전에도 이런 짓을 서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광주에서 피의 학살이 자행될 때도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광주의 진실을 외면하고, 광주시민을 '폭도'로, '무법자'로, '난동자'로, '불순분자'의 선동에 휘둘린 분별력 없는 사람들로 몰았다.

1980년 5월 25일 조선일보. 제목은 '무정부 상태 광주 1주', 부제는 '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이다. 이 기사는 김대중 기자가 썼다.

지금 조선일보 고문으로 있는 김대중이 쓴 1980년 5월 25일 <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무정부 상태 광주」1주>는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며 광주시민을 ‘난동자’로 표현했다.또 같은 날 사설에서는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며 “피 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분별력이 없는 법이다”고 주장해 광주항쟁을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분별없는 난동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관련글 : "광주 비극 전하려 애썼다"는 조선일보를 보고)

그리고, 계엄군이 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을 학살하고 광주를 완전히 제압한 뒤 조선일보는 "새벽 3시 30분 군병력 투입을 개시, 1시간 40분 만인 5시 10분 광주시내 일원을 완전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며, 군 투입과정에서 무장저항하던 폭도 17명을 사살하고 2백95명을 체포, 보호 중"이라는 계엄군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해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했다.

"시위대가 '죽창'을 사용해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은 2005년 6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와 같은 해 9월 인천 맥아더 동상 철거 시위 이후 처음"이라는 '경찰청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기에 급급한 지금과 똑같다.

전남도청이 진압된 뒤 5월 28일 조선일보 1면

29년 전, 조선일보는 공수부대의 만행에 의해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들이 무참히 죽어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29년이 지난 지금 집회가 끝나고 식당에서 밥 먹는 노동자들까지 잡아가는 등 경찰의 무차별 폭력진압에 의해 무려 457명 연행되고, 피흘리는 부상자가 속출했던 화물연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29년 전 광주에 대해서 그랬듯 계엄 상태나 다름없었던 5월 16일 대전의 상황을 조선일보는 오로지 외눈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2009년 5월 16일 대전. 진압봉으로 노동자들을 후려 갈기고 마구잡이로 연행하는 등 무차별 폭력진압을 자행한 경찰



강산이 세번 바뀔 시간이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조선일보. 하지만 오히려 29년 전보다 힘이 더 강해져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권력을 움직이는 조선일보. 그리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이런 상황... 참으로 절망스럽다.

하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겠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좌를 차지한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가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5.18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피의 교훈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늘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5.18을 다시 맞이하는 오늘의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 같다.

덧)
댓글들 가운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냐'는 '항의'성 글들이 몇 건 있어, 그날 상황을 언론보도를 인용해 소개합니다. 다만 제가 현장에 없어 소개하는 기사가 100%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지금 소개하는 기사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는 언론의 기사로 '편향됐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조중동에서는 볼수 없는, 그리고 5월 16일 상황과 관련해 모든 언론 가운데 그나마 현장 상황을 가장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민주노총 쪽에서 5월 16일 상황을 바라보는 평가도 소개하지요.

(전략..)

이날 경찰의 작전은 '대한통운까지 유인해 때려잡기'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 경찰들은 이날 화물연대 조합원 등을 선두로 한 1만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대한통운까지 행진할 때까지 별로 막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앞서 화물연대 결의대회와 전국노동자민중대회 장소였던 대전청사에서 대전중앙병원까지 행진은 사전 신고가 돼 있었으나 대전중앙병원에서 대한통운까지는 예정에 없었던 행진코스였다. 물론 경찰은 병원과 대한통운 사이에 있는 대전동부경찰서 앞에 전경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쌓아두고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는 등 행진 대오를 막긴 했으나 이내 뒤로 쭉쭉 물러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 두 군데 더 바리케이트가 있었으나 경찰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길을 열어줬다. 행진 과정에서 선두에 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만장으로 사용한 대나무를 이용해 수십대의 전경버스를 파손하는 등 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경찰과도 별다른 마찰없이 파죽지세로 대한통운까지 행진했다.
참가자들이 대한통운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한통운 주변은 경찰들로 겹겹히 둘러쌓여 있었고, 약 30여 분간 대치국면이 지속됐다. "대한통운을 접수하자"는 조합원들을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이 "총파업 투쟁에 집중하자"고 달래 집회를 정리하고 대전중앙병원으로 다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들은 대오가 뒤를 돌기가 무섭게 앞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통운 앞 4차선 도로는 전경버스가 꽉 들어차 있어서 빠져나갈 퇴로가 턱없이 좁았던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도로가 약간 경사져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뛰어나갔을 때 압사 위험이 있는 지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경찰은 그런 상황까지 계산해 놓은 듯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들어왔고, 역시나 경사 진 도로에선 수 십 명의 참가자들이 경찰에 밀려 넘어지고 깔렸다.
경찰들은 마치 '인간사냥'이라도 나선 듯 보였다. '조끼와 우비를 입은 사람은 다 연행하라'는 지침이 떨어져 곳곳에서 무차별 연행이 벌어졌다.
연행자 1명 당 5~6명씩 달려들어 분풀이를 하듯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댔고, 여성과 남성, 참가자와 시민을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연행해갔다.
경찰들은 인도 한 쪽에 참가자 50여 명을 몰아넣었고, 이들은 쪼그리고 앉아 양손을 머리에 얹어놓고 연행을 기다렸다. 5.18사진에서 많이 봤던 시민들을 연행하가던 계엄군의 모습, 딱 그 모습이었다.
경찰들은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이 탄 관광버스를 통채로 연행해가기도 했다. 실제 충남지역 참가자들은 버스에 타고 있다가 동부경찰서 근처에서 전원 연행됐으며, 금호타이어노동자들이 탄 전세버스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연행됐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조합원들도 연행됐다. 일부 참가자들은 버스를 버리고 기차 등을 이용하기 위해 대전역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대전 지역에서 좀처럼 시위를 볼 일이 없었던 대전 시민들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민들은 기자를 보자마자 자신들이 목격한 경찰폭력을 제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시민은 "시위하는 사람들이 대나무로 경찰차를 부수길래 혀를 찼더니 경찰들이 더 너무한 것 같다"며 "어떻게 도망가는 사람들을 저렇게 짓밟을 수 있느냐"고 성토했고, 또 다른 시민은 "몸이 후들후들 떨려 말을 못하겠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전 시민들은 "정말 이건 아니다", "경찰이 너무 한다", "경찰이 미친 것 같다"고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후략)

-관련기사 링크 : 연행자 수 460명 넘어.."경찰이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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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임성규 위원장은 "유태열 대전경찰청장은 청장 자격이 없는 비열한 사람"이라고 맹비난하며 16일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임 위원장은 "애초 대한통운 앞까지 집회신고를 내려고 했으나 신원불상의 단체가 대한통운 앞 집회신고를 해놔 대전중앙병원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회 중 대한통운 앞 집회 신고를 낸 단체가 집회를 하지 않은 것을 알고 대한통운까지 평화행진 후 마무리 집회하고 해산하겠단 입장을 경찰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오가 병원 앞에서 대한통운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방패와 곤봉으로 집회 참가자들을 난타하면서 자극하기 시작했고, 이상하게도 경찰이 뒤로 물러나 길을 열어줬다"며 "그러더니 경찰이 대한통운 앞에선 정리집회를 하고 돌아서는 조합원들을 뒤에서 덮치는 비열한 행위를 했다. 유 청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우리의 투쟁 수위도 낮아질 수 없다"고 밝혔다.

(중략)

민주노총은 "노동자 민중대회에선 무려 486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연행됐고, 부상자만 1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조합원 A씨는 전경에 둘러싸여 곤봉으로 집단구타를 당해 어깨탈골, 발목이 부러져 입원 치료 중이며, 조합원 B씨는 곤봉에 가슴을 가격당해 갈비뼈가 부러져 입원치료 중이다. 조합원 C씨는 방패에 가격당한 머리가 찢어져 봉합수술을 받았고, 조합원 D씨는 고막이 손상됐다. 조합원 E씨는 턱뼈에 금이 가는 등 전치 6주의 부상을 당했다.
민주노총은 "독재정권에서나 볼 법한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는 데에는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 정책이 도사리고 있다"면서 향후 시국선언 대회, 인권위원회 제소, 국제노동·인권기구 특별조사 요청 및 6월 개최되는 국제노동기구 (ILO)총회에 한국의 노동상황 제소 등 노동권 보장 및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후략)

-관련기사 링크 : 민주노총 "5.16 연행사태..경찰의 기획폭력·함정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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