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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작은비석건립위원장님, 조선일보 칼럼 그만 쓰시죠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6. 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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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하면서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유서를 남겼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 등 봉하마을 측에서는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라는 것을 결성했는데, 지난 6일 첫 전체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작은 비석 건립위'의 위원장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맡고, 그를 포함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으로 이미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언으로 남긴 '아주 작은 비석'을 건립할 총책임을 맡은 것은, 그 자체로 문제될 건 없다. 특히 유홍준 전 청장은 참여정부 시절 문화재청장이 아닌가.

6월 8일 한겨레 2면에 게재된 사진. 작은 비석 건립과 관련해 봉하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유홍준 전 청장의 모습이 내 눈엔 조화롭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눈에는 유 전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지금 그의 유언을 집행할 중요한 한 사람이 된 것이 적절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결정적인 이유는 딱 하나다.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난 유 전 청장이 명지대 교수를 하면서 지금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청장은 지난 4월 2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 한편씩 조선일보 지면에 '유홍준의 국보순례'라는 꼭지의 칼럼을 쓰고 있다.

유 전 청장은 첫 칼럼에서 "지난해 2월 숭례문 화재의 책임을 지고 문화재청장 직에서 사임한 이후 나는 참회하는 마음에서 일체의 사회적 활동을 자제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 왔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지금, 아무래도 나의 본업은 문화유산에 대한 글쓰기에 있다는 생각에서 이제 국보 순례 길에 나서게 됐고,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당연히 숭례문이 되었다"고 밝히며 '숭례문 현판 글씨'와 관련한 글을 시작으로 조선일보 칼럼을 쓰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으로도 명단을 올렸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국민장 기간에도 조선일보 칼럼 게재를 멈추지 않았다.

유 전 청장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도 '조선일보 지면과 유홍준의 글이 어울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 전 청장이 민청학련 세대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경력만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숭례문 화재가 발생했을 때 외국 출장을 가 있던 그는 보수신문으로부터 '국보 1호가 화재가 났는데 문화재청장이 자리를 비우다니' 식의 대단히 치졸한 정치공세를 받은 바 있다.

특히 동아일보는 출장비와 일정까지 문제삼으며 유 전 청장을 벼랑으로 몰아세웠다. 당시 조선일보는 이러한 유 청장에 대한 정치공세에서 한 발 물러나 있긴 했지만, 내 눈엔 '그 놈이 그 놈'인데, 그렇게 당해놓고 동아일보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조선일보에 버젓이 고정칼럼을 쓰는 행위가 아이러니였다.

2008년 2월 12일 동아일보 1면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에 와서 유홍준 교수에게 뭘 크게 기대하는 바도 없고, 그냥 '그렇게 사세요'라는 마음으로 매주 그가 쓰는 칼럼을 훑어보고 지나쳐왔다. 그의 글 내용도 그의 말대로 "문화유산에 대한 글쓰기"라 그 자체를 딱히 문제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홍준 전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집행하는 '작은 비석 건립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조선일보에 매주 칼럼은 쓰는 행위가 내 눈에는 결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재차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데'라는 말을 반복하고 싶진 않다.

과연 유 전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조선일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를까?
그 수많은 기사와 사설, 칼럼을 정말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할까?
그런데도, '작은 비석 건립위' 위원장도 맡고, 조선일보에 칼럼도 쓰고, 둘 다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 눈에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이는데 유 전 청장은 아닌가보다.

유홍준 전 청장에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조선일보 칼럼을 중단하시라고.
하지만 정녕 조선일보에 계속 칼럼을 쓰시고 싶다면 '작은 비석 건립위' 위원장을 스스로 사양하시라고.
작은 비석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게 더 고인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길이라 나는 믿는다. 내 생각이 너무 속좁은 건가?

 

덧) 아래를 펼쳐보시라. 조선일보 독자들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칼럼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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