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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열풍', 따져보자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7. 6. 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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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열풍', 따져보자


 지난 주(10월 30일~11월 5일)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전국 시청률 현황을 보면 1위에서 10위까지 순위에서 드라마가 8자리를 차지했다. 1위부터 6위까지는 모조리 드라마가 차지했고, 그 외 순위에서는 비드라마 KBS2TV <개그콘서트>와 <상상플러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드라마다.(TNS 기준)
  
  현재 지상파 4채널(KBS 1·2TV, MBC, SBS)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를 모두 더하면 25편이 나온다. 여기에 재방송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숫자가 훨씬 늘어나겠지만, 어쨌든 일일연속극, 주말드라마, 수목드라마 등등 그 종류별로 편성된 드라마를 살펴보면 가히 ‘대한민국은 드라마의 천국’이라 할 만 하다. 시청자들의 선호도(시청률)도 이를 입증한다.
  
  그 25편 가운데 8편이 시청률이 상위 10위권 내에 포함되었다니,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장 폭발력이 실로 대단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KBS '대조영', MBC '주몽', KBS '황진이', SBS '연개소문'

  
  그 8편의 드라마 가운데 절반이 사극이다. MBC <주몽>은 시청률 40%를 넘으며 몇 달째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주말 밤 엇비슷한 시간대에 포진한 SBS <연개소문>과 KBS1TV <대조영>은 시청률도 각각 20~22% 정도로 엇비슷하게 나오며 엎치락뒤치락 중이다. 그리고 KBS2TV 수목드라마 <황진이>가 16~19% 정도의 시청률로 10위에 올라 있다. 현재 지상파 3사에서 방송되고 있는 사극 4편 모두가 시청률 상위권에 진입해 있는 것이다.
  
  2006년 가을, 한국의 방송은 가히 ‘사극열풍’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MBC가 내년 초와 상반기 각각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다룰 <태왕사신기>와 김희선과 박지윤을 ‘기생’으로 내세운 <해어화>를 방송할 예정이고, KBS는 내년 7월 즈음 <세종대왕>을 방송할 계획이라고 하니 당분간 사극바람은 지속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극이라는 장르가 방송계 내지 드라마 전반을 쭉 이끌고 나갈 주류 장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방송에서 사극은 언제나 꾸준하게 이어져 오던 장르다. 지난 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해신>과 <불멸의 이순신>, <서동요>, <신돈> 등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장금>, <다모>, <허준>, <태조 왕건>, <용의 눈물>, <명성황후> 등까지, 아니 <조선왕조 500년>부터 따져보더라도 사극은 항상 기본 이상은 하는 장르였다. 물론 중간중간 번트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는 작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따라서 지금처럼 고구려와 관련된 드라마가 동시에 3편이나 방송되고(1편은 건국을, 다른 2편은 멸망을 다루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색적이다), 여기에 ‘기생’과 관련된 드라마까지 덧붙여 4편이나 한꺼번에 안방극장을 공략하는 모습은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다.
  
  더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극열풍’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
  
  MBC <주몽>은 완성도에 대한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고, 거기다 ‘연장방송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높은 시청률이 무색한 지경에 이르렀다. SBS <연개소문>은 궁궐을 등장시키면서 합판에다 사진을 붙여놓은 세트를 사용했다 시청자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KBS <황진이>가 ‘황토팩’ 간접광고 논란을 겪은 것도 적지 않은 흠이다.
  
  <연개소문>과 <대조영>의 경쟁도 따지고 보면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시대가 비슷하다보니 연개소문은 SBS에도 나오고 KBS에도 나온다. 양만춘 등 주요 인물도 마찬가지. 물론 두 드라마가 각기 차별성이 있겠지만, 채널이 나눠져 있는 것은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서다. 시청자들이 비슷한 시대, 비슷한 인물들이 큰 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드라마를 비슷한 시간대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채널선택권이 제약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나아가 특정 장르가 비슷한 시기에 집중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맞대응 편성이 결코 우연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들의 경쟁의식 속에서 파생된다는 점. 서로 상대 방송사 프로그램을 앞지르려고 급하게 만들다보니 드라마 자체가 부실해지는 일도 다반사로 생긴다.
  
  반면 지금의 사극열풍이 그 동안 사극드라마가 다루지 못한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고구려, 발해 등 그 동안의 사극에서 다뤄지지 않은 시대를 다룸으로써 해당 시대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라든지, 기존 사극에서는 조연이나 비주류에 머물러 있는 재야의 기생이라는 존재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소재의 확장,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열풍, 열풍’ 한다고 유행에 덩달아 휩쓸리기보다 어떤 드라마를 보든 내용과 형식에 얼마나 충실한 지, 그리고 얼마나 새로운 지를 먼저 살펴본다면 보다 즐거운 드라마 시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06년 11월 10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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