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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섭 교수가 잃은 것, 한국사회가 잃은 것, 그리고 잃을 것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6. 30.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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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2008년 6월 20일. 부산 동의대학교는 이 학교 광고홍보학과에 재직중인 신태섭 교수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이보다 앞서 5월 30일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이미 해임을 결정해놓으면서도 당시 한참 달아올랐던 촛불의 기세에 눌렸는지 '해임통지서'를 손에 쥐고 쪼물락거리다, 촛불이 주춤해지자 신태섭 교수에게 해임통지서를 날렸다.

신태섭 교수를 교수직에서 해임시킨 이유는, '총장의 허가 없이 KBS 이사를 하고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 점', '이사회 참석으로 인해 학교 수업에 지장을 끼친 점' 등이 대학의 관련 규정을 어겼다는 것. 한마디로 신태섭 교수가 KBS의 이사이기때문에 교수에서 해임시켰다는 거다.

신태섭 교수

신태섭 교수는 이 같은 징계 사유에 대해 이미 1년 6개월 전에 이뤄진 KBS 이사 임명을 갑작스레 문제 삼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박했고, 특히 동의대 측이 매년 신태섭 교수의 KBS 이사직 수행실적을 제출받아 사회봉사점수를 주는 등 신태섭 교수의 KBS 이사 활동을 인사고과에도 반영해왔으면서 KBS 이사를 한다고 해임시키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에 지장을 끼쳤다'는 학교측 주장에 대해서도 신태섭 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증거자료까지 제시하며 반박했고, 학생들도 신태섭 교수가 KBS 이사 활동 때문에 수업에 지장을 끼친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끝내 동의대는 신태섭 교수 해임을 밀어붙였고, 신태섭 교수는 '해임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장면 2.
2008년 7월 1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신태섭 KBS 이사를 해임하고, 부산대 강성철 교수를 그 후임 KBS 이사로 추천한다. 방통위는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사립학교법', 방송법' 등을 들며 신태섭 이사를 해임한 근거로 제시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동의대에서 징계를 받아 교수직에서 해임됐기때문에 KBS 이사의 자격을 상실했다'는 논리였다.

방통위는 신태섭 이사를 해임시키기 위해 '방통위 회의운영 규칙 9조'에 "위원장은 위원회 회의일시, 장소, 의제, 제의안건이 제1항의 단서에 의한 비공개 사항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정하여 회의 개최 1일 전까지 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한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당일 회의 직전에야 신태섭 이사 해임에 따른 보궐이사 추천건을 회의 안건으로 기습상정했다.

물론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단서조항이 있긴 하지만 신태섭 이사가 동의대로부터 해임당한 게 이미 한 달 전이니, 이를 '부득이한 사유'에 넣기엔 참으로 궁색맞았지만 방통위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신태섭 이사는 보궐이사인 강성철에게 이사 자격이 없다며 방통위를 상대로 '임명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장면 3.
2009년 1월 16일 부산 지방법원 민사7부는 신태섭 동의대학교 교수가 학교법인 동의학원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무효 확인 소송과 관련해 동의대가 신태섭 교수를 해임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학교측이 해임의 근거로 제시한 것들은 법원에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학생들까지 증인으로 나선 신태섭 교수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


장면 4.
2009년 6월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4부는 신태섭 KBS 이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임명처분무효확인소송'과 관련해 신태섭 이사의 해임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결내리고, 아울러 당연히 강성철 교수의 KBS 보궐 이사 임명 역시 잘못되었으므로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신태섭 이사에게는 KBS 이사 결격 사유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이사직 상실을 전제로 한 강 교수에 대한 임명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고, 방통위가 강성철 교수를 임명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신태섭 이사에게 사전 통보하지 않고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신태섭'이라는 동의대학교 교수이자 KBS 이사였던 인물을 두고 '동의대학교는 KBS 이사라는 이유로 자르고, 방통위는 교수에서 잘렸기 때문에 KBS 이사에서 쫓아낸' 전대미문의 기상천외한 일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동의대학교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가 진행중이어서 신태섭 교수는 동의대 교수직에 아직 복귀하지 못했고, 방통위 또한 항소할 것이 거의 확실해 신태섭 이사는 올해 9월까지가 임기인 KBS 이사직으로도 아직 복귀하지 못한 상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농락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동의대학교와 방송통신위원회가 한 사람의 인생을 잠시 농락하기 위해 저런 빌어먹을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신태섭 교수 해임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 약 1년 동안 벌어진 일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치졸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면상이 두꺼워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무법무도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또 다른 장면 하나.
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멘토 중의 멘토'라는 최시중을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한다. 언론보도(최시중 방통위원장, 정연주 사퇴 외압설 논란)에 따르면 최시중은 이후 당시 김금수 KBS 이사장을 몇 차례 만나 정연주 사장 해임건의안을 KBS 이사회가 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금수 이사장은 이를 거부했고, 뜬금없이 자기가 KBS 이사장 직에서 물러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당시 KBS 이사회의 구성은 정연주 KBS 사장의 사장직 수행을 지지하는 이사가 7명, 정연주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사가 4명이었다. 즉 '친정연주:반정연주'가 '7:4'인 구조였다. 하지만 김금수 이사장이 물러나고 유재천이 새로 이사장에 앉으면서 6:5가 되었다.

또 다른 장면 둘.
신태섭 교수에 따르면 동의대가 자신을 해임하기 전부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동의대 측에다 '신태섭 교수가 KBS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해라. 그러지 않으면 동의대를 감사하겠다'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동의대 측은 신태섭 교수에게 'KBS 이사직에서 물러나면 징계하지 않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했지만, 신태섭 교수는 KBS 이사직을 물러나지 않았고, 결국 해임됐다.

어쨌든 그렇게 신태섭 교수가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연이어 KBS 이사직을 박탈당하고 강성철이 보궐이사가 되면서, KBS 이사회 구도는 5:6으로 역전.

결국 신태섭 교수를 두고 벌어진 초법적이고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것으로 드러난 모든 일들은 KBS 이사회의 구도를 바꾸기 위해 벌어진 것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애초 최시중이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서 요구했던 일, '정연주 사장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최시중이 장악한 KBS 이사회는 2008년 8월 8일,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고, 이명박 대통령은 곧 바로 이를 받아들여 '정연주 사장 해임'을 결정한다.

방송법 그 어디에도 KBS 이사회가 사장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고,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없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그리고 8월 17일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 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서울 시내 모처에서 김은구와 회동을 갖고 KBS의 새 사장 인선 문제를 논의한다. 8월 21일 KBS 이사회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기습 이동식 이사회'를 열어 5명의 후보를 압축하는데 그 가운데 김은구는 가장 유력한 인물로 부상한다. 하지만 8월 22일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8월 17일의 회동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은구는 낙마하고 어부지리격으로 이병순이 KBS 사장 자리에 앉게 된다.

이후 KBS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결국 지난 1월과 며칠 전 두 차례의 신태섭 교수 관련 법원 판결은 그 이후 진행된 모든 일, 즉 정연주 사장 해임과 이병순 취임이 원인 무효임을 증명한다. 또 낙하산 사장 이병순이 취임한 뒤 정확히 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KBS의 퇴행 역시 일어나지 말았어야 될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정연주 사장이 계속 KBS 사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면, 그래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해줬다면 이명박 정부의 막가파식 독주를 조금이라도 더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신태섭 교수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의 결과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와 직결된 일이었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겪지 않아도 될 소모적이고 너무나도 악몽과 같은 일들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염치가 있다면 이병순은 지금 당장 KBS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염치가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다면 강성철은 KBS 이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하고, 염치가 쥐똥만큼이라도 있다면 최시중도 물러나고 사과해야 마땅하지만, 그들은 염치가 없기때문에 기대할 바는 못된다.

정연주를 몰아내고 이병순을 앉혔던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염치는커녕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또 다시 두꺼운 면상을 들이대며 치졸하고도 무법무도한 방법으로 MBC 엄기영 사장마저 몰아낼 기세다. 그 시작은 작년 KBS 이사회 장악처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장악이다.
MBC 방문진 이사진은 8월 초에 교체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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