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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교훈, '두려움보다 분노가 먼저다'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7. 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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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월 20일) 선덕여왕에서 나의 눈길을 잡는 장면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진지한 것이고, 하나는 가벼운 것이었다.

앞의 것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했는데, 마치 오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드라마 '선덕여왕'이 던져주고자 하는 교훈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사다함의 매화'를 바탕으로 월식을 예언하는 미실. 실제로 월식은 일어나고, 덕만과 천명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천명은 '진정 하늘의 뜻은 미실의 것이냐'라며 무력감에 사로잡히고, 덕만 또한 지략을 발휘해 기껏 미실에게 접근했더니, 이미 미실은 자신이 첩자였음을 간파하고 있었음을 알고 역시 혼돈과 무력감에 빠진다.

미실의 예언에 따라 가야유민들까지 서라벌 밖으로 쫓겨나게 되자 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또한 미실의 힘 앞에 두려움을 느끼며 정치적 협상을 모색한다.

그런 덕만과 천명에게 오로지 유신만이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분노하는 게 먼저"라며 죄없는 가야 유민들이 생계터전에서 막무가내로 쫓겨나는 현실에 대해 마땅히 분노해야 함을 소리높여 외친다.

유신은 분노하지 않고 두려움만 가지겠다면 천명을 더 이상 주인으로 모시지 않겠다고 하고, 덕만에게는 떠나라고 한다. 

그런 유신의 절절한 호소 덕에 천명과 덕만은 다시 용기를 추스르고 미실에 대적하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을 보며, 짧은 시간이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과연,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분노를 느끼기보다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우리는, 동 터는 새벽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철거민들을 때려잡으러 무지막지하게 몰려든 저 공권력 앞에, 분노하기보다 두려움을 가진 건 아닐까?

우리는, 끝내 그 공권력이 예순이 넘고, 칠순이 넘은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을 보고 분노하기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우리는, 경영진이 파탄낸 쌍용차에서 희생양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60일이 넘게 외치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 앞을 새카맣게 뒤덮은 경찰을 투입할 시기만 재고 있는 국가권력을 보며 힘없는 노동자의 처지에 분노하기보다 하늘을 뒤덮은 헬기와 땅을 뒤덮은 경찰병력에 두려움부터 가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법임에도 의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내세워 강행처리하려는 초거대여당의 막무가내 앞에 분노하기보다 '해봤자 안되겠지'라고 두려워하고 체념하여 적당히 타협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가 너무 무겁다. 물론 선덕여왕은 'MB의 독재에 맞서 분노하라'고 말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정치드라마도 아니고, 그렇게 무거운 드라마도 아니다. 이쯤에서 어제 본 눈에 띄는 장면 가운데 가벼운 것을 이야기해보자.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

덕만이 미실에게 접근한 것이 사실은 위장이었음을 알게 된 용화향도. 그런 덕만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고도(류담)에게 죽방(이문식)이 한 마디 한다.

"위장해봤냐? 안해봤음 말을 말어."

그러자, 고도가 말한다.

"맨날 말을 말래."

죽방은 "맨날? 내가 언제 그랬어?"라고 고도를 타박하고, 고도는 "형이 안 그랬어?"라며 헷갈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 장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개콘의 '달인'에서 김병만이 류담에게 자주하는 "~~해봤어? 안해봤음 말을 말어"라고 하는 대사의 패러디다.

선덕여왕은 어찌보면 앞의 예처럼 진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캐릭터에 착안한 유머까지 선보일 여유를 가진 드라마인 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덕여왕에 빠져드는 것일테다.

정리하자면, 누가 잡혀갔다더라, 누가 죽었다더라, 매일같이 들려오는 뒤숭숭한 소식들에 두려움을 가지기보다는 분노하는 게 먼저다. 하지만 마냥 분노하기보다 앞으로 남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분노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는 것. 선덕여왕을 보며 가지게 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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