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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눈에 비친 KT '올레' 광고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7. 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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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밥을 먹고 산책을 하러 동네 공원에 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데, 옆에 초등학교 4~5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제법 신나게 놀고 있는 그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한 아이가 공을 멋지게 차더니 "올레~"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같이 있던 아이 중 하나가 그 아이에게 "올레?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 재밌는 표정을 지으며 "올레 몰라?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데"라고 대꾸했고, 질문을 했던 아이는 다시 "그게 뭐냐니깐?"이라고 물었다.

어느새 한 자리에 모여든 아이들에게 "올레"를 외친 아이는 "올레는 좋은 일이 있을 때 외치는 건데, 남자가 호수에 도끼를 빠트려서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를 주면 '와우'라고 외치고, 여자가 나타나 허벅지를 보여주면 '올레'라고 외치는 거야"라고 가르쳐줬다.

설명을 하는 아이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운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ㅋㅋ'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이 하나가 "이런 것도 있어"라며 "아빠랑 엄마가 아이 혼자 버스 태워 여름캠프 보낼 때는 '와우'라고 조금만 좋아하는데, 엄마가 아이하고 같이 가면 혼자 남은 아빠가 '올레'하며 좋아해"라고 말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ㅋㅋ' 웃음을 터트리며 신나게 말하고, "아빠가 '올레'하고 외친다"고 말할 때는 그 아이의 두팔이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의 대화는 최근 TV에서 집중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KT의 '올레(olleh)'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올레 광고를 보면서 "뭐, 재밌긴 하네" 정도를 느꼈을 뿐 굳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대화를 들으며 '올레' 광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들이 '올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ㅋㅋ'거리며 웃음을 지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여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는 직접 '올레'에 대해 설명했던 아이를 불러, "뭐가 그리 재밌니~?"라고 물어보았다.

갑작스레 웬 아저씨가 그런 질문을 하자, 그 아이는 왠지 속으로는 "꺼져~"라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ㅋㅋ 그냥 재밌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세명의 아리따운 선녀가 나타나 다리 위에 걸쳐진 옷을 치우며 맨살의 허벅지를 보여주자 "올레"를 외치는 어른 나무꾼의 모습, 그리고 아이와 아내를 함께 멀리 보내고 혼자 남게 되자 두팔을 치켜 들어 "올레"를 외치며 좋아하는 어른 남자의 모습은, 성인 남자인 내가 보기에는 분명 아무렇지도 않은 내용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숱하게 만나 온 유부남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그 정도 모습은 얼마든지 있어왔다.

하지만 아이들에 눈에 비친 그 모습은 어떤 의미일까? 그 광고를 보고 재밌어 하는 아이들은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걸까?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이미 알 만큼은 안다라고 여겨야 되는 걸까?

'나뭇꾼과 선녀'편은 그렇다치자. '여름캠프'편은? 가족과 함께 하기보다, 엄마와 함께 하기보다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두팔을 치켜들고 "올레"를 외치며 미친 듯 춤까지 추는 아빠의 모습은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아이들도 덩달아 재밌어 하는 걸까?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니, '미디어의 영향력'이니 복잡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랜다. 다만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난 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봤던 KT의 '올레' 광고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볼 광고는 아님을 인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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