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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상징적 코드된 듯 부담스럽지만 피하진 않겠다" -한학수pd 인터뷰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7. 6.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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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상징적 코드된 듯 부담스럽지만 피하진 않겠다"

- 한학수 PD 인터뷰


  “다윗이라고까지 부르는 건 부담스럽네요. 이른바 골리앗이라고 했던 상대는 인정할 수 있어요. 상대는 분명히 한 사회 최고의 상징적 권력, 과학 분야에 있어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 골리앗이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나는 수많은 다윗들, 한국의 양심적인 젊은 과학자들, 실험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촉매의 역할을 한 거 뿐이에요. 어떻게 보면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지 다윗이라고 감히 말하기엔 좀 그러네요.”
  
  본지가 ‘2006년 올해의 다윗’으로 선정해 인터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한한수 PD는 이렇게 대답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 당시 < PD수첩>에서 관련 방송을 준비할 때 ‘민중의소리’의 영상을 얻어 쓰며 나름대로 본지와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한 PD. 그를 만났다.
  
  지금은 < PD수첩>을 떠나 < W>에 계신데요. < W>에서는 주로 어떤 부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MBC 한학수 PD ⓒ민중의소리 정택용기자

 < W>는 출발할 때부터 우리 시각으로 해외뉴스를 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외신은 로이터, CNN 등 서방언론에서 받아왔기 때문에 그쪽의 시각에 의해서 전달받았습니다. 그게 아니면 신문기사에서 ‘외국의 어떤 여자가 옷을 얼마나 벗었네’ 따위의 대단히 선정적인 스틸사진들만 보는데 그쳤죠. < W>는 우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가 세상을 보자는 거였고, 저는 국민들의 촉수가 되고 더듬이가 되어서 먼저 외국으로 나가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넓혀보자는 게 바람이고 취지입니다.
  
  이전 다른 인터뷰에서 황우석 신화는 “과학계와 언론계, 정계 삼각동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여기에 줄기세포 연구를 이른바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BT산업과 연결시키면서 이 모두가 뭉뚱그려져서 ‘국익’이라는 것으로 포장되었는데요. 실제 취재에서 방송에 이르기까지 직접 맞닥뜨린 그 거대한 벽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말 그대로 실감했습니다. 이 벽이 그냥 종이 한 장, 스티로폼, 나무로 만들어진 벽이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는 완강한 강철벽같은 느낌이었어요. 처음엔 두려웠습니다. 제보를 받을 때부터, 사건이 마무리되는 전 과정에 걸쳐 사실은 내면적인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리고 삼각동맹이라는 것은 그 일각만 가지고 있어도, 그 일각의 수장만 되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참 넘기 힘든 큰 성이 아닙니까? 그 큰 성들이 묶여 있었고, 황우석 교수는 그 세 개의 성이 모두 인정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버거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MBC 한학수 PD ⓒ민중의소리 정택용기자

  그 버거웠던 벽을 일개 PD가 부딪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진실’의 힘이 아니었나 싶네요. 흔히들 언론인이라면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에 따라 같은 사안을 두고도 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진실을 해석하는 방향이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한 PD께서 실감한 진실을 뭘까요?
  
  예를 들면, KBS의 문형렬 PD도 진실을 말하고, 나도 진실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패러다임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것 같습니다. 문 PD의 경우에는 ‘국익을 지켜야 한다’며 특허를 빼앗길 큰 위험을 막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내세워야 할 게 무엇인가에 고민의 지점이 가 있는 것 같고.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진정한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라를 건강하게 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같은 국익과 진실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 패러다임과 순서가 다른 거죠. 사실 저도 이 취재를 하기 전에 ‘정직’이라는 말은 써도 ‘진실’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습니다. < PD수첩>의 모토도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였기 때문에 정직이라는 말은 깊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실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교과서적인 느낌이 났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마치 초등학생이 이야기하는 어떤 낮은 수준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말 그대로 이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생각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는 도중에 그리고 마치면서 나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이게 금방 쓰러지고 묻힐 것 같았지만, 그래도 원초적인 가치인 진실, 정직 이런 것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습니다.
  
  한 PD를 다윗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다윗으로 ‘제보자’를 들 수 있을 겁니다. 한 PD도 ‘대한민국은 제보자 K에게 빚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MBC 한학수 PD ⓒ민중의소리 정택용기자

 제보자 문제는 지난 1년간 사건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최승호 팀장과 나의 어깨를 계속 짓누르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과학계나 의료계가 제보자를 정상적으로 복귀시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벽이 높았습니다. 과학계나 의료계에 ‘이 사람을 제보자라는 안경을 쓰지 말고, 정상적으로 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할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이 나가고 한 달이 지나면서 많이 호전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격려전화를 주고, 브릭(BRIC)에서 모금운동하는 것도 많은 분들이 책을 보고 내막을 알면 알수록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에 대해 느낀 게 아닌가 싶거든요.
  
  내 생각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의 의료계, 과학계가 제보자 K와 B를 함께 껴안고 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물론 이 분들이 개인적으로 구제되는 게 문제의 끝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개인이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것이 한 사회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제도적으로 하나씩 정비해나가는 과제의 첫 번째 단추를 푸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신화를 깨트린 제보자는 고통 받고 있는데 황우석 전 교수는 슬슬 복귀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또 최근 ‘황우석 사태 1주년’을 맞으면서 언론보도를 보면 그 소동을 겪고도 이른바 황우석 사단의 연구성과에 집착하는 기사나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다수 언론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런 게 있죠. KBS가 1년이 지나서 이병천 교수를 인터뷰했는데, 뭐 인터뷰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성과가 논문으로 입증되고 발표되기 전인데 언론에서 먼저 공개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과학자도 못믿는 세상에 과학자의 변호사를 인터뷰해서, 그 과학자의 변호사가 말하기를 ‘올 연말에는 외국의 과학자 5명이 와서 크게 뭘 할 것이다’ 이런 걸 어떻게 보도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 성찰이 없고 반성이 없는 언론의 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암캐가 복제 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물론 암캐가 복제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물복제에 있어 ‘한국이 수준급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이게 바로 장애인들과 난치병 환자들을 당장 치료할 수 있는 그런 건 아니거든요. 마치 복제기술이 줄기세포 기술과 똑같은 것으로 등치시키면 안 되는 겁니다.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과거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언론은 그대로 있고 그 기자도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한 PD는 황우석 사태에 책임있는 언론의 상징적인 존재로 조선일보를 들면서, “조선일보는 아직 사과하지 않고 있고,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이 끼치는 해악이 무엇일까요?
  
  조선일보가 반성을 하지 않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파워를 가진 집단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것이지만 사실 조선일보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언론 전체의 문제로 본다면 언론계에서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가, 사과하고 반성하는 멘트를 하나 던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선정적으로 보도했던가, 왜 우리는 기본적인 팩트 확인조차 하지 않고 속보경쟁에 뛰어들었던가, 이 시스템은 도대체 뭔가 라는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각 언론사에서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언론사 전체가 한 차원 더 고민해야 될 부분이 있는 거죠. 나 스스로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픕니다. 특히 이런 부분이 주류 언론일수록 강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 합니다.
  
  언론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압력도 대단했죠. 청와대, 국정원, 여야를 막론한 유력 정치인 모두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 정작 책임지는 모습이 없습니다.
  
  아마 일단 황 교수라는 스타를 통해서 과학계의 문제인 이공계의 위기라는 것을 덮고자 하는 정치가적 욕망이 정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나도 스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느 분야든 스타가 선도해가는 부분이 있고, 스타가 기폭제가 되어서 저변이 확대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공계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가 몇 년 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이공계 과학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일한 만큼 대접받고 사회에서 인정받게 하자는 제도적인 문제가 가장 큰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않고 정권 초기부터 ‘황우석 띄우기’에 올인한 것이라면, 이것은 황우석 교수를 통해 이공계를 키웠다고 보기 보다는 황우석 교수를 통해서 이공계의 문제를 감춰 버린 겁니다. 본말이 전도된 거죠.
  
  
△MBC 한학수 PD ⓒ민중의소리 정택용기자

  최승호 PD는 “적절한 시기에 < PD수첩> 방송을 통해 당시의 권력지도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본다, 언제가 PD수첩이 방문한다”고 말했고, 한 PD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언제쯤이 될까요?
  
  책에 많은 단서가 있습니다. 앞으로 밝혀야 될 일들에 대한 단서들이 책 사이사이에 있는데, 그것이 당장 밝혀지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면 내가 책에 ‘최후통첩’이라고 표현했던 전직 모장관의 경우에도 그 분을 대표적으로 이번 사건의 상징적인 사람으로 표현했던 것이지. 그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 실명을 거기서 밝힌다고 해서 지금 이것을 규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
  
  또 YTN이 그렇게까지 움직였을 때 그것이 김진두 기자 개인의 판단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이 YTN 일개 회사의 판단이나 정책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보다 더 큰 그림이 있거든요.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YTN, 황 교수 사단 그 외에 정치가 그룹들의 큰 지도가 어느 순간 뼈대를 드러낼 때가 와야 됩니다. 그런 날이 되면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단서 삼아서 이 큰 지도를 보여줘야 될 때가 올 겁니다. 그것은 불가피합니다. 어느 한 순간 역사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갈 수는 없는 거죠. 세월이 지나면 결국 역사의 뼈대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진실이라면 진실이고.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PD께서는 그 동안 PD로서 줄곧 묻혀 있는 의제를 발굴해내고, 약자의 편에 서고, 부당한 권력과 성역에 도전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고요. 김환균 PD연합회장이 ‘PD는 꿈꾸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막연하지만 한 PD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특별히 대단한 꿈은 없습니다. 좀 이견이 있고, 서로 이념이 차이가 나고, 또는 구체적인 정책에서 차이가 나고, 세계관이 다를지라도 서로가 ‘너는 그렇구나, 너의 의견도 나름대로 한 스타일한다’, ‘다르다, 우리가 다르지만 너의 다름도 우리 한 사회에서는 필요하다. 내 의견만큼 너도 가치가 있다’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로 한국 사회가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과도기에 지금 한국 사회가 와 있는 것 같아요.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줄 수 있고, 서로가 보완적인 관계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우리가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곳으로 가기 위해 이렇게 진통을 겪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MBC 한학수 PD ⓒ민중의소리 정택용기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세계, 그런 걸 꿈꾸는 것이고 그런 꿈속에서 우리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쩔 때는 소수자의 문제가 있고, 또 때론 인권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때론 좌우의 차이에 대해 깡그리 무시하는 극우파나 극좌파에 대해서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내가 발언할 때도 있고, 내 프로그램이 그런 것 같습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또 변해가니깐 우리 사회가 그런 단계로 진입할 때까지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 따뜻한 시선 그런 것이 내가 해야 될 역할이라고 봅니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조선일보로부터는 좌파라고 색깔공세까지 당했는데, 대학 때 꿈꾸던 것과 지금 PD를 하면서 꿈꾸는 것 혹은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다릅니까?
  
  조선일보에서 내가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활동했던 경력을 가지고 김대중 씨나 모 기자가 ‘좌파가 어떻게 이걸 검증하냐’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참 비열했다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대학 때는 87년 군부독재 시절이니만큼 사회변화에 대한 열정이 강했습니다. 20대에 갖는 그런 열정이 있고, 지금은 나도 40에 가까운 나이인데, 조금 더 보수적인 가치라고나 할까,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너도 나와 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20대에는 보수적인 생각에 대해 ‘도저히 같은 하늘에 살 수 없을 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당신의 보수적인 가치도 어떻게 보면 한 사회를 유지해오고 우리 사회가 이만큼 오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습니다’며 그 가치도 인정해줄 수 있게 된거죠. 내가 느슨해 진건지, 포용력이 있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여전히 예리함을 갖고 싶어요.
  
  한 PD께서 “87년 6월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에 도전하면서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도도히 흘러왔다”며 “다만, 황우석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떤 민주화와 선진화를 이루었는지에 대해 대단히 적나라하게 이 사회의 수준을 드러냈다고 보여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올해 줄곧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이자, 내년에도 여전히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 한미FTA 협상도 그런 것 같습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 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시상화석’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한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화석이다’는 거죠. 그건 어떤 의미냐면, 정치적 타협으로 사회의 제반갈등이 봉합되었던 87년 체제의 한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황우석이라고 보는 겁니다. 87년 체제가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이후 다이내믹한 흐름이 쭉 흘러왔는데, 그 다이내믹함의 방향성, 어디로 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은 미완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과도기라는 겁니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내용의 질은 뭐냐는 걸 물어야 합니다.
  
  여전히 민주주의 이후에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민주주의가 대단히 점진적이고 느린 속도로만 진행되고 있다라는 한계, 그것을 황우석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FTA를 바라봐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즉 FTA 문제는 경제적인 것을 협상하기 위한 기술의 문제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한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가에 대해서 미국식 모델인지, 프랑스와 북구유럽식 모델인지 따지기 전에, ‘이건 FTA야’라고 선택하는 순간 ‘미국밖에 없어’라고 답을 내리고 가는 겁니다. 이것은 절차나 협상의 기술, 몇 개의 산업이 유리하냐, 아니냐를 뛰어넘는 거대한 문제이고 사회 전체의 모델 문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그것을 합의했습니까? 우리 사회가 그것에 대해서 언제 한 번 진지하게 까놓고 공론의 장에서 논의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늦춰야 됩니다. 늦추고 토론을 해야죠. 그 문제의 큰 본질적인 게 뭔지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필요가 있습니다.
  
  
△MBC 한학수 PD ⓒ민중의소리 정택용기자

  내년이면 10년차를 넘어 11년차 PD가 됩니다. 2007년을 맞는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인터뷰 마무리하죠.
  
  내가 요즘 술 먹고 전봇대에 오줌을 못 쌉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전에 많이 쌌다는 게 아니라 물론 기억엔 없지만 쌌을 수도 있을텐데 하하하, 난 이미 공인이 됐다는 겁니다. 황우석 사건을 거치면서 진실과 양심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지했고, 이 사건이 제대로 풀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아직도 공개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진실과 정직, 그런 가치의 상징적인 코드로 내가 있는 건데 이건 대단히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피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보고, 즐겁게 받아드리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될 겁니다. 내가 저널리스트이면서 대중예술가이기도 한데 그 무게에 너무 억눌려서 자유분방함을 잃는다면 안되거든요. 그냥 큰 부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앞으로 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년 한 해도 좋은 뜻으로 프로그램 만들었는데 재밌게도 봐줄 수 있다면, 그게 내년의 바람입니다. 물론 우리 가족 건강한 것 하고요. 하하하.

(이 글은 2006년 12월 27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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