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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사사오입 개헌 조선일보를 보니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7. 3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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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방송법 등 미디어법을 직권상정을 통해 강행처리하려 한 한나라당의 행태를 두고 '제2의 사사오입'이라는 지적이 많다. 부정투표와 기상천외한 재투표의 과정을 통해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우기는 모양이 19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여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기도했던 개헌안이 '사사오입'이라는 역시나 기상천외한 논리로 애초 부결되었던 것이 다시 가결된 것으로 바뀌게 된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미디어법과 관련해 부정투표와 재투표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비판도 하지 않고 "미디어법 통과는 어떤 분야든 '개방'과 '경쟁'이 상식인 글로벌 시대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구시대적 진입 장벽 하나가 일부라도 무너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7월 22일 사설)며 환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과연 55년 전 사사오입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당시 조선일보의 사설과 칼럼을 통해 한 번 살펴보자.

먼저 사전 설명을 간단히 하자면, 자유당이 제출한 개헌안은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을 거치는데, 당시 재적의원은 203명이었고, 개헌안 통과는 '재적의원의 2/3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되므로 203명의 2/3인 136명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지만 표결 결과 찬성이 135표가 나와 최순주 국회부의장(자유당)이 부결선포하였다. 그런데, 이후 자유당에서는 사사오입(반올림)을 내세워 203명의 2/3는 135명이라며 29일 다시 가결된 것으로 번복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알겠지만, 203의 2/3는 135.33333....(부진수)이다. 그리고 1/3는 67.44444444...(부진수)이다. 당연히 2/3 이상이라고 하면 135.3333.... 보다 큰 136표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자유당은 반올림하여 0.33333을 잘라내고 135를 2/3라고 우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사와 헌정사에 길이 남을 '사사오입 개헌'이다.

1954년 11월 28일자 조선일보 사설

개헌안 반대했다는 조선일보,
정작 표결 앞두고는 '새삼 반대하지 않겠다'


국회 본회의 표결일인 11월 27일을 앞두고 조선일보는 11월 28일자(신문이 빨리 나오는 관계로 28일자에 27일 표결에 대한 내용이 실린 것 같다) 사설 <개헌안표결을 앞두고>에서 "개헌안은 마침내 27일 하오에 표결케 될 것이 거의 확정적인 사실로 전하고 있다"며 "이 개헌안의 결과로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어떻게 보장될 것이며 국가의 민주적 발전에 어떻게 영향될 것에 대한 책임은 국회의원 자신이나 그 당댕에만 관한 것이 아니라고 실로 뒷날의 우리 자손에 미칠바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후에 책임있는 표를 던져 달라는 것"을 요구한다.

"갈 길이거든 떳떳이 신념을 가지고 가라"라며 여야 국회의원의 책임있는 투표권 행사를 주문하는 이 사설은, 그 외에 개헌안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개헌안 표결처리 강행에 대한 어떤 입장도 드러내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비겁한 지식인'의 표본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개헌안 표결을 앞두고 2~3표 차이로 가부가 판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조선일보는 "적어도 국가 정치조직과 운용의 중대한 변혁을 목적하는 개헌안의 가결이냐 부결이냐의 운수가 어째서 두세명의 태도 여하로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냐?""이러한 중대한 개헌안은 국민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만큼 국회도 절대다수가 찬동했다든가 반대했다든가 하는 믿음직한 표결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헌안의 통과 여부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가결이든, 부결이든 2~3표로 결정이 된다는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헌이라는 사실은 여당과 야당의 수효가 반반되는 경우라고 해도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3분의 2의 찬성투표가 빼젓이 나와야 할 것이 이상적인 것"이라며 "그런데 여당의 수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제안 당시에 같은 수의 서명날인자가 있었다면서 표절에 당하여 그 수효가 확실치 못하다는 것은 국회의 수치요, 국민의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그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들을 쏟아냈다. 무슨 의미였을까?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우리는 이번 개헌안에 대하여 최초부터 반대해온 자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설 어디에도 표결을 앞둔 개헌안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은 없다. "그렇다고 개헌안을 표결에 붙이리라는 이날에 새삼스럽게 반대 주장을 한 번 더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국민에 대하여 계몽한다든가 여론에 호소한다든가 할 시기도 지났다고 할 것이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즉, 애초 개헌안에 반대했으나 어차피 표결에 붙여질 요량이니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압도적으로 2/3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도록 하라는 것으로 그 행간에 실린 의미를 해석하면 될까?

'A는 B이다'라고 깔끔하게 지적하기 어렵다. 이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글을 썼나보다.

55년의 세월이 무색한 조선일보의 양비론

그럼 27일 부결 선포에 이어 다시 29일 가결로 바뀐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1954년 12월 4일자 조선일보 사설

12월 4일 조선일보 사설 <표결 후에 국회가 가는 길>은 사사오입 파동 뒤 국회 여야 대치 상황을 주절주절 나열한 뒤 "야당은 야당의 갈길이 없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싸우려고 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여당은 여당대로 힘을 가지고 힘 있는대로 해보려고 하는 판이니 그동안의 이 나라 일은 어떻게 될 것이냐?""한심한 느낌을 금치 못한다"고 한탄했다.

정확하게 양비론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논술을 통해 '양비론'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정말 읽혀주고 싶다. '이런 게 바로 양비론이다'라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하는 개헌안의 부당성, 그리고 사사오입 개헌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지적도 없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조선일보의 모습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지금도 여당이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좌우하려 할 때, 이를 야당이 저지하려 하면 조선일보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논리가 바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지금이 싸울 때냐'라는 식의 주장이다. 노동자들이 마지막까지 내몰려 파업을 하거나 거리로 나설 때 역시 조선일보가 단골로 써먹는 논리가 바로 '지금이 파업할 때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이 가뭄에 웬 파업"이 되겠다.

2009년 7월 23일자 조선일보 사설

아닌게 아니라 이번 미디어법 강행처리 과정에 조선일보의 지면에는 50년의 세월이 무색한 주장이 등장했다. 7월 24일 조선일보 사설 <이렇게 가면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것>에서는 "18대 국회 들어 여야 협상은 쟁점을 타결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여당의 단독 처리와 야당의 물지적 저지를 위한 사전 포석처럼 여겨지면서 늘 겉돌았다""여당은 소수 야당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야당은 극한 투쟁이란 구시대적 발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고 예의 '양비론'을 펼치고 있다.

하나 더 보자.

칼럼의 대부분 차지한 203의 2/3에 대한 설명, 그 의미는?

1954년 12월 6일, 당시 조선일보의 칼럼이라고 할 수 있는 '시언'란에 <'3분지2'의 부등식>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칼럼은 11월 29일 "전날의 부결선포를 '취소'한다고 선언하고 '가결'을 선포하여 이것을 사실로서 확정시켰다는 것도 사실이다"라"이러한 경과에 의하여 정부는 개헌안을 공포하고 즉일로 실시에 들어가게 한 것도 이미 지난 사실로 된 것도 누구나 인정하는 바에 틀림없다"고 했다. '사사오입'이든 뭐든 일단 '가결'로 선포한 것이 사실이고, 정부가 이에 따라 후속조치에 들어간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1954년 12월 6일자 조선일보 칼럼

다만 이 칼럼은 '사사오입'과 관련해 "203의 2/3 이상이란 '수'는 어느 '수'를 말하는 것이냐?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부등식의 계산문제는 구구보다도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하여 많이 논의되고 있다" "이점은 국회의사당에서 말썽되고 있는 정치의 사실이 아니고 단순히 한개의 수학의 문제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203의 2/3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학식 문답을 칼럼의 반 이상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한자와 수학식, 그리고 옛표현에다 선명하지 못한 인쇄 상태 등으로 자세히 보는 게 여간 눈 아픈 게 아니지만, 읽어보면 이런 수학식을 칼럼에서 이렇게까지 설명하나 싶은 생각에 재미도 없진 않다. 여튼 마지막 핵심 사안에 대한 문답은 아래와 같다.

(문) 그러면 203의 2/3 이상과 1/3 이하의 '고른수' 가운데서 가장 적은 것은 얼마이며 가장 큰 것은 얼마이냐
(답) (1) 203의 2/3 '이상'의 '고른수' 가운데서 가장 적은 것은 136이다. (2) 203의 1/3 '이하'의 '고른수'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67이다. 그런고로 '고른수'의 계산에 있어서 68은 203의 1/3 이하의 '수' 가운데서 가장 큰 수인 67보다 1이 더 한 '수'이고 135는 203의 2/3 이상의 '수' 가운데서 가장 적은 것보다도 1이 덜한 '수'인 것이다.


기껏 정치와 분리하여 수학적 원리를 설명한다면서도 무슨 의미인지 명쾌하게 읽히지 않는다.
203의 2/3 이상은 136 이상이니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이 잘못됐다는 걸까? 아니면 60명 반대에 7명이 기권한 67표가 1/3 이하에 해당되니 부결된 게 아니라는 걸까?

"이와 같은 수학상의 설명은 힘과 힘의 대결로 진행되는 정치상의 움직임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설명되고 있다"며 이어서 쏟아내는 '의문'과 '주장'은 더욱 헷갈린다. "수학의 이론보다도 정치는 '이미 진행중인 사실' 그것으로서 설명을 대신하고 있으며 그리고 '정치의 사실'은 시간과 같이 쉬지않고 진행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치의 사실이 진행하는 동안에 수학의 문제만은 틀리지 않고 남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 것인가?"라고 "의문이 아닐 수 없다"는 조선일보의 이 칼럼을 55년이 지난 지금 읽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불가다.

어쨌든 그럼에도 정리해보자면, 조선일보가 권력의 독재를 대하는 태도가 5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본질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55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을 환영하지는 않고 양비론이나마 펼쳤다는 것이 달랐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비록 그 개헌안을 "최초부터 반대해온 자"였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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