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구본홍 사퇴는 YTN 노조의 승리

작년 7월 YTN에 낙하산으로 투하됐던 구본홍이 오늘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구본홍은 "사장 취임 1년이 지났고 그동안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된 것으로 보고 이제는 대표이사직을 물러날 때가 됐다고 판단해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며 "본인의 사퇴를 계기로 그동안 YTN이 겪었던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회사가 발전적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본홍의 갑작스런 사퇴 결정을 두고 이런 저런 뒷말이 무성하다.
'도대체' '왜' '지금' 구본홍이 사퇴하게 되었냐는 거다.

몇가지 시나리오와 예측이 제시되고 있다.

구본홍과 YTN노조. 이미지출처-오마이뉴스

먼저, 구본홍의 사퇴가 청와대의 문책이라는 주장이 있다. YTN 접수하라고 낙하산 보내놨더니 이병순의 KBS와는 달리 코드방송도 하지 않고, 낙하산 보낸 의미가 없다는 거다.

지난주 구본홍이 YTN 임직원 40여명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까지 한 게 이른바 '친정체제' 구축을 위한 건데, 돌연 사퇴를 한 걸 보니 아무래도 주말 동안 청와대 등으로부터 사퇴를 결심해야 할 모종의 압력을 받았다는 그런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관련글 : 구본홍, 승진인사 내고 사퇴한 이유는? )

다음으로 제기되는 의혹 중에 하나는 엄기영 MBC 사장에 대한 '경고' 내지는 '엄포'용이라는 거다. 방문진 이사진이 전원 교체되면서 MBC 엄기영 사장의 운명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이미 방문진 이사의 다수를 차지한 뉴라이트계 인사들은 엄기영 사장을 손보겠다는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명박 정권이 구본홍을 사퇴시키면서, '엄기영 봐라, 우리는 우리편도 이렇게 날리는데, 니가 계속 버틸 수 있겠냐, 빨리 너도 자진해서 사퇴해라'.. 뭐 이런 신호라는 거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덤으로 임기 종료를 얼마 안 남긴 KBS의 이병순에게도 '봤나? 똑바로 안하면 이렇게 된다' 이런 견제구를 날린 셈도 된다.

(관련글 : MBC 민영화와 관련된 행보? 'YTN 장악 실패' 청와대의 문책?)
이런 시나리오와 분석들이 오마이뉴스나 미디어오늘 등에서 제시되고 있는 중인데, 일견 설득력 있는 주장임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오늘 '구본홍 자진사퇴'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누가 뭐라해도, 구본홍을 이명박이 쫓아냈든, 이동관이 쫓아냈든, 한나라당이 쫓아냈든, 청와대가 쫓아냈든, 그게 아니라 구본홍 스스로가 정말 "지쳤다"며 혼자 결심한 것이든, 오늘 당장 사퇴 표명을 하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누구이던지간에,

구본홍은 YTN 노동조합이 쫓아낸 것이다.

구본홍이 YTN 낙하산 사장으로 내정된 직후부터 1년 넘게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해직되고, 정직되고, 감옥까지 갔다 오면서, 파업을 하면서 싸운 YTN 구성원들이 구본홍을 마침내 쫓아낸 것이다.

즉, YTN 노동조합의 승리다. 끝내 질긴 놈이 이긴거다.

YTN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서 청와대가 쫓아낸 거다? 그것도 YTN 기자들, 노조 구성원들의 승리다.

지난 7월 16일 법정에 출석한 구본홍은 "노종면 위원장의 처벌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낙하산 구본홍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자기가 먼저 물러났다.
구본홍이 남긴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본인의 사퇴를 계기로 그동안 YTN이 겪었던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회사가 발전적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자신이 사퇴해야 갈등 해결의 단초가 마련된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이를 실천에까지 옮긴 것이다.

구본홍에 이어 또 어떤 인간을 YTN 사장으로 밀어넣으려 할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YTN 노동자들에게 또 어떤 싸움과 시련이 닥칠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오늘은 YTN 노동조합의 승리를 축하하자.

노종면 위원장을 비롯한 YTN 노조 여러분, 승리를 축하합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더 수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끝까지 질기게 싸우시길 바랍니다. 만에 하나 구본홍 같은 인간 또 오더라도 또 쫓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이미지출처-http://www.ytnman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