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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리 사건'으로 닷컴언론사들 재미 좀 봤나?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7. 6.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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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리 사건'으로 닷컴언론사들 재미 좀 봤나?

네이버 '아웃링크' 도입 뒤, 포털 답습하는 닷컴언론들

  12월 23일 코엑스 대서양홀에서 열린 ‘빅4콘서트’ 공연 도중 여성댄스그룹 ‘씨야’의 멤버 남규리 씨가 격렬한 춤을 추다 오른쪽 가슴이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직후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터넷 공간에는 남규리 씨의 가슴이 드러난 사진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고, 사건 현장을 담은 동영상도 여기저기 흘러 다녔다. ‘남규리’라는 이름은 대번에 검색 순위 1위에 랭크되었고, 이 사건은 이날 최고의 화제 뉴스가 되었다.
  
  인터넷 연예뉴스의 문제 그대로 드러낸 '남규리 사건'
  
  만약 이 사건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TV 프로그램에서 벌어졌다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겠지만, 그저 가수들의 콘서트 행사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프닝쯤으로 지나가도 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블로그와 각종 클럽과 카페에 도배질되고 남규리 씨 소속사가 법적대응을 준비하는 등 일파만파로 번져 가게 된 것은 바로 포털과 언론사들의 속보경쟁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은 남규리 씨의 가슴이 노출된 약 1분 동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한 건’ 올리게 된 사진들은 바로 소속 언론사로 보내졌고, 각 언론사는 앞 다퉈 각 포털로 사진과 기사를 경쟁적으로 송고했다. 심지어 모 스포츠연예사진 전문매체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아 남규리 씨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을 게재했고 이 사진 또한 삽시간에 유포되었다.
  
  이번 사건은 포털을 중심으로 한 우리 언론들의 연예뉴스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의 문제를 또 한 번 입증했다. 연예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빌미로 온갖 ‘쓰레기’ 정보를 유통시키고 확대재생산해왔던 우리 언론들의 관행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뉴스가치는 따져 보지도 않고 자극적일수록, 선정적일수록, 개인의 은밀함에 더욱 다가갈수록 막무가내식으로 기사화하는 이러한 연예뉴스의 관행은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문제로 지적되었지만, 오히려 ‘연예뉴스전문매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하면서 날이 갈수록 문제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건의 연예뉴스가 쏟아지고, 이 가운데 자극성의 강도가 높은 뉴스를 각 포털들은 눈에 잘 띠는 곳에 배치한다.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뉴스보다 이들 연예뉴스가 ‘주요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확산 과정 역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연예뉴스전문매체들과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검색어 1위’에 당당히 랭크시킨 포털들이다. 아무런 새로운 정보가 없음에도 몇 분 간격으로 ‘남규리 노출사건’은 2보, 3보, 4보가 이어졌고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새 기사’는 검색 결과의 윗 자리를 계속 차지하게 되었다.
  
  '남규리 사건' 확대재생산, 닷컴언론사들의 활약도 한 몫
  
  여기에다 이번 사건의 경우 이전의 연예뉴스 생산-유통-소비 패턴과 큰 차이를 가지는 중요한 요소를 하나 더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연예뉴스전문매체 못지않게 큰 역할을 담당한 ‘닷컴언론사’들이다. 즉 기존 제도권 오프라인 신문의 온라인 자회사 매체들이 ‘남규리 사건’의 확대재생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네티즌들과 언론 관계자들로부터 대표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조선닷컴(www.chosun.com)’을 통해 한 번 살펴보자.
  
  다음의 사진은 어떤 네티즌이 ‘남규리 사건’이 발생한 몇 시간 뒤인 12월 23일 밤 10시 53분 당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검색순위 1위였던 ‘남규리’를 클릭한 뒤 얻어낸 결과를 캡쳐한 사진이다.
  
  

△'남규리 사건' 발생한 당일 밤 한 네티즌이 네이버 기사검색을 통해 캡쳐한 화면. ⓒ민중의소리

  보다시피 조선일보에서 송고한 기사가 연속적으로 4건이 걸려 있다. 각 기사의 송고 시간을 보면 모두 1~2분 차이로 보내진 것들이다. 당연히 내용은 아무런 차별성이 없다.
  
  맨 처음 송고된 기사에서 이미 조선일보는 모자이크 처리된 가슴노출 사진과 함께 “댄스 가수의 공연 도중, 여자 가수의 한쪽 가슴이 노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당황한 남규리가 계속 상의를 끌어 올렸지만, 옷에서 끈이 빠지면서 오히려 옷이 흘러내렸다…흑인 여가수 재닛 잭슨도 고의로 한쪽 가슴을 드러내는 해프닝을 벌여 빈축을 샀었다”며 전할 만한 내용은 다 다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굳이 2보와 3보에서 새로운 사진을 보여주며 맨 처음 기사에서 다룬 내용을 반복해서 전했다. 3보에 이어 1분 뒤 보낸 기사에서는 ‘남규리가 사과한다고 말했다’는 한 줄 정도의 내용만 앞 선 기사와 다를 뿐이었다.
  
  검색시간 기준으로 보면 조선닷컴의 기사들은 대략 10시 4분부터 10시 10분 사이에 집중적으로 보내졌다. 만약 조선닷컴에도 이 기사들이 이 시간 무렵 게재되고 게재되는 즉시 포털로 송고되는 시스템이라면 그나마 억지로라도 납득을 하겠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이들 기사가 조선닷컴에 게재되기 시작한 것은 사건 발생 직후인 저녁 7시 27분부터였다. 이후 조선닷컴에서는 9시 5분 정도까지 2보, 3보, 4보, 5보가 계속 이어졌다. 역시 네이버에 송고된 기사대로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별성이 없고 그저 사진만 다를 뿐이다.
  
  
△'남규리 노출사진' 기사가 연이어 게재된 조선닷컴 ⓒ조선닷컴

  정리하자면, 조선닷컴은 7시부터 9시 사이에 자사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들을 얼마든지 정리해서 10시쯤 한 건의 뉴스로 네이버에 송고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저 기사를 송고하는 사람이 기계적으로 자사의 기사를 네이버를 보내다보니 일어난 일일까?
  
  아웃링크 이끌어 낸 닷컴언론사들, 포털 닮아갈 듯
  
  인터넷매체와 포털에 대해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조선닷컴의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행위에 ‘이유가 있다’고 해석한다. 그 이유란 바로 네이버가 12월부터 기사를 검색해서 나온 결과를 이른바 ‘아웃링크’ 방식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한 데서 찾고 있다.
  
  네이버가 그 이전에는 네이버 뉴스 섹션에 편집된 기사는 물론 기사검색을 통해 시간 순서대로 찾아진 기사를 클릭할 경우 ‘news.naver.com’ 내에서 보여줬지만, 아웃링크를 실시한 이후에는 해당 기사를 클릭할 경우 기사를 송고한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되게끔 바뀐 것이다.
  
  ‘남규리’ 기사 검색 결과를 캡쳐한 사진에서 보듯 <여성그룹 ‘씨야’ 남규리 콘서트 도중 가슴노출>이라는 기사 제목을 그냥 클릭할 경우 새로운 창에서 조선닷컴의 해당 기사가 열리게 된다. 일부러 기사 제목 옆에 붙여진 ‘네이버’를 클릭한다면 이전 방식대로 네이버로 옮겨진 뉴스를 보게 된다.
  
  네이버가 이처럼 기사 검색 서비스 방식을 바꾼 것은 그 동안 언론사닷컴을 포함한 인터넷매체들이 ‘이대로 가면 우리는 네이버의 뉴스공급업체로 전락하고 거대해진 포털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구글처럼 기사가 바로 해당 언론사로 연결되도록 바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모든 뉴스가 네이버로 집중되면서 포털의 권력이 점차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네이버에게는 ‘검색 기능’에 만족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여기에 기사를 생산하지 않을 뿐 네이버가 자신들의 판단대로 주요 뉴스를 배치하는 등 실질적인 편집기능을 행사하는 것은 ‘언론사나 다름없다’며 다른 인터넷매체들과 함께 신문법의 규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네이버가 ‘우리는 인터넷언론이 아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아웃링크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
  
  조선일보 등은 온·오프를 막론하고 그 동안 포털사이트의 뉴스가 자극적인 연예뉴스 중심이라는 것을 비판해왔다. 연예뉴스를 앞 세워 포털의 권력이 비대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웃링크를 통해 자사 사이트에 대한 이용자의 유입량이 늘어나자 이에 재미를 붙인 언론사닷컴들 역시 포털의 행태를 그대로 반복했다.
  
  결국 자사 사이트에 게시된 광고의 노출빈도를 높이기 위해 바로 이번 남규리 사건과 같은 보도 행태를 보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모자이크 처리 정도로 신체의 은밀한 부분이 노출된 남규리 씨의 인권이 전혀 침해받지 않는다고 이들 언론사닷컴이 인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연예인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애초 조선일보의 기사 검색 결과를 캡쳐한 네티즌은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지어내서 기사를 계속 쏴대야 그 최신뉴스가 네이버 ‘남규리’ 검색결과 상위에 걸릴 수 있을테니까. 그래야 자기네 유입량이 늘고 광고 수입 늘고 돈을 벌테니까”라며 “그게 바로 저질 의제설정이고 그게 바로 싸구려 저널리즘일텐데 그런건 안중에도 없다”고 조선닷컴의 행태를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희완 인터넷부장 역시 “현재 인터넷 연예뉴스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를 보이는 것이 연예뉴스전문매체들이긴 하지만 그 동안 포털을 줄곧 비판해왔던 언론사닷컴들이 이번 남규리 사건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적을 비난하면서 똑같이 닮아가는 이들 언론사닷컴. 자극적인 연예뉴스가 모든 인터넷언론을 뒤덮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은 2006년 12월 28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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