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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조선일보의 DJ 서거 지면 편집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8. 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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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방송과 신문 모두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특집으로 다루며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당연하다. 그 분이 걸어오신 길은 그렇게 담아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오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전하는 신문을 보니, 몇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먼저, 동아일보.
1면부터 12면까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특집을 다뤘다. 중간에 전면 광고가 3개였다. 기사 내용도 최근 맛이 갈대로 간 동아일보답지 않게 괜찮다. 4면 탑의 기사 제목 <55차례 가택연금…사형선거…독재 삭풍에도 굽힘 없이>와 아래 DJ의 어록을 담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나는 내 인생을 목숨 걸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5면의 <외환위기 극복…남북화해 물꼬… '민주화의 인동초'>, 10면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6·15공동선언으로 협력기반 마련>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이런 동아일보의 지면 편집, 참 오랜만이다.

중앙일보도 괜찮다.

8월 19일 중앙일보 1면


1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전면에 실은 게 특히 눈에 띈다. 또한 중앙일보는 1면부터 무려 21면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특집으로 다뤘다. 중간에 전면광고는 5개였다. 오늘 중앙일보 본지 전체 지면의 절반이 김 전 대통령 서거로 채워진 셈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굳이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가장 눈에 띄는 신문은 조선일보다.
동아와 중앙, 한겨레, 경향과 비교하면 단연 도드라진다. 아주 희한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조선일보는 이들 신문에 비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는 데 가장 인색했고, 나로서는 이해하기 난해한 편집을 보였다.

1면부터 무미건조하고 기사의 비중이 다른 날의 일반적인 머릿기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면을 넘기면 조선일보의 희한한 지면편집이 더욱 도드라진다.

8월 19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2면에서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3면의 탑기사 <한국정치 '한 축' 사라져… 정치판 근본적 변화 불가피>을 시작으로  6면까지 서거 소식을 다뤘다. 3면의 탑기사가 어떤 의도인지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사실상 현실에서 없어져/여야 모두 새출발선에"라는 중간 제목으로 얼추 짐작할 수 있지만, 어쨌든 조선일보는 '애도'에 앞서 정치공학의 측면에서 서거에 접근했다.

6면을 넘긴 이후가 더욱 이해를 복잡하게 만드는데, 7면에서 나로호 발사 소식을 전해 서거 관련 기사가 끝난 듯이 보였지만, 조선일보는 11면에 다시 동교동과 하의도 주민들의 모습으로 서거를 다뤘고, 다시 12면에서는 4대강 논란과 탄소포인트제 시행 등 '사회 이슈'를, 14면에서는 국제 소식을 다루고 16면과 17면에서는 다시 서거 소식을 전했다.

기사 제목은 <옥살이·가택연금·망명 등 정치적 시련… 4수 끝에 대권 잡아>(16면),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 '햇볕정책'은 찬반 논란 불러>(17면) 등 역시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리하자면, 조선일보가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할애한 지면은 6.5개면이고, 이마저도 연속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일상적인 뉴스를 끼워넣는 '희한한 편집'을 보였고, 내용은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싫고, 어떻게든 대충 때워서 넘기고 싶었던 조선일보의 속내가 이런 지면 편집에 묻어났다고 본다면 오해일까?

조선일보는 오늘 사설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시대>에서 "그는 재임 중 언론의 비판을 인내하지 못하고 햇볕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가혹한 세무사찰로 막아보려 했다. 그리고 언론을 향한 그런 태도는 그의 정치적 계승자인 다음 정권으로 이어져 정치와 언론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썼다. 서거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DJ에 대한 악감정을 털어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 시대와 대통령 김대중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김 전 대통령은 한편의 절대적 추앙을 받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증오의 대상이 되는 포폄의 운명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라는 대목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기에 인색한 조선일보의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8월 19일 조갑제닷컴 메인화면

조갑제는 조갑제닷컴에 <金大中 前대통령의 死後평가>라는 글을 써, "그의 생애는 2000년 6·15선언 前後로 크게 나뉘어진다. 6·15선언 이전의 故 김대중씨는 민주투사로 불렸다. 6·15선언 이후의 김대중씨는 지지자에 의하여서는 평화의 使徒(사도), 반대자에 의하여서는 反헌법·反국가적 행위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생애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6·15선언이 될 것이다"고 했다.

조갑제의 글이나 조선일보의 사설이나 매한가지다. 아니 차라리 조갑제는 솔직하기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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