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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편 '무릎팍도사', 색다른 '인터뷰 프로그램' 가능성을 열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7. 6. 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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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무릎팍도사'를 일부러 챙겨보지 않는다.
한창 '무릎팍도사'가 특유의 직설적이고 과감한 질문과 답변으로 기세를 올릴 때는 그 재미가 적지 않아 수요일 밤이면 일부러 채널을 맞춰두고 봤지만, 언젠가부터 '무릎팍도사'가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산으로 올라가는 것도 더 이상 신선하지 않고, 'Battle Without Honor of Humanity'가 흐른 뒤 "액션"과 함께 이야기되는 한 마디도 '남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며, 온갖 자막으로 눈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강호동과 연예인 패널이 마치 경쟁하듯 주고 받는 대화가 더 이상 '무릎팍도사'가 초기에 보여준 과감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전 연예인 토크쇼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던 것에서 후퇴하고 다시금 신변잡기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6월 20일) 밤 우연찮게 TV를 켰더니 마침 '무릎팍도사'가 시작하고 있었다. 잠깐 '채널을 돌릴까'라는 생각을 하며 리모콘을 들려는 순간, 생뚱맞게도 '무릎팍도사'에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출연한 것을 발견했다.


'어라, 왠 엄홍길?'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사람을 불러 놓고는 무릎팍도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함 지켜보자'는 맘으로 TV 앞에 자세를 잡았다.


결론부터 말하자.

어제 '무릎팍도사'는 한 동안의 식상함과 그로 인한 '무릎팍도사'의 위기를 단 번에 날려버리는 방송이었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을 수 있는 '토크'가 가능함을 보여줬고, '무릎팍도사'가 기존 토크쇼 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선 프로그램에서 '색다른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또 다른 질적 변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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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을 만나기 위해 네팔 히말라야로 날아간 제작진은 해발 2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어느 '산장(?)'에서 엄 대장과 함께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엄 대장은 지난 5월 31일 로체샤르 정상(해발 8400m)을 오르면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정을 기록한 바 있다. 3~4차례 실패는 물론 한 번은 함께 산을 오르다 동료 두 명을 잃기도 했지만 끝내 히말라야 여러 봉우리 중에서 가장 험하다는 그래서 이른바 '신의 영역'으로 불리는 로체샤르의 정상에 오른 '의지의 사람'이다. 이번에도 함께 로체샤르를 등정한 엄 대장의 후배들 중 한 명은 동상으로 한 명은 설맹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엄 대장을 만난 '무릎팍도사'는 여느 교양 프로그램이나 전문 인터뷰 프로그램에서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엄 대장의 진솔한 모습, 그리고 여유로우면서도 유머러스러한 모습,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미를 이끌어냈다.


로체샤르를 등정하면서 입은 등산복과 배낭, 그리고 그 배낭 안에 든 물건들을 소개하는 엄 대장의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의 힘든 준비 과정을 엿볼 수 있었고, 급기야 배낭 윗부분에 항상 보관했다던 죽은 후배 사진을 보여줄 때는 말 그대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산(山) 사람'들의 의리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무릎팍도사' 측에서 '선물'이라며 병원에서 '회복'하고 있는 대원들을 담아 준비해 간 영상을 엄 대장에게 보여주고 한 대원이 "대장님 빨리 돌아와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합시다"고 인사하자 말을 잊지 못하며 감동하는 엄 대장의 모습은 그 자체가 시청자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되었다.


무려 70~90도 이르는 직각의 빙벽을 25시간 동안 오르며 잠을 잘 때도 줄에 매달려서 자고, 용변을 볼 때도 줄에 매달려 영하 30~50도에 이르는 혹한에 몸을 드러내고 봐야 한다는 생생한 엄 대장의 증언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은 인간의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며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산이 허락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고 말하는 엄 대장, "제가 체력을 보강한다면 산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라고 철없는 질문을 던지는 강호동에게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하느냐?"며 "잠시 그 곳을 빌릴 뿐"이라고 진지하게 답하는 엄 대장의 모습은 치열한 경험을 겪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체화시킨 사람만이 품어낼 수 있는 진정성을 시청자들 역시 가슴 깊이 느끼도록 했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낸 이 날 '무릎팍도사'는 전적으로 엄홍길 이라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홍길 대장에게서 진솔한 모습을 끌어내고 시종 부담감없는 분위기에서 유머를 곁들이다가 진지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감정을 더욱 깊이 자극할 수 있었던 것은 '오락프로그램 토크쇼'로써의 '무릎팍도사' 그리고 그 간판인 강호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이더라도 제대로 된 형식이 갖춰지지 않고 맘껏 펼친 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전해지기 힘들다. 이번에는 엄 대장의 좋은 이야기가 '무릎팍도사'라는 판을 통해 제대로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릎팍도사'의 이런 방송은 엄홍길 편에서만 그쳐야 할까?


아니다. 우리 사회에 어디 엄홍길 대장같은 사람이 한 두명이겠는가? 굳이 유명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어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이 큰 부담없이 들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무릎팍도사'가 유명 연예인에 안주하지 않고, 출연자 발굴에 더 큰 노력을 가한다면 '무릎팍도사'는 얼마든지 '색다른 인터뷰' 프로그램으로도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그런 가능성을 이번 엄홍길 편이 보여줬다는 것. 이는 '무릎팍도사' 제작진이나, MBC에게는 물론, 무엇보다 시청자들에게 아주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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