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케이블TV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tvN의 <롤러코스터>와 <세남자>, <화성인 바이러스>, Mnet의 <슈퍼스타K>, <2NE1 TV>, <2PM의 와일드 바니> 등 tvN과 Mnet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그 가운데 2NE1과 빅뱅, 2PM 등 아이돌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의 경우 각 아이돌 스타에 열광적인 마니아와 팬들의 관심에 힘입은 반면 대중성은 미약하고 '드아걸' 같은 게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콘텐츠로 평가하기엔 아무래도 무리라고 한다면, 한 번 짚어볼 만한 프로그램은 tvN의 <롤러코스터>와 mnet의 <슈퍼스타K>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슈퍼스타K>는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의 아류작임이 분명하고, 비슷한 형식의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이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앞서 방송된 경우가 있긴 하지만,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엄격한 경쟁의 룰을 적용하는 데 있어 한국적인 문화의 특색을 제대로 살렸다고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케이블TV에서 시청률 6%가 넘는 초대박을 터트렸다는 것 자체만으로 <슈퍼스타K>의 성취가 가지는 의미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정도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본선을 거치고 있는 <슈퍼스타K>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아마도 짐작컨대 케이블 뿐만 아니라 지상파 관계자들까지 포함한 방송계 그리고 대중문화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까 싶다.
일단 <슈퍼스타K>는 앞으로 좀더 지켜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롤러코스터>(이하 롤코)에 대해 한 번 짚어보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원체 케이블 프로그램에 대해 부정적인지라 롤코의 명성을 접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롤코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전해 듣고 한 번 챙겨봐야 할 프로그램이라 여겨져 첫방송부터 쭉 찾아봤다. <슈퍼스타K>는 그 자체보다는 6% 넘는 시청률이 '충격적'이었다면, 롤코는 프로그램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다. 케이블에서 이런 코미디 프로그램을 제작하다니!!
가장 눈길을 끈 코너는 뭐니뭐니해도 '남녀탐구생활'였다. 공중목욕탕이나 공중화장실 등 같은 상황에서 남녀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과장이 없지는 않지만 '남녀생활탐구'는 날카롭게 그리고 기가 막히게 짚어냈다. 특히 '남녀탐구생활'가 묘사한 남녀의 모습은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남성들만의' 혹은 '여성들만의' 어느 정도 내밀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쟤들은 저러겠지'라고 이성들 사이에 관념적으로 생각하던 모습들을 시원하게 드러내준 것이어서 호응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청자들로부터 저마다 'ㅋㅋ 그래, 저럴 때는 나도 그런데'라는 친밀감과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쟤들은 역시 그렇네'라는 관음증 비슷한 통쾌함을 함께 자극한 셈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조금 지루하다싶은 아이템이 없지는 않았지만 공중시설, 소개팅, 쇼핑 등 대체로 남녀가 대비되는 상황을 잘 포착했고, 각 상황을 연기하는 캐릭터도 성공했다. 정형돈은 그 자체로 '코미디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어느 정도 무게감 있게 살려주는 캐릭터였고, 정가은은 생소했지만 예쁘고 늘씬한 여성으로서 뚱뚱하고 못난 정형돈과 함께 놓여짐으로써 코미디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만약 이 코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고이 둘 다 '듣보잡'이었다면 '남녀탐구생활'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지금과는 판이했을 거다.
무엇보다 '남녀탐구생활'의 백미는 내레이션이다. 이미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신뢰감 있는 성우의 목소리로 각 상황을 빠르게, 그리고 날카롭게 묘사하면서 중간중간 은어와 속어를 터트려주는 센스는 '남녀탐구생활'을 돋보이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다.
이렇게 간판코너로써 '남녀탐구생활'이 지탱하고, 여기에 짧은 에피소드의 콩트로 승부하는 '불친절한 경호씨'와 줄거리가 있는 극으로써 재미는 물론 다양성까지 더해주는 '새드무비' 등이 더해지면서 롤코는 감히 케이블에서 방송되기 아까운 코미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물론 '광인' 등에 출연하는 김성주는 굳이 꼭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말이다.
아울러 롤코의 등장 자체도 주목할만 하다. 그것도 케이블에서.
송창의 tvN 대표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롤러코스터>를 만들게 된 동기는 '왜 모든 공중파에서 스탠딩 개그 포맷에만 집착하나?'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사람을 웃길 수 있는 방법은 수십가지가 넘는다. 1등을 하고 있는 <개그콘서트>는 몰라도, 타 방송사까지 그걸 몇 년째 따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가져갔다. 정형돈 외에는 출연자 중 코미디언을 배제했고, 마치 드라마를 찍듯 한 코너 한 코너, 공 들여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 또한 지상파의 개콘과 웃찾사, 개그야를 몇 년째 지켜보며 가졌던 의문이었고, 답답함이었다. 물론 KBS의 경우 <코미디쇼 희희낙락> 등 어느 정도 정통 코미디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나 시청률에 따라 부침을 겪는 등 공개코미디 외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발전시킬 여건은 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재미'를 최우선으로 내건 케이블 연예오락채널에서 지상파와 차별화된 코미디를 꺼낸 것이다.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도다.
남자는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제대로 씻지 않은 손으로 김밥을 집어, 변기의 더러운 세균이 묻을까 휴지를 깔고 볼일을 보고 손도 께끗이 씻은 여자에게 먹여준다 --;;
그런데, 이제 8회니깐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롤코에 대해 우려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롤코를 본지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재미가 붙기 시작하자마자 조금씩 식상함과 지루함이 늘어나고 있다. 왜일까?
먼저 '남녀탐구생활'을 예로 들자면, 계속되는 에피소드가 공중목욕탕이나 공중화장실 사용법의 재미를 능가하는 뭔가를 기대하는, 즉 계속해서 '뻥~' 터트려주길 바라는데, 그 기대감이 100% 충족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초반부터 너무 잘나간 탓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들을 앞으로 두고두고 괴롭힐 과제일거다.
그 다음이 더 문제인데, '새로움'이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창의 대표는 "우리가 집착해야 할 것은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그리고 새로움이다. 새로운 것이면 일단 70~80%는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독창성이라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생명과도 같다. 그런데, 이제 방송한 지 두달이 된 롤코는 여전히 독창적이고, 롤코를 본딴 다른 프로그램도 없음에도 '새로움'이 옅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지금까지 봤던 롤코를 되짚어봤다. 짚이는 게 있다.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프로그램인데,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도 더 짧은데 롤코는 너무 많이 봤다는 것이다.
롤코의 본방은 매주 토요일 밤 11시다. 지난 9월 5일 8회가 방송되었는데, 7회가 방송된 8월 29일 다음날인 일요일(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1주일 동안 tvN 편성표에 의하면 롤코는 무려 29번이나 방송됐다. 그 가운데 7회는 12번이나 방송됐다. 재방을 우려먹을대로 우려먹는 케이블다운 수치였다. 채널을 돌리다보면 본방이 아니더라도 롤코가 한두번 이상, 네댓번은 걸릴 가능성이 크고, 그때마다 재밌으니깐 보게 되는데, 본 거 또 보고, 본 거 또 보고 하는 동안 롤코의 새로움이 어느새 퇴색된 것이다.
롤코 뿐만 아니라 모든 케이블 프로그램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재방을 하지만, 같은 재방이라도 <화성인 바이러스> 재방과 롤코의 재방은 엄청나게 다르다. <화성인 바이러스>는 '어 본거네'라며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만이지만, 롤코는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 코미디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하루24시간*7일을 본방으로만 채울 수 없는 케이블TV의 콘텐츠 제작환경이 비록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나, 열 지상파 아깝지 않은 괜찮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새로움'을 재방으로 탕진하는 것은 여간 아쉬운이 아닐 수 없다. 롤코가 tvN 채널 내에서 무한복제되면서 스스로의 생명력을 퇴색시키고 있지 않은지 tvN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롤코가 더욱 성공하길 바란다. 롤코로 인해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동안의 지상파와 케이블의 관계를 비춰본다면 이는 지각변동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지각변동은 결코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