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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에 대한 어설픈 양비론과 이중잣대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9. 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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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 박재범을 둘러싼 소동이 인터넷과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어제(9일)와 오늘(10일) 조중동에서도 칼럼을 통해 한 마디를 걸치고 나섰다.

어제는 동아일보 이진영 인터넷뉴스팀 차장<'재범 한국 비하' 논란이 걱정되는 이유>를 썼고, 오늘은 조선일보 최승현 엔터테인먼트부 대중음악팀장<재범군 사이버 즉결심판>을, 중앙일보 문화부의 양성희 기자가 <2PM 박재범과 빗나간 애국주의>를 썼다.

각 신문사에서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담당하는 차장, 팀장, 고참 기자가 쓴 글들이니 나름 전문성도 있고, 내공도 있고, 경청할 만한 주장도 있을테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의 글은 하나같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 특히 '박재범 소동'을 대하는 이들의 '양비론'적 태도와 '이중잣대'가 그렇다.

먼저 조선일보를 보자.

최승현 팀장은 박재범의 글에 대해 "인터넷에 비속어 가득한 글을 수시로 올려놓았다는 것은 분명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한 청년의 약점을 드러낸다. 거리에서 춤추던 그였다. 그가 영어론 쓴 문장을 보면 불쾌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한국에서 대중 스타를 꿈꾸었다면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더 조신해야 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범은 분명 잘못했다"고 꾸짖었다.

9월 10일 '조선데스크'

반면 최팀장은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던 연습생 시절의 몇 마디에 분노해 결국 그를 매장시키는 대중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박재범에 대한 "인터넷 재판"에서 "미국 시민권을 가진 교포 3세 가수를 매섭게 꾸짖는 대중 독설에는 얼핏 순혈주의나 국가주의의 그늘마저 비쳤다", "한국인의 마음 밑바닥에는 아직도 '미국 시민권자'에 대한 몽니 가은 것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혹시 민족주의를 곧 '타자 배척'으로 인식하는 몇몇 인터넷 워리어들이 우리 대중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했다.

전형적인 양비론이다. 뿐만 아니라 엘리트의식도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중잣대도 엿보인다. 자신의 비판은 어린나이에 대중스타를 꿈꾸던 연예인 지망생의 조신하지 못한 언행에 대한 정당한 지적이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대중들의 '독설'은 순혈주의이거나 국가주의일 수 있고, 어쩌면 몇몇 "인터넷 워리어"에 의해 조종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1등신문' 조선일보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사람다운 독선이요, 아집이다. 인터넷을 찬찬히 살펴보라. 과연 국가주의에 매몰된 독설들만 판을 치는지, 아니면 그런 주장들에 대한 이성적인 반박이 더 많은지. 특히 블로그 등에서 자신의 이름(필명)을 걸고 책임 있게 쓴 글들은 대부분 어떤 주장들을 하고 있는지 읽어보라. 최팀장이 한 아이돌 스타를 매장시킨 인터넷 대중의 미성숙함을 지적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걱정했다.

그리고 중앙일보.

양성희 기자 또한 "물론 부적절하고 미숙하며 질책 받아 마땅한 발언이었지만, 아이돌 스타의 해프닝성 설화에 그칠 수 있는 사안을 중차대한 사회적 사건으로까지 키운 우리 사회의 행태도 미숙한 것이 아닐까"라며 양비론적 태도를 취했다. 박재범의 글이 "질책 받아 마땅한 발언이었다"면, 도대체 인터넷 여론이 어느 수준까지 질책을 했어야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양성희 기자가 쓴 9월 10일 중앙일보 '문화 노트'

물론 양 기자는 "'한국이 싫으면 떠나라'는 식의 강고한 애국주의는, 공인도 유명인도 아닌 일개 연습생 시절의 미숙한 발언까지 '사상검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일부 인터넷 연예매체들의 왜곡된 기사생산 방식이 가세했다. 넷 세상의 작은 가십거리를 '여론'의 이름으로 확대 포장하면서, 실제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이다"라고 이번 소동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를 제대로 지적했다. 하지만 사상검증으로까지 이어진 "일개 연습생 시절의 미숙한 발언"과 "부적절하고 미숙하며 질책 받아 마땅한 발언" 사이의 갭은 적지 않다. 박재범의 연습생 시절의 글을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문제삼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어설프게 "질책 받아 마땅한 발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최승현 팀장과 마찬가지로 마치 여론에 대한 심판자인양 자처하는 거대신문사 기자의 엘리트 의식 때문이 아닐까.

다음으로 동아일보를 살펴보기 전에 양 기자의 글을 한번만 더 보자.

양 기자는 "이번 사태가 환기시키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모든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고 기록이 추적되며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미디어의 가공할 위력"이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공과 사가 뒤섞이는 디지털 미디어의 속성에 더하여, 인터넷 공간에서 합리적으로 통용되는 윤리와 규범의 부재가 한몫 하는 탓"이라며 인터넷 사적공간의 글마저 사상검증의 대상으로 난도질당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9월 9일 동아일보 '광화문에서'

동아일보의 이진영 차장도 하루 앞서 비슷한 문제제기를 했다.
이진영 차장은 이번 소동에 대해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어떻게 친교 사이트에서 주고받은 사적인 글이 공론장을 달구는 최대 이슈가 됐느냐는 점"이라며 "공동체와 공론장 복원이라는 기술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소모적인 논쟁에 집단적으로 한눈을 파는 난장이 지금 온라인 세계의 실상"이라고 한탄했다.

또 "박재범이 '한국인이 싫다'고 털어놓은 공간은 몇몇 지인을 위한 친교 사이트였다. 모두가 듣고 있었다면 결코 내뱉지 않았을 적나라한 속내는 몇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 의해 내밀한 공간 밖으로 드러났고 곧바로 '인기 스타의 한국 비하 발언'이라는 뉴스로 터져 나왔다"며 "정보기술(IT) 강국의 하드웨어를 이렇게 활용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뉴미디어 문화에 대한 반성이 '재범 한국 비하' 논란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나는 양 기자와 이 차장의 글에서 앞서 지적한 이들의 '이중잣대'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이중잣대를 발견하게 된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바로 얼마 전까지 인터넷을 달궜던 김민선과 관련한 논란이다.

다들 알다시피 김민선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청산가리" 글을 썼다. 정부 정책과 관련되었다고는 하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을 자연스럽게 쓴 것이다. 그런데 김민선의 글이 인터넷에 회자된 뒤 이를 가장 문제삼은 것은 다름아닌 조중동이었다. 인터넷의 주된 여론을 김민선의 글에 공감하는 것이었는데, 조중동이 앞장서 마녀사냥을 하며 촛불시위를 '철없는 연예인 탓'으로 몰아갔다.

2008년 5월 7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김민선의 글에 대해 "허위로 가득 찬 선동이나 다름없다""연예인들 중에는 김씨처럼 '아니면 말고'식 주장을 유포해 청소년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서도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김민선을 마녀사냥했다.

박재범의 글이 비록 과거 연습생 시절 글이라고는 하나, 이런 동아일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김민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파급력이 큰 아이돌로써 한국에 대한 비하와 자학을 유포시킨 책임이 비할 바 없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김민선은 마녀사냥을 하고 박재범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을까.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심지어 그다지 크게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이 사적인 공간에 쓴 글을 두고 '너때문에 손해봤다'며 미쇠고기 수입업체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데 대해서도 일언반구의 지적도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박재범의 사례에 대해서는 '사적인 글' 어쩌고저쩌고하며 '인터넷 미디어'를 문제삼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중잣대라는 것이다.

2008년 5월 6일 조선일보 기사

나는 이번 박재범의 경우를 포함해 인터넷에서 연예인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사안이 생겼을 때, 인터넷 전체의 여론 형성 과정과 '인터넷 매체'의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기 위해 당시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것을 두고, 그 표현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네티즌들은 얼마든지 극렬하게 비난할 수 있다. 물론 비난의 방식은 상대적인 것이고 스스로의 책임 범위 안에서 행해져야 할 것이고, 아울러 이런 비난에 대한 역비난 또한 가능하다. 인터넷 공간은 그런 주장들이 부딪히고 섞이며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그걸 '논란'으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연예인 관련 해프닝과 논란, 소동의 대부분은 황색저널들의 책임이 99%다. 대개의 경우 악플은 그 자체로 논란이 되기보다 '누구에게 어떤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뉴스로 만들어질 때 비로소 논란으로 발전된다. 그리고 이번 박재범의 경우만 놓고 보자면, 이들의 책임이 49%, 나머지 50%는 JYP의 대응이라고 본다. 박재범의 과거 글에 대해 해명하고, 지금와서 부적절한 것이라면 사과하면 그뿐이지, 탈퇴시키고 미국으로 보낸 것은, 그것 자체가 논란을 소동으로 확대재생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중동이여, 니들 스스로나 잘 챙겨라. 인터넷은 니들이 걱정해줄 정도로 니들보다 문제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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