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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뉴스야? VJ특공대야?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9. 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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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어이구야~ 꺾여, 꺾여~"

-손맛 어떠세요? 지금 잡으신 게?
"끝내주죠 뭐."
-어때요. 느껴지는 느낌이?
"머리까지 짜릿짜릿해요."

순간 보는 눈을 의심하고, 듣는 귀를 위심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뭐지??

그러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이고, 내가 보고 있는 채널이 어디이고, 몇시인지 재차 확인했다.

일요일 밤 9시 십여분쯤 되었고, 채널은 9번, KBS1TV가 맞았다.
하지만 눈 앞의 TV 화면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은 금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 7번, KBS2TV에서 흔히 보던 장면들이었다.

나는 분명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본다는 간판뉴스프로그램 KBS1TV의 '뉴스9'(흔히 'KBS 9시뉴스'라고 일컫는 그 프로그램)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 앞의 모습은 KBS2TV의 'VJ특공대'였다.

어젯밤 KBS 뉴스9는 "요즘 서해안에서는 고등어 낚시가 한창"이고 "밀물때를 맞춰 낚시객들이 몰리고 있다"며 그 모습을 전했다.

"제철을 맞은 고등어 낚시에 너도나도 푹 빠진 강태공들. 물살을 가르며 버티는 고등어와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진다"는 기자의 리포팅. 그에 이어지는 '강태공'의 리얼하고 박진감 넘치는 고등어낚시 모습.

"짜릿한 힘겨루기 끝에 은빛 싱싱한 고등어가 올라"오자 강태공은 "손맛이 어떠냐"는 KBS 기자에게 말했다.

"끝내주죠 뭐."

기자는 재차 "어때요. 느껴지는 느낌이?"라고 묻는다. 손맛의 느낌을 듣고 코멘트를 따려 마이크를 쭉 내민 KBS 기자의 모습은 필사적이기까지 하다.
강태공은 또 대답한다.

"머리까지 짜릿짜릿해요"라고.

KBS 기자는 친절하기도 하시다.

"대낚시에 미끼에 사용할 크릴 새우만 있으면 고등어 낚시 준비 끝. 밀물 때만 잘 맞추면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어 인기"란다.

"갓 잡은 고등어를 이용"한 "즉석 구이 파티"의 모습도 빠질 수 없다.

"지금 잡아서 지금 구워 먹으니까 진짜 환상적이에요. 고기 맛이..."
"육질이 아주 기가 막혀요. 쫀득쫀득한 게 달콤하고..."

고등어를 즉석에서 구워먹는 사람들의 맛에 대한 호평이 덧붙여지면 금상첨화.

고등어낚시의 제철을 만났다는 천수만방조제의 모습을 담은 이 리포트는 "고등어의 짜릿한 손맛과 별미가 가을이 깃든 서해안으로 낚시꾼들을 이끌고 있다"는 기자의 코멘트로 마무리되었다.

'VJ특공대'가 결코 아니었다. 'VJ특공대'와 판박이처럼 화면을 구성하고 사람들의 코멘트를 땄음에도 VJ특공대만큼의 재미도 전혀 없었다. 이왕 하려면 VJ특공대처럼 성우를 쓰든지, BGM까지 확 깔든지, 밋밋한 화면전개에 촌스런 기자의 말투는 꼭 케이블 채널의 지역뉴스를 보는 듯 했다.

이 꼭지 바로 앞에 "'수확의 계절' 가을이 다가왔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며 헬기까지 동원해 가을 풍경을 이미 전한 터였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볼 수 있는 '데스크영상' 처럼 뉴스를 마무리하면서 가볍게 재밌는 풍경이나 소식을 전하는 것도 아니었다. 뉴스 중간에 정식 리포트로 삽입된 꼭지였다. 진지하게 '손맛'을 묻고, 즉석 고등어구이의 맛을 묻는 1분25초짜리 리포트였다.

고등어낚시에 한창인 강태공들을 취재한 이날,
KBS 뉴스9에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논문 이중게재 소식이 20초짜리 단신으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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