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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화에 심술 난 조중동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9. 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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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가 "미국은 북한과 양자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대화방식과 장소 등은 2주일 안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이로써 북한과 미국 사이에 '양자대화'가 본격화하게 되었다.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여기자들을 석방시키러 북을 방문했을 때 이미 북미 사이에 양자대화가 개시될 거라는 건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클린턴이 북한을 가고 북한이 여기자들을 석방하더라도 당장 북미 대화가 전개되지는 않고, 당분간 경색기를 거쳤다가 본격적인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그동안 전개된 과정은 이런 시나리오 대로였다. 양자대화를 하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서도 미국은 "아직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튕겼고, 북한은 북한대로 우라늄 농축을 마무리했다며 "우리는 대화에도 제재에도 다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일견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북미 양자대화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자 조중동은 심술이 났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양자대화 분위기가 잘 마련되지 않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방침을 거듭하는 동안에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미국 오바마 행정부를 추켜세우고, 북한에 대해서는 '구걸'이니 '협박'이니 조롱을 퍼붓더니, 양자대화 방침이 공식화되자, 제대로 뿔이 났다.

특히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뿔이 크게 난 모양이다.

9월 14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김 고문은 오늘 '김대중칼럼' <오바마의 '김정일 구하기'>에서 "클린턴은 빈손으로 간 것도 아니고 김정일도 공짜로 기자를 내준 것이 아닌 모양"이라며 "오바마의 대북자세는 결연했던 것처럼 선전됐던 것은 한마디로 쇼였다"고 분노를 그대로 표출했다.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9월초 한국에 왔을 때 "북한의 태도에는 변한 것이 없다"며 6자회담 안이 아닌 양자대화는 없을 것처럼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 보면 양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연막작전이 아니었던가 느껴질 정도"라고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불편하고 실망스런 감정은 만평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9월 14일 조선만평

미국이 제재를 계속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양자대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때는, "'번지수' 잘못 찾은 북"이라며 한껏 조롱하고, 북한이 우라늄 농축 마무리를 발표하자 1면에다 "북, 구걸에서 협박으로"를 제목으로 박았던 것과는 대단히, 엄청나게 대조적이다.

9월 5일 조선일보 1면

8월 21일 조선일보 3면

북이 미국에 양자회담을 '구걸'했고, 그게 안되니, '협박'한다고 하다, 갑작스레 미국이 양자대화 방침을 밝히니, 그 실망감이 눈에 보이듯 선하긴 하다.

조선일보 뿐만이 아니다.

9월 14일 동아일보 4면 기사

동아일보는 오늘 4면에 "미 '실용외교' 전환 왜?"에서 이번 미국의 양자대화 방침을 "지지율 떨어진 오바마""외교성과 조급증" 쯤으로 치부하며 오바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그럼에도 김대중 고문처럼 똑 부러지게 미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고, 미국에 대한 여전한 구애작전을 펼쳤다. "북의 통미봉남 전술에 이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거나 "북-미 대화를 계기로 대북 제재가 유야무야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사설이 미국에 대한 복잡한 심사를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앞으로의 양자회담으로 통미봉남이 현실화하거나 북에 대한 제재가 유야무야되는 것을 동아일보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통미봉남이 두렵거들랑 미국에 매달릴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을 요구해야 마땅하다.

9월 14일 중앙일보 사설

"북핵 해결을 위해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는 것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본다"면서도 "부시 정부 전철을 오바마 정부가 따라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중앙일보 또한 심사가 복잡하긴 동아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에 대해 가하고 있는 상응한 수준의 제재도 지속돼야 한다"는 요구 또한 마찬가지다.

글쎄, 과연 제재를 지속하면서 대화한다는 게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모를까? 그리고 그런 식의 대화가 과연 제대로 된 성과를 내올 수 있을 거라고 미국이 판단할까?

'어차피 하기로 하는 대화라면, 대화를 하되, 제재도 지속하라!!'는 것은 사실상 북미대화를 파토내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속내는 북미대화가 파토나길 바란다는 것이다.

조중동이 이번 양자대화 소식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이미 예상됐던 것이긴 하나, 안스러운 또한 감추기 힘들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말과 자세를 조금씩 바꿀 때 마다 마치 경기라도 일으킬 것처럼 야단스럽게 미국에 대한 태도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조중동을 보자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관련글 : 클린턴 방북-동아는 삐짐(?), 중앙은 혼란, 조선은 결연)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에 대한 강경발언을 쏟아낼 때는 클린턴을 막 추켜세우고, 클린턴이 북한에 가자 '배신감'까지 토로하더니, 다시 미국이 강경한 태도를 지속하자 그런 미국을 또 격려하고, 이제 다시 양자대화 소식이 전해지자 '쇼'를 운운하고 나서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다 헷갈릴 정도다.

왜 조중동은 아직도 모를까? 지네들이 아무리 난리법석을 쳐도 미국은 오로지 자기들 국익의 잣대에 따라 협상에 나서든, 제재를 할 뿐이다. 미국더러 대화하지 말라고 해서 미국이 대화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제재하지 말라고 해서 제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가운데 한국이 외톨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한국이 외톨이가 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나갈 위치에 설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MB 정부는 그 카드를 스스로 차버린 것 같다.

적어도 과거 십여년 동안 한국이 미국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주도해나갔던 적은 6.15 정상회담 전후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가 손놓고 있으면 북미 대화는 저 멀리 굴러갈 수밖에 없다. 조중동은 그 길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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