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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목숨 수단 삼아 자살 몬 건 사실"이라니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9. 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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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26일,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백골단의 쇠파이프 맞아 죽었다.
며칠 뒤 전남대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타살을 규탄하며 분신하였고, 연이어 안동대 김영균, 경원대 천세용도 강경대 타살을 규탄하고, 학살정권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다.

5월 6일에는 부산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병원에서 의문사하여 시체마저 탈취당한 일이 벌어졌고, 5월 8일에는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 옥상에 분신했다.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이 시위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1991년 4월말에서 5월말까지 한달 동안 벌어졌던 일이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일들이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는 경찰에 맞아죽고, 누군가는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이른바 1991년 봄의 '분신정국'이다.

오늘(2009년 9월 18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당시를 "어두운 시대, 되돌아보기만 해도 아찔한 시대였다"고 썼다. 그렇다. 참으로 어두운 시대였고 아찔한 시대였다. 그런데, 당시를 더욱 어둡고 아찔하게 만든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참혹하고도 안타까운 죽음에조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모략했던 권력과 이에 부화뇌동한 집단들이었다.

"죽음에 배후가 있다", "계획된 죽음이다", "목숨마저 혁명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매도하고, 이들이 인륜도 없는 패륜집단이고, 생명까지도 경시하는 냉혈한 좌익극렬집단으로 몰아갔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이제서야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었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분신하며 남겼던 유서를 같은 단체에서 일하던 강기훈씨가 대신 써줬다는, 그래서 죽음을 방조하고 나아가 조장했다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김기설씨 분신 직후부터 경찰과 검찰에서 제기했고 무지막지한 공안의 칼날 아래 강기훈씨는 동료의 죽음을 사주한 사람이 되어 3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김기설씨의 유서

하지만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렸던 이 사건의 진실은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가 김기설씨 유서의 필적과 강기훈씨의 필적이 다르다는 진실을 밝혀내며 조작됐음이 드러났고, 얼마전 법원이 강기훈씨의 무죄를 추정하며 이 사건의 재심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김기설씨의 분신이 있기 3일전인 1991년 5월 5일, 이른바 '분신정국'에서 군부독재 저항세력들이 생명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 패륜집단인 것처럼 돌이키기 힘든 낙인을 찍어버리는 글이 조선일보에 게재되었다. 저 유명한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이다. 애초 김지하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제목을 보낸 글을 조선일보가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환상을 갖고 누굴 선동하려하나"라는 섬칫한 제목을 뽑아 게재했던 바로 그 글이다.

김지하는 이 글에서 "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며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하는 애초 계속되는 죽음에 애통한 마음으로, 죽음이 다시 극렬한 투쟁을 부르는 참혹한 현실에 '생명존중'을 깨우치기 위해 저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김지하의 진심은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김지하의 글은 군부독재 저항세력들에게 정권이 '생명마저도 혁명에 이용하는 무자비한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는데 더할 수 없는 호재가 되었다. 조선일보가 바로 그 선두에 섰던 것이다.

김지하 자신도 뒷날  "그것을 그 당시 말썽 많은 <조선일보>에 발표하게 되어 매체 선택을 잘한 것 같지 않다""그때 지면 편집을 보고 '아차!' 싶었지. 내 칼럼이 빌미로 활용된 것이지"라고 회상한 바 있다.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김지하의 글은 본심과 다르게 조선일보에 "죽음을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나간 뒤 당시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의 "죽음의 배후에 죽음을 선동하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함께 엮이면서 제몸을 불살라가면서까지 군부정권에 저항한 사람들의 죽음을 매도하고, 저항세력을 탄압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김기훈 유서대필 조작의 진실들이 드러나고, 재심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보니,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을 때 에밀 졸라가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 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역시 진실은 전진하고, 그게 역사의 진리인가 보다. 1991년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을 매도했던 조선일보조차 "18년 전 '유서 대필', 재심에서 진실 밝혀내야 한다"고 사설을 쓸 정도니, 참으로 세월이 무상할 정도다.

하지만 사설을 찬찬히 읽으니, 적어도 조선일보의 역사의 시곗바늘은 여전히 1991년으로 멈춰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는 오늘 "유서 대필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김기설씨 분신 자살이 미화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당시 운동권 내부에 목숨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고 왜곡된 진실을 미화하고 자살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너무나도 태연작약하게 입을 놀렸다.

2009년 9월 18일 조선일보 사설

1991년 자신들이 조선일보 지면에서 주장했던 것과 같은, 자신들이 역시 대서특필했던 "죽음의 배후에 죽음을 선동하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박홍의 말이, 18년이 지난 2009년 조선일보 지면에서도 똑같이 재연된 것이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누가 김기설 열사의 죽음을 미화했단 말인가? 누가 목숨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고 자살로 몰아갔단 말인가?

어떻게 "그(김기훈)의 무죄가 사실로 판명되면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같은 사설에서 이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김기훈씨에게 유서대필의 혐의를 씌워 매도한 공안세력의 입이 되었던 조선일보가, 재심이 결정된 이때 18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마치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무죄'를 거론하고 '보상'을 거론하는 것도 부아가 치밀어 오를 지경인데,  "당시 운동권 내부에 목숨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고 왜곡된 진실을 미화하고 자살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니, 도대체 이런 조선일보를 어찌 해야 좋을까?

차마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고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이럴진대 김기훈씨는 오죽 할까. 조선일보, 정말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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