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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진화, MBC에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7. 6. 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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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가장 잘나가는 곳은 단연 MBC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프로그램의 십 중 팔구는 MBC 프로그램이다. <주몽>, <하얀거탑>, <거침없이 하이킥>, <개그야>, <무한도전> 여기에 토크쇼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에 이르기까지 시청률과 사람들의 호응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드라마, 연예오락 장르에서 MBC가 초강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 가운데 드라마의 경우 <주몽>과 <하얀거탑>, <있을 때 잘해> 등이 3월초 연이어 막을 내렸지만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 <히트>, <고맙습니다>, <캐세라세라> 등 줄줄이 새롭게 편성된 MBC의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한가닥할 것 같은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물론 봄 개편을 맞아 새롭게 편성된 KBS와 SBS의 드라마 역시 <마왕>, <마녀유희> 등 만만치 않아 MBC가 그 동안의 인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만은 없다.
  
   드라마를 벗어나면 어떤가. KBS1TV의 일일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이 전통적인 일일극 시청층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시청률 상위를 달리고 있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이 불러일으키는 관심과 화제를 따라가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MBC에는 연예오락장르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10~20대 애청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무한도전>이 버티고 있다.
  
  <무한도전>을 있는 그대로만 보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무한도전

 말지 독자분들 중에서는 ‘식상하게 무슨 무한도전이야’라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무한도전>의 인기가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생긴 현상도 아닐뿐더러 이미 수많은 연예매체들과 TV비평가들이 지겨우리만큼 <무한도전>은 물론 <무한도전>의 여섯 MC에 대해 회도 뜨고, 포도 뜨면서 낱낱이 해부한 바 있다.
  
   필자 또한 앞으로 <무한도전>에 대해 풀어놓을 ‘썰’이 어떤 매체 혹은 누군가에 의해 한 두번쯤을 다뤄졌을 이야기들을 중언부언하는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자백한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무한도전>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부족함이 느껴진다. <무한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잘나갈 것인가. 그리고 <무한도전>을 앞세워 예능강국으로 발돋움해가는 MBC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무한도전>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알다시피 <무한도전>은 진화를 거듭해 온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그렇고, 내용이 그렇고, 구성하는 멤버가 그렇다. 특히 <무한도전> 멤버 개개인이 가진 캐릭터의 진화는 눈부실 지경이며, 각 캐릭터의 특성에 따라 형성되는 멤버들 간의 관계맺음 역시 생명력을 가지고 변화해왔다.
  
   <무한도전>은 애초 2005년 4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의 주말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토요일>의 부속 코너인 ‘무모한 도전’으로부터 출발했다. 유재석이 이미 선보인바 있는 ‘천하제일 외인구단’(KBS)과 ‘감개무량’(SBS)을 원형으로 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첫 방송에서부터 출연자들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더니, 이후에도 전철과 달리기를 하거나, 거대한 굴삭기와 사람의 삽질 대결을 펼치는 등 말 그대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을 반복했다. 하나같이 연예인들의 ‘아무 이유없는’ 억지 도전기를 바탕으로 웃음을 자아내는데 주안점을 둔 포맷의 특징상 가학성 논란을 피할 수 없었고,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캐릭터화, 관계 맺음으로 진화해 온 <무한도전>
  
  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로 변화하는 동안 점차 마니아층으로부터 “모든 게스트가 기피하는 3D프로그램”으로 인정받게 되고, 요구르트 하나, 초코파이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온갖 치졸한 작태가 ‘리얼궁상프로젝트’로 승화된다. 또한 이들의 표현대로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벌이는 ‘무한이기주의’는 도전과제와는 별개로 프로그램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되고 궁극적으로 <무한도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출연자들 개개인의 캐릭터화의 밑바탕이 되게 된다.
  
   <무한도전>은 무엇보다 초특급MC 유재석을 필두로 한 6명 출연자들의 리얼한 실생활과 성격을 드러내고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여타 연예오락프로그램과 구별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핵심요소가 바로 캐릭터화에 있다. ‘평균 이하의 사람들’로 통칭되지만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물과 기름처럼 합쳐지기 힘들 정도로 특화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두드러지는 특징들이라 어쩌면 파편화되고 개별화될 수도 있지만, 이 캐릭터들을 조절하고 융화시켜내는 유재석에 의해 <무한도전>의 특징으로 일체화될 수 있었다. 실제 각 출연자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프로그램은 산만해질 수밖에 없고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무한도전>은 무지하게 산만하면서도 산만함조차 <무한도전>만의 특징으로 살려내고 있고 그것은 김태호 PD가 ‘플레잉코치’라 평한 유재석의 능력에서 기인한다. 유재석에 대해서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까지 그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 마당에 쓸데없는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겠지만, 어쨌든 유재석이 없는 <무한도전>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가 아니라 상상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멤버들은 없어져도 상관없을까? 그것 또한 아니다. 최종적으로 정준하가 결합한 이후 사전각본보다는 자연발생에 가까운 서로 간의 관계 맺음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캐릭터화에 주력해온 결과 형성된 지금의 <무한도전>은 멤버 하나하나가 자신의 역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프로그램의 지분 중 1/n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스원정대’ 이후 그 1/n과 다른 1/n의 유기적인 결합 정도가 너무 강하게 이어졌기 때문에 하나가 빠지는 순간 <무한도전> 전체가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이 가지는 특징은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훨씬 두드러진다. KBS <여걸식스>의 경우 <무한도전>과 똑같이 나름의 캐릭터를 가진 여섯명이 공동 MC를 맡고 있지만 말 많고, 끼 있고, 섹시한 여성 연예인들이 집단적으로 MC를 한다는 것 외에 그다지 다른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강수정이 빠져도 아무 상관없이 프로그램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여걸식스>는 멤버들 간의 관계 맺음보다 꽃미남 게스트와의 관계 맺음에 더욱 치중하고 그것조차 대개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게 섭외해놓고도 게스트 보기를 돌보듯 하듯 <무한도전>의 멤버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나아가 <무한도전>은 ‘제7의 멤버’까지 확보한 상태다. <무한도전>에서 제작진이 삽입하는 자막을 보면 단순한 프로그램에 대한 해설 정도의 수준을 넘어 속어와 출연자에 대한 반말에 이르기까지 제작진의 주관적 생각이 가감 없이 등장한다. 제작진들 또한 <무한도전> 멤버들과 관계 맺음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김태호 PD나 김태희 작가는 이미 <무한도전>다운 캐릭터화가 진행 중이다.
  
  <무한도전> 앞으로는?
  
  하지만 과연 <무한도전>에서 제작진이 애초 기획한 내용이나 상황 설정이 얼마나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최근 <무한도전>을 보면 한 회분에 2~3개 이상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것이 예사다. ‘촬영한 뒤 편집해보니 60분 방송분량을 채우기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제작진의 애초 의도나 예상보다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벌이는 즉흥적인 ‘리얼버라이어티쇼’에 치중한다는 반증이다.
  
   이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멤버들과의 관계 맺음과 캐릭터, 그리고 즉흥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무한도전>의 전망이다. 대체적인 관측은 낙관적이다. 끊임없이 진화해 온 <무한도전>이니만큼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라는 신뢰다. 필자 또한 당장 <무한도전>이 위기를 겪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지난해 ‘슈퍼모델’ 도전에 이어 최근 ‘미니드라마’ 도전까지 <무한도전>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 또한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무한도전>의 진화가 꼭 긍정적으로만 구현될까에 대해서는 우려가 드는 게 사실이다.
   유기적으로 결합된 여섯 멤버의 관계가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기만 할 것인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안착화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서로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미 보여준 것을 또 다시 보여주는 반복이 생기지 않을까?
  
   캐릭터의 진화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어색한 뚱보’ 정형돈이 어색함을 떨쳐내는 정도가 아니겠는가. ‘2인자’ 박명수가 유재석을 젖히고 1인자가 되거나 ‘죽마고우’ 노홍철과 하하가 ‘웬수지간’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럴 경우 ‘리얼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은 멤버들의 숨겨진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사생활 보여주기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도 ‘뚱보’, ‘뚱뚱보’, ‘다리 짧은’, ‘머리숱 적은’ 등 오락프로에서도 자제되어왔던 신체에 대한 비하적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자막으로 보여주는 <무한도전>의 제작진들이 자신들의 사적인 판단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낼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무한도전> 인기 우려먹는 MBC
  
  더 큰 우려가 드는 지점은 <무한도전>의 성공을 대하는 MBC의 태도다. MBC는 3월 프로그램 부분개편을 하면서 토요일 오전에 <무한도전 스페셜>을 편성했다. 다름 아니라 지난 주 <무한도전>을 재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모두 <무한도전>이 포진한 형태가 되었다. 이미 MBC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 무려 2시간 30분, 지난 설 연휴 기간 75분에 걸쳐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무한도전> 재방송을 내보내 빈축을 샀다. <주몽> 등 잘나간다 싶은 프로그램은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그야>의 성공, <무한도전>의 폭발적 인기, ‘무릎팍 도사’까지, 예능프로의 호조에 필 받은 MBC는 최근 예능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시도를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여기에 앞에서 봤듯 봄을 맞아 대대적인 드라마 개편을 하면서 ‘드라마왕국’ 구축에 대한 의도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외주제작 드라마가 절대 다수인만큼 경쟁력 있는 드라마를 확보하기 위한 MBC의 투자가 거칠 것 없어 보인다.
  
   반면, MBC의 시사교양프로그램이나 뉴스는 과연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지난 해 의 한미FTA 관련 방송 이후 MBC가 사회적 의제를 다룸으로써 주목받은 적이 있는가. 물론 은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고, 지난 해 ‘러시아혁명 5부작’과 최근 ‘특별기획’ <황하> 10부작이 많은 주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점에서, 북핵실험 이후 2.13 합의까지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속에서, 올해 대선을 앞두고 갖가지 갈등이 논란이 터지는 가운데 MBC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한미FTA 8차협상 기간 동안 KBS가 17건, SBS가 14건에 걸쳐 관련 보도를 내보내는 동안 단 10건에 그칠 정도로 내용에 있어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MBC가 기껏 내세우는 자랑은 김주하 앵커의 복귀나 뉴스 진행 방식의 변화, ‘친절한 뉴스’ 등이다. 방송3사 보도를 매일 모니터링하는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MBC가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실망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오락프로가 오락프로답게 웃음을 주고, 드라마가 드라마답게 재미를 주는 게 결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제는 형식적으로 다루는 데 그친 채 인기 있는 오락프로와 드라마를 우려먹으며 시청률 장사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MBC 체제 아래라면 <무한도전>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잃고 타성에 의해 억지로 방송되는 상황을 상상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바로 그 점이 <무한도전>과 MBC를 바라보면서 불현듯 가지게 되는 우려다.

(이 글은 '월간 말' 2007년 4월호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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