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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신라엔 세금폭탄 선동하던 조중동 없었다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10. 2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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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의 뒤를 이을 왕위승계를 둘러싼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여성의 몸으로 왕이 되겠다고 한 덕만에 이어, 골품제를 부정하며 왕이 되겠다던 춘추, 그리고 급기야 '잠자던 용이 깨어났다'며 여성과 골품의 벽을 동시에 뛰어넘으려는 미실까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섰다.


이런 미실에 대적하려는 덕만이 어제는 이른바 '조세개혁안'이라는 것을 내놓고 미실의 지지층인 귀족들을 분열시키려는 계책을 진행시키고 있다.

당시 신라에서 실제 덕만이 내놓은 것과 같은 조세개혁안이 추진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선덕여왕이 비록 사극이긴하나 조세개혁안이라는 것을 왕이 율령으로 반포하겠다며 화백회의에 통과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모습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무슨 화백회의가 국회라도 된단 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개혁안을 둘러싼 선덕여왕의 이야기 전개는 매우 흥미롭고, 천년의 시간을 훨씬 더 뛰어넘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덕만이 내놓은 조세개혁안은 사실상 최근까지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종부세' 그 자체다. 그리고 이렇게 대입시키면 짝이 딱 들어맞는다.

덕만세력 : 종부세를 추진했던 노무현 참여정부
미실세력 :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려 했던 한나라당, 그리고 실제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이명박 정부
덕만의 조세개혁에 '덕만공부 만세'를 외치는 백성과 군소귀족 : 서민들과 실소유형 1주택 소유자
덕만의 조세개혁에 위기감을 드러내는 대귀족 : 강남 부동산 부자

즉, 부동산값 안정을 바라는 도시서민과 지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종부세를 추진했던 노무현 참여정부와 강남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려 했던 한나라당의 대치전선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 대 미실'이란 구도로 시대를 거슬러 재현된 셈이다.

선덕여왕에선 대귀족까지 조세개혁 찬성
노무현 때는 전세사는 사람도 종부세 반대

그런데, 어제 방송분까지 상황으로 일단 조세개혁안이 화백회의에서 1명만 반대했을 뿐 나머지 절대 다수가 찬성했음에도 '만장일치제'에 따라 부결됐지만, 어쨌든 대귀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실세력도 정략적으로 군소귀족을 추스르기 위해 조세개혁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화백회의 표결이 누가 찬성 혹은 반대를 했는지 전광판에 표시되는 전자투표제도 아니지만, 드라마에서는 누가 찬성, 반대를 선택했는지 다 알려진다는 설정에 따라 군소귀족과 자영농들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속셈으로 세종, 하종, 미생 등이 덕만의 조세개혁에 찬성한 것이다.

덕만이 다시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제에 대해 안건을 붙임으로써 조세개혁안의 운명이 앞으로 어찌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찌되었건간에 결론적으로 대귀족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그들의 이해에 반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이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알다시피 우리 현실의 종부세는 결국 무력화되었다. 강남 부동산부자들을 등에 업은 한나라당 등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음은 물론이요, 종부세가 무력화될 경우 혜택을 보게 되는 재판관들이 수두룩했던 헌법재판소마저 세대별 합산과세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종부세를 식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현실을 빗댄 것이 틀림없는 덕만의 조세개혁에 대해서는 어쨌든 미실세력이 찬성을 선택했다.

현실의 한나라당이 막무가내로 종부세를 거부할 수 있었던 반면 미실세력이 백성과 군소귀족의 반발을 수렴할 수밖에 없었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핵심적이요결정적 이유는 바로 신라에는 조중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15일 중앙일보 기사


2007년 3월 16일 조선일보 기사. 지면 제목 자체가 "'보유세 폭탄' 현실로"이다


2007년 3월 16일 동아일보 기사. 지면 제목 자체가 "'보유세 폭탄' 후폭풍"이다


신라에 만약 미실세력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 당장의 조세부담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까지 함께 하는 조중동 같은 대귀족의 나팔수 언론이 있었다면, 아마도 덕만의 조세개혁안을 '세금폭탄'이라며 대귀족뿐만 아니라 조세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군소귀족, 심지어 땅을 가지지도 않은 일반 백성들까지도 피해를 보는 것처럼 선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군소귀족과 일반백성들까지 이들의 선동에 휘둘려 덕만이 대단히 나쁜 정책을 내놓은 것처럼 인식해, '아마추어'니, '여자라서 안된다'니 비난을 쏟아내는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선덕여왕을 보면서, 덕만의 조세개혁안이 일반 백성들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지 정확하게 설명하자 '덕만공주 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불쌍해졌다. 

왜 우리 현실에서는 공시가격 6억원 이상되는 집을 가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전세를 사는 사람들조차 종부세에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선동하는 조중동에 휩쓸려 결국은 종부세가 무력화되게 만들었을까? 비록 허구이긴 하나, 조중동같은 존재가 없었던 선덕여왕의 모습이 정상일까? 아니면 조중동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면서 대다수 국민을 위한 정책을 발목잡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정상일까?

물론 종부세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세종시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세종시가 마치 충청지역에 큰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세종시, 즉 행정도시가 추진되었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지역균형발전이었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모여 과밀화된 수도권만 기형적으로 발전하고 지역은 고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도 함께 발전하자는 정책이 바로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었고, 그것이 이른바 '관습헌법'이라는 허무맹랑한 논린에 따라 위헌판결을 받은 뒤 다시금 추진된 게 바로 행정도시특별법 즉 세종시특별법이었다. 그런데,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던 정부는 세종시 백지화를 추진하고 있고, 마치 지역이기주의인양 충청지역민들만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어쨌거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역 사람들이 세종시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이다. 이 또한 조중동과 무관할 수 없다.

미실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반대세력은 있었으나 고졸 출신의 비주류 정치인을 사사건건 발목잡던 조중동 같은 적은 없었기에 아마도 덕만은 여성의 몸으로 왕이 될 수 있었고, 역사에 길이 남은 훌륭한 위인이 됐을 것이다. 반대로 현실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1년 여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덕여왕이나 보며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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