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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비주류 마니아 드라마여도 좋지 아니한가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7. 6. 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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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왕>의 포스터 ⓒKBS

 7명의 목격자가 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는 7명의 목격자가 있다. 이 사건은 바로 살인 사건. 7명의 목격자 중 한 명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6명.
  한 명은 칼로 피해자를 살해한 가해자로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다른 3명은 가해자의 친구로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또 다른 한 명은 몰래 숨어서 사건의 실체를 확인한 목격자지만 가해자와 가해자의 친구들로부터 매일같이 괴롭힘을 당하던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목격자는 사물과 사람에게 손이나 다른 신체를 접촉함으로써 그 사물과 사람에게 기록된 사연이나 과거 모습을 볼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 바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통해 우연히 사건 현장을 목격한 어린 여자아이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유력 정치인이다. 든든한 뒷 배경과 사건을 곁에서 목격한 다른 세친구의 ‘증언’, 학교폭력 피해자의 ‘침묵’ 덕에 가해자는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으로 풀려났다. 어린 여자아이의 ‘증언’은 헛소리로 취급됐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부활'보다 더 독한 마니아 드라마
  
  KBS2TV 수목드라마 <마왕>(연출 박찬홍, 극본 김지우)은 이 사건의 가해자인 강오수 형사(엄태웅 분)에게 의문의 타로카드와 잡지책의 글자를 오려붙인 뜻을 알 수 없는 편지가 택배로 전달되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살인사건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PD와 작가는 물론 주요 주연배우와 몇몇 조연까지 이전 KBS 수목드라마 <부활>의 멤버들이 다시 결집한 탓에 <마왕>은 방송 전부터 <부활>의 뒤를 잇는 ‘마니아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방송 시작 뒤 <부활>보다 훨씬 더 ‘찐한’ 마니아 드라마의 풍모를 보이며 ‘마왕 폐인’들을 브라운관과 컴퓨터 앞으로 불러 앉히고 있다.
  
   시청률은 7~9% 정도로 한 자리에 머물면서 좀처럼 높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마왕>에 대한 궁금증과 시청소감을 나누는 마니아들의 관심은 그 열기가 뜨겁기만 하다. 같은 시기 시작된 SBS <마녀유희>나 MBC <고맙습니다>의 경우 시청률은 곱절로 나오지만 시청자 게시판에 등록된 글의 양은 <마왕>에 비해 각각 만 건, 2만 건 가량 적을 정도로 <마왕>의 게시판에는 하루 종일 살고 있는 마니아가 적지 않다.
  
   이전 <부활>의 경우 한 동안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다 탄탄한 구성과 이색적인 이야기 전개, 연기자들의 호연 등으로 점차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더니 마지막 회는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한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마왕> 역시 <부활> 못지않은 구성과 색다른 소재,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등으로 8회가 지난 현재(4월 15일) ‘마니아 드라마’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는 중이다.
  
   <마왕>은 어린 시절 형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은 오승하(주지훈 분)가 철없던 시절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인 강오수를 상대로 벌이는 복수극을 큰 줄기로 삼아 각 등장 인물들 사이에 얽혀 있는 그물망 같은 관계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마왕>의 내용 중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대목은 서해인(신민아 분)이 가진 사이코메트리 능력과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포인트이자 키워드가 되는 타로 카드다. SF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이코 메트러(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사람)가 드라마에서 아주 큰 비중으로 등장하면서도 무리 없이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고, 정보 프로그램의 사주까페 소개에서나 등장할 법한 타로 카드가 드라마를 이해하는 가장 큰 단초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마왕>의 전개는 매끄럽기만 하다.
  
  
  <마왕>의 재미 느끼려면 마니아가 되어야
  
  오히려 시청자들은 해인이 읽어내는 사물과 사람의 사연을 제각각 해석하고, 지금까지 주요고비마다 등장한 타로카드를 과연 누가 보낸 건지, 각 카드가 가지는 의미가 드라마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리’하면서 <마왕>의 매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어 ‘마니아’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까지 <마왕>에 등장한 카드는 모두 3장. 각각 ‘심판’, ‘정의’, ‘여제’를 상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카드는 제일 먼저 보내진 ‘심판’ 카드. 해인은 심판 카드에 대해 “과거에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며 “과거에 회피해 온 불편한 것들과의 만남을 암시한다”고 했다. 바로 오수가 12년 전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는 의미. 그리고 오수는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 전개 속에서 ‘과거에 회피해 온 불편한 것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뒤에 보내진 정의 카드와 여제 카드는 심판의 내용과 심판의 과정에서의 각 인물의 역할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해인 역의 신민아 ⓒKBS

   이처럼 각각의 의미를 내포한 타로 카드의 등장과 그것이 암시한 대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치 수천 개의 퍼즐조각을 맞추듯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극중 몰입을 이끌고 있다.
   <마왕>에 등장하는 타로 카드는 극중에서 서해인이 직접 그렸다고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타로 카드 1인자로 불리는 스텔라 가오루코가 5년 동안 준비한 끝에 만들어 낸 78매짜리 ‘스텔라 타로’로 불리는 카드다. 이 카드는 <마왕> 방영에 맞춰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발매되었다고 하는데, ‘스텔라 카드’의 국내 공급사인 JK홀딩스에 의하면 “홍보 없이도 입소문만으로 1000여개 정도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마왕>의 이야기가 점점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면서 매출이 더욱 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다름 아닌 <마왕> 마니아들의 관심 덕분이다.
  
   하지만 <마왕>은 ‘성공한 마니아 드라마’로서는 분명한 한 획을 그을 수 있어도 시청률 20%를 넘기는 ‘대중적 마니아 드라마’로 뻗어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활>의 경우, 당시로서는 대단히 생소한 스타일과 내용을 가진 드라마임에도 엄태웅이 일란성 쌍둥이 역할을 1인2역으로 멋지게 소화해내며 자신과 가족에게 얽혀있는 비밀을 풀고 냉엄한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가 초반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거쳐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드라마 진행 중반까지의 시청률 저조는 상당 부분 같은 시간대 MBC의 ‘국민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이기도 했다.
  
   <마왕> 역시 복수의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주지훈의 냉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과거의 잘못을 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려고 열혈형사로 맹활약하지만 결국 12년 전 너무나 큰 잘못에 다시 발목을 잡히고 괴로워하는 엄태웅의 열연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하는 등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지만 일반적인 시청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는 너무 어렵다.
   사이코 메트리라는 용어 자체도 낯설고, 타로 카드도 이채롭기 그지없지만 이와 함께 군데군데에서 불쑥 등장하는 각종 인용구와 격언, 예술 작품들은 <마왕>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가 됨에도 많은 시청자에게 어렵게 다가선다.
  
  
  “모든 요소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1회에서 심판 카드와 함께 강오수에게 배달된 편지의 문구는 “진실은 친구들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 헌법 제11조 1항”이다. 수수께끼 같은 문장도 난해하지만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 1항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
  두 번째 전해진 편지는 더욱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서 인용한 “모든 요소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가 밀접하게 살아서 움직인다”는 내용의 해석은 전적으로 시청자들의 상상력에 맡길 수밖에 없을 듯.
  
  이밖에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로댕의 ‘지옥문’이 수시로 등장한다든지, 오승하가 복수의 대상들에게 하는 말과 같은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의 저서 <거짓의 사람들>이나, 서해인과 오승하 러브라인의 중요한 매개가 되는 칼 융의 <인격의 전이>, 심지어 승하가 어린 소녀에게 들려주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까지 <마왕>에는 인문학적 배경 지식 없이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마왕> 자체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까닭에 전체 이야기의 맥락에서 한 가지라도 놓치게 되면 웬만한 시청자는 ‘쥐 내리는’ 머리를 감싸며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다.
  
  
△오승하 역의 주지훈 ⓒKBS

   따라서 이전 <부활>에 비해 <마왕>은 ‘비주류 마니아 드라마’로 남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마니아들로서는 “이렇게 재밌는데 왜 시청률이 낮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할 지라도 그것이 ‘명품’ 드라마로서 높은 완성도를 이루기 위해 <마왕>이 가야할 운명인 듯하다.
   그럼에도 <마왕>에 빠져들어 <마왕>이 제공하는 수수께끼 추리를 되짚어 볼 수고를 마다않는다면 <마왕>은 매력적인 드라마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재밌다. <마왕>의 형식적 요소 또한 드라마에 대한 몰입과 긴장감을 높인다. <마왕>에서는 인물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부분적으로 어딘가 가로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시청자가 제3자가 되어 바로 곁에서 혹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몰래 숨어 인물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또 <마왕>에서는 화면이 흔들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할 경우 그렇다. 화면에 등장한 인물이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불안해 할 때, 슬퍼할 때,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때 감정의 폭에 따라 카메라의 상하좌우 흔들림 또한 비례한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극중 인물과 감정의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귀도 즐겁다. <마왕>의 한 회분이 끝난 뒤 다음 예고편과 함께 흐르는 ‘바비킴&부가킹즈’의 ‘뒷걸음’은 의미심장한 가사를 가졌음에도 드라마에 몰입했던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다음을 그려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마왕> OST 중 ‘러브테마’로 꼽히는 ‘JK 김동욱’의 ‘사랑하지 말아요’는 애절함 그 자체다. 가수 박학기가 음악감독을 맡은 ‘마왕 OST’에 담긴 노래는 <마왕> 게시판에서 마니아들 사이에 신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세를 돌이켜보게 하다
  
  아울러 <마왕>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이 적지 않다. 과거 씻을 수 없는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강오수의 모습 자체도 교훈적이지만 제작진 스스로 기획의도에서 “사회전반에 깔려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크고 작은 무심한 폭력과 차별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고 황폐하게 만드는지,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한다”고 밝혔듯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12년 지난 후 맨 처음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로 인해 억울하게 10년 동안 보호감호에 처해졌던 사람이다. 단순절도였지만 가진 것 없는 사람이기에 사회는 그 사람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고 2년 감옥 생활 뒤 다시 10년 동안 감옥과 다름없는 보호감호소에 갇혀야 했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어린 딸과 함께 힘들게 살아가면서 사채빚을 쓸 수밖에 없던 여성. 빚을 독촉하는 사채업자가 딸을 납치한 줄 알고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강오수 측에 대한 복수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학창시절 강오수 일행들로부터 극심한 학교폭력을 겪고 대인기피증과 그늘을 가지게 된 그들의 ‘학교 친구’로 드러나고 있다.
  
  
△강오수 역의 엄태웅 ⓒKBS

  이밖에 청각장애인으로 등장하는 해인의 어머니가 해인이나 오수, 승하 등과 수화로 대화하면서 가슴 따뜻한 말을 나누는 장면은 청각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자세를 되짚어 보게 하고, 심지어 승하의 형과 어머니가 친환경적 새로운 장묘문화로 관심을 받고 있는 수목장으로 묻힌 것도 남다르게 보인다.
  
  <마왕>은 이제 절반 정도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동안의 사연과 수수께끼가 하나둘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승하의 복수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오수는 어떤 인물로 거듭날 지 앞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고 마니아들의 관심 또한 증폭될 것이다. <마왕>은 완성도 그 자체와 소수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 또한 드라마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줄 것으로 보인다. <마녀유희> 같은 오락성 강한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와 <고맙습니다> 같은 가슴 따뜻한 드라마와 함께 <마왕>같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드라마를 취향대로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지금의 방송3사 수목드라마, ‘좋지 아니한가’.



(이 글은 '월간 말' 2007년 5월호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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